이런 노래 들어보셨는지.
1. 앞니 빠진 중강새 우물가에 가지 마라
붕어 새끼 놀란다 잉어 새끼 놀란다
2. 윗니 빠진 달강새 골방 속에 가지 마라
빈대한테 뺨 맞을라 벼룩이한테 차일라
3. 앞니 빠진 중강새 닭장 곁에 가지 마라
암탉한테 차일라 수탉한테 차일라
[네이버 지식백과] 앞니 빠진 중강새 (초등 교과서 음악, 출처 : 아이스크림 )
[나무 위키]
젖니가 빠진 아이를 놀리면서 부르는 유희요. (전래동요)
'중강새' 자리에 개호주, 갈가지, 갈강새, 금강새 등이 오기도 한다. 개호주는 호랑이의 새끼를 뜻하는 말.
이빨 빠진 호랑이 새끼에 비유하는 것. '새'는 '쇠'의 변음으로 보아 갈고랑쇠나 쇠스랑의 종류나 방언으로
추측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농기구는 날의 이가 빠지면 쓸모가 없으므로 빗댄 것.
중강새를 이가 빠져 중간이 샌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리고 달강새는 윗니가 달랑달랑 흔들린다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소화가 안 된다.
소화가 안 되니 어지럽다.
어지러우니 피곤하다.
피곤하니 자야 한다.
자야 하니 글을 쓸 수가 없다.
글을 쓸 수가 없으니 사는 게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으니 흥이 안 난다.
흥이 안 나니 또 잔다.
너무 많이 자도 피곤하다.
피곤하니 또 글을 쓸 수가 없다.
그러니 또 잔다...
이 악순환의 원인을 찾아보자.
왜 소화가 안 될까?
잘 씹지를 못하니까.
왜 못 씹냐? 인간아.
이가 빠졌다!
참으로 오랜만의 미괄식 문장이다.
경험칙으로 얻은 소중한 교훈 : 이가 빠지니 글을 쓰지 못한다. (핑계도 이 정도면 가히 국대급이다.)
어린이처럼 젖니 앞니가 빠진 게 아니다. 마음은 어린이지만 나이는 환갑인 희한한 인간 생생이 앞니가 빠질 일은 흔하지 않다. 술 먹고 제발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거나, 휴대폰에 정신 빠져 보다가 전봇대와 안녕하거나, 지나가는 누군가에 한방 맞거나 하는 일이 없는 한, 어른의 앞니가 빠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가 빠졌다. 오른쪽 아래 어금니다. 그것도 원래의 생 어금니가 아니고 (어짜 빠진) 금니다. 어라? 인간의 어금니가 원래 조상 때부터 금니였었나? 어금니라니... 어차피 금니 될 거니 미리 어금니? 고만하자. 언어의 유희는 고수들이나 하는 거다. 초짜가 어디서 감히.
10년 전쯤 해 넣은 건데, 열흘 전 회사 구내식당에서 금요 특식 (뼈다귀 감자탕)을 먹다가 그만 와자작...
아무리 쇠도 씹어먹을 나이. 철근도 라면처럼 씹어먹을 나이. 예순이라 하지만 조심했어야 했다.
와장창 쏟아낸 건 날카롭고 두터운 고기뼈와 반짝이는 금니다.
이런 젠장이다.
중강새, 달강새, 금강새와 유사한 생생의 별명 (깜짝새*)이 이미 있으니, 이가 빠진 아저씨를 놀리면서 노래를 부르려면 "금니 빠진 깜짝새 고래 감자탕 근처에 가지 마라..."라는 정도가 되겠다.
(*깜짝새 : 나의 수많은 별명중 가장 깜찍한 별명이다. 엄청난 술꾼들로 가득한 첫 직장. 회식 때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도망간다는 사유로 생긴 별명임)
이런 노래가 2022년 초등학교 음악계에 나올까 말까 걱정할 때가 아니다.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애초에 왼쪽 아래에도 어금니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오른쪽 어금니(금니)마저 상실되었으니 그야말로
어금니 상실의 시대이다. 어쩔 것이냐 이 고난의 시대를. 일단 임플란트 시가를 여기저기 알아보았으나 너무 비싸다.
가난하지만, 없는 게 메리트라고 늘 주장하던 당당한 생생은 편의점 죽으로 며칠을 버틴다. 말그대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 악으로 깡으로 정신이다. 잡초 같은 인생에 두려울게 무어냐.
그렇게 버티다가, 지난 주말 지혜의 여신님 (어머니)과의 식사자리에서 그만 들통이 나고 말았다.
지혜의 여신님 : 너. 먹는 게 왜 그러냐. 토끼냐? 오물오물거리게? (아들의 사소하거나 미세한 변화도 알아차리시는 관찰력은 가히 예술의 경지이시다.)
깜짝새 : 아니... 그게요. (사실을 있는 데로 이실직고한다.)
지혜의 여신님 : 아이고. 이 허술한 녀석아. 인간도 허술하니 치아도 허술하구나. 내가 이런 너를 두고 어찌...
식사를 마다하시고 여신님은 전화 몇 통화를 여기저기 휘리릭 돌리더니, 전화번호를 하나 알려주신다.
여기로 가보거라. 이럴 경우, 지체해서는 안 된다. 즉시 시행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지니까.
알려주신 병원은 착한 가격인 데다가 친절도 하다. 어머니의 거미줄같이 촘촘한 생계형 동네 네트워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사실, 어머니의 카리스마와 아우라는 인천에서 유명하다. 인천시 새마을 부녀회 시회장 출신이시다. 평생을 봉사 활동하시면서 인천 봉사활동계의 최고봉에 오르신 그 이력과 역사는 전설로 흐른다.
(약간 과장해서) 인천에서 어머니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도 있다. 어디를 가나 여신님 D/C가 적용된다.
어머니 평생의 봉사활동이 진심이었다는 걸,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증명해준다. 연예인 저리 가라다.
수십 년간 직장생활로 일궈낸 글로벌 해외사업 네트워크를 자랑하던 생생은 꼬리를 내리고 어머니께 무릎을 조아리며 존경을 표한다. 어느 안전이라고 까부냐. 까불길.
당장 치아가 없어 뭔가를 씹을 수 없는 이 마당에 수십 개국에 퍼져있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시면서도 당분간 일용할 죽을 한솥 끓여주신다.
대문을 나서는 아들을 부르며 다시 돌려세운다.
이것도 가져가야지. 이눔아.
간장과 깨소금이다. 죽만 주야장천 먹으면 밍밍하니까...
이 극세사 씨줄 날줄 같은 촘촘하고 세심한 배려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겠다.
역시, 그 세월의 멋은, 그 부모의 사랑은 흉내 낼 수 없는 것인가?
임플란트를 총 3개를 해야 하니 전체 일정은 대략 5~6개월이 걸린단다. 장기간의 걸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수술을 하는 날, 의사는 부분 마취를 하고 전동드라이버 같은 무언가를 나사 박듯이 돌린다. 윙~~~ 드르륵 드르륵 (어흐... 흑)
무언가 돌면서 내려간다.
돌고도는 물레방아 인생인가? 아이고, 뇌가 돌 지경이다. 뇌가 돌면서 꼬이면 어떻게 될까.
꼬인 뇌 실타래를 풀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렇게 꼬인 게 어찌 뇌뿐만이겠느냐?
인생이 꼬였는데.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인가? 뇌가 돌고 인생이 도니 임플란트를 중심으로 나의 온몸이 뱅뱅도는 개구진 만화 같은 환상마저 떠오른다. 나의 몸이 돌 때마다 간호사와 의사는 폴짝폴짝 뛰어넘으며 치료를 계속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생각 속에 치료는 끝난다.
동네 어귀에 짙은 곤색 1톤 트럭이 지나갈 시간이다.
"고장 난 선풍기나 금이빨 삽니다~" 저 멀리서 스피커에서 울리는 트럭 아저씨의 구수한 목소리.
1년 365일 매일 같은 시간에 동네 골목을 지나가면서 울려 퍼지는 스피커 음성이 오늘에서야 이제야 정확히 귀담아 들린다. 저 소리가 이 소리였어? 새삼스럽기가 뻘쭘할 정도다.
그나저나 금이빨도 쓸모가 없어지면 고장 난 선풍기급뿐이 안 되는 것인가?
맥락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아닌가? 이런 비유가 말이 되는가? 고장 난 선풍이에는 고장 난 세탁기 정도가 서로 어울리지 짝꿍 아닌가? 뜬금없기가 서늘할 정도다.
트럭 아저씨에게 따져 묻고도 싶다. 한때는 반짝이며 그 위풍을 자랑했던 금니를 어떻게 이렇게 취급할 수가 있느냐라고. 트럭 아저씨가 그러실 거다. 너 자신을 돌아보라.
그러게.
나이 든 내 모습도 그러할 테니 세상에 쓸모가 없어진 나는 과연 무엇에 비유될 터인가?
갑자기 씁씁쓸해지는 마음에 울적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뿐.
이거 내다 팔면 얼마나 쳐줄까? 금값 많이 올랐다는데. 자본주의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하지만 문을 박차고 트럭으로 뛰어 나가진 않는다.
나라가 위태로워지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버선발로 뛰어나가 내놓을 금붙이는 무언가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미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작금의 대한민국호에 위태로운 시그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지만 제2의 IMF가 오기를 바라진 않는다. 그럴리는 없다. 이 어려움도 지나가리라 믿는다.
글이 꼬인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가? 의사 선생님이 전동 드라이버를 너무 돌려서 정말 뇌가 꼬였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는가?
이가 빠지면 글을 못쓴다? 이렇게 허당스러운 결론을 내려고 이 글을 쓴 건 아니다.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을 잡아채어 글을 써보자 (Light Writing)는 글쓰기 모임 라라 크루의 활동 목적에 걸맞게, 반짝이는 금니가 빠진 순간도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이다. 그러니 당연히 글을 써야 한다.
그 반짝이 이 반짝이 아닐 텐데... 글 벗님들의 원성이 들리는 듯 하지만 애써 외면한다.
그 반짝도 이 반짝이라고 혼자서 박박 우겨본다.
그러니 금니를 잃고 얻은 것은 하나의 글이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법.
어쩌면 우리네 일상다반사, 잃고 얻는다는 손익의 관점을 떠나서 들어오고 나가며 오고 가는 그런 자연스러운 반복이 인생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갈수록 태연자약하거나 뻔뻔해지는 생생이 소소한 일상의 반짝을 찾아 두리번거리면서도
애면글면하지 않는 이유다.
쓰자고 덤벼들면, 누구에게의 일상에서나 반짝은 푸른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지 않겠는가.
그래.
치과의 이름이 "푸른 하늘 치과"였지. 오늘의 하늘도 푸르다. 저 하늘에 나는 새는 분명하다. 깜짝새다.
한 줄 요약 : 일상에서의 반짝이는 순간은 누구나에게 있다. 반짝였다고 우기면 된다. 이것이 작가의 백만 스물한 번째 자유다. 나는 자유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