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깽 핑 푱 휭 슝..."
무슨 소리냐.
다양한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그중에 가장 편안한 소리는 탕이다.
그냥 탕이 아니라 '타~~~ 앙'. 울리는 소리다.
(생생의 청력과 필력이 딸려서 더 이상은 표현이 어렵다. 심심한 양해는 독자의 미덕이다.)
해 질 무렵, 방구석에서 이소리를 들어야 생생은 오늘 하루도 평안했구나. 오늘도 별 탈 없었구나. 안심하고 편안히 하루를 마무리한다.
인천 자유공원에 오르는 진입로는 차이나 타운 또는 신포 국제시장, 홍예문, 아니면 화수부두 쪽 동네 등 여러 방향이 있지만 어디서 오르던 경사각도 약 50도 의 오르막을 최소 10분은 애써 걸어야 한다. 생생은 메일 오로지 한 방향의 길을 택한다. 홍예문에서 오르는 길이다.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길이기 때문이다.
자. 초입에 가보자.
좌측은 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의 옆구리를 깎아 생긴 돌담의 벽이고 우측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인천의 명문고 제물포 고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생생의 모교다. (60년 이상 동안 '무감독 시험'이라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모교의 앞동산 중턱의 이 길이 바로 공원을 오르는 50도 경사길이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소리의 원산지이다.
골프연습장 처럼 그물이 쳐있으며, 누군가 그려놓은 찬호 팍의 모습이 애잔한 배팅볼 연습장이다. (투타에 열심이다.)
작고 아담하다. 공원을 오르거나 내려오거나 만나는 이 장소의 역사는 무려 50년.
타이어 같이 생긴 고무바퀴 두 개가 맞물리면서 돌아가고 그 회전력을 에너지 삼아 중앙에서 볼이 튀어나온다. 이것을 쳐내는 연습장. 야구 배팅볼 연습장이다. 고무바퀴 두 개의 회전이 각각 일정하지 않기에 튀어나오는 공은 다양한 구질로 타자들을 애먹인다. 뚝 떨어지는 싱커, 확 휘어버리는 체인지 업, 묵직하게 꽂혀버리는 포심 패스트볼. 구질도 천차만별 다양하기가 천 겹이다.
500원 동전을 넣으면 12개 정도의 배팅볼이 허용된다. 물론 하나씩 날아온다. 한꺼번에 12개가 날아오진 않는다. 12개를 한번에 다 치려면 팔이 12개, 아니 24개가 있어야 한다. 배트는 두 손으로 잡으니까.
그런 인간은 없으니 한 번에 하나다.
그물 안,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대부분 젊은 남성이다. 그물 밖, 응원석에 서있는 응원자는 젊은 여성이다.
공원길에 데이트하러 왔다가 신기한 장소가 있으니 선뜻 도전한다. 매우 일반적이고 평범한 모습이다.
"타~~~ 앙" 홈런성 타구를 직감하는 소리가 나야 할 텐데 대부분 "깽 픽 푱 휭 슝"이다.
제대로 맞지 않았다는 소리다.
공이 발사되는 고무바퀴와 타석의 길이가 매우 짧기에 제법 운동신경이 있다며 호기롭게 도전하는 젊은이들도 헛스윙 연발이다. 허허.. 힘을 빼야 하거늘. 배트를 짧게 쥐고 끊어내리듯이 쳐내야 하거늘...
지나가던 생생이 뒤에서 훈수를 두지만 백이면 백. 본인들의 스윙폼을 고집한다. 역시 깽 픽 푱 휭 슝 이다.
생생도 어쩌다 한 두 번 도전을 해본 기억이 있어서 늘 관심과 주목을 두는 포지션은 타자다.
타자의 마음과 심리. 특히 슝~ (헛스윙)이 나왔을 때의 마음과 심리는 전문용어로 "쪽팔림"... 그 자체다.
순간적으로 등짝 가운데 계곡을 흐르는 건 진땀이다. 저 느낌 안다. 뒤에서 여자친구가 아내가 보고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관점의 변화를 가져봤다. 집중적으로 바라본 것은 응원자의 모습이다.
대부분 딸, 여자 친구, 아내, 어머니, 여동생. 그야말로 여인 천하다.
아들, 남자 친구, 아빠, 남동생인 타자를 응원한다. 다양한 방식의 반응과 응원을 하는 모습은 자못 볼 만하다. 타자의 모습보다 응원자의 모습이 더 재밌다.
슝을 열한 번 하다가 겨우 한 번의 핑을 한 남자 친구를 향해 "와~~~ 드디어 건드렸어!!!"
겨우 겨우 핑을 하다가 깽을 한 두 번 한 아들을 향해 "오~~~ 선수냐?"
깽을 몇 번하다가 드디어 "타~~~ 앙"을 날려버린 아버지를 향해 "꺄악~~~ 우리 아빠 최고!!!"
천지 사방으로 방방 뛰는 딸의 모습.
모두 모두의 타석의 결과는 다르나 모두 모두의 응원에는 동일하게 담겨있는 게 보인다. 사랑이다.
모든 타석의 공들은 비록 그물망에 걸려 끝까지 날아갈 수 없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아니 어쩌면 "탕 깽 핑 푱 휭 슝..." 모두가 상관없을 터이다.
타자에게는 도전이, 응원자에게는 사랑이 그 모든 볼을 감싸 안으며 하늘 높이 날려 올라가니까.
대한민국 남성들은 좋겠다.
뭘 해도 잘한다고 소리쳐주고 손뼉 쳐주고 환호성 하이옥타브를 발사하는 사랑스러운 여인들이 이렇게나
많으니 말이다. 이렇게 남자들은 늘 고픈 게 있다. 인정과 사랑이다.
누군가 뒤에서 인정과 사랑을 보내줄 이 없는 생생은 평상시 거의 타석에 들어서지 않는다.
오히려 힘이 빠지거나 무기력하거나 울적한 날. 타석에 들어선다.
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조세희 작가의 소설. 이를 원작으로 영화,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
여러 장면 속에 특별히 떠오르는 장면.
소시민이자 공장 노동자였던 어느 아버지가 공장 굴뚝 위에 앉아 앞에 보이는 드넓은 하늘을 향해 날리는
종이비행기. 70~ 80년대 엄혹한 시절에 날리는 그것은 희망의 메시지였다.
지금도 그 메세지는 유효하다. 그 여전함이 다소 무거운 시절이다.
오늘 생생은 오랜만에 타석에 들어서 쏘아 올린다.
힘을 빼고 짧게 끊어친다.
짧은 인터벌 타임에도 호흡만은 길다.
사랑은 없어도 나만의 희망을 싣는다.
내가 나를 좀 더 인정하고 사랑하면 될일이다.
그러면 된 거다.
"타~~~ 앙"
그 볼은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흔쾌히 홈런이다.
나는 조선의 4번 타자. 아니,
우리 동네 4번 타자다.
한줄 요약 : 힘을 뺀 긴 호흡은 조급함을 달래주며 짧은 타격은 일상의 작은 기쁨을 선사한다. 그런 단타가 잦다보면 어느새 홈런이된다. 다시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