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즈음에 (1)

by 김호섭
60대란 개인 인생주기에 걸쳐 어떤 연령대이고
사회 속에서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하고 있는가?


오늘의 질문이다.

가볍지 않은 질문이라 두고두고 묵혀두려다가 더 이상 미루기에는 막바지에 온 느낌이라서

좀 가볍게라도 던져보려는 질문이다. 이렇게 툭! 던지면 가벼워지려나?

우선 '예순 즈음에'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서른 즈음에'의 연상작용이다.

'즈음'이란 무슨 뜻인가. 일이 어찌 될 무렵. 다다르게 된 특정한 때라 한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애매모호 두리뭉실하다. 아무리 불확실성의 시대이지만 이 단어부터 바짝 조여보자. 기준이 60세이니 55세부터가 예순 즈음인가? 글쎄다. 좀 더 좁혀야 흐릿한 뭔가도 좀 더 보이겠지.

59세부터라고 우선 규정하면 이 규정은 일반적으로 국민들의 시대공감과 지지를 받을만하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 생생이 아니다. 이미 마이크로 시대를 지나 나노시대이며 더군다나 극세사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해보자. 예순 즈음은 60살을 한달반 정도 남겨놓은 지금이다.

(이 즈음은 나만이 정의한 즈음이고 무렵이니, 정부나 학계로부터의 너무 과도한 관심은 정중히 사양한다.

그분들이 관심 보낼 일이 1도 없건만 이러한 사양을 표현하는 오지랖을 '걱정도 팔자'라고 한다.)


아무튼, 이 즈음에서 60대를 바라보자. 바로 오늘이다.

60대 문턱에 서서 다가올 시절에 대한 조망과 그 시절을 살아낼 나의 태도와 방향의 밑그림을 그려보려는 마음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마음의 흐름이겠다.

59세 1월부터 10월 사이에 바라본, 60대에 대한 생각보다는 좀 더 명료해졌길 바래보면서.


요즘 주말마다 바쁘다.

친구들도 만나고 지인, 전 직장 동료들, 거래처 파트너들, 학교 선후배, 동네 자영업 사장님들이다.

모임 구성원의 연령대, 각자의 전문분야와 인간의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일부러라도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있다. 7 월에 있었던 아들의 결혼식 답례 자리함이 1차 목적이지만, 세상 속의 현자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싶은 마음도 분명 한몫한다.

특히 요즘은 예순 즈음이거나 갓 예순이거나 60대 초반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귀담아듣게 된다. 어떤 생각과 태도,어떤 마음의 결기로 이 혼돈의 시절을 살고들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굳이 공식적으로 묻지 않아도 오고 가는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핵심 키워드는 세 가지로 좁혀진다. '돈과 건강, 자녀'이다.

이 세 가지 키워드를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개인의 노후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라는 의미일 터이니 바야흐로 60대는 노후로 접어드는 현관문이고 그 문을 들어서는 모두와 함께하는 것은 걱정과 불안이다. '자녀'는 부모 마음대로 안 된다 하니, 돈과 건강만을 살짝 들여다보자. (당연하다. 자녀는 스스로 당당한 인격체이므로)


각자의 인격이나 자존과 상관없이 어려운 문제.

돈과 건강이다.

특히 돈과 건강은 치명적인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미 유명을 달리한 친구들이 의외로 많고, 암이나 심장, 뇌와 같은 중병 질환으로 고생하는 친구, 지인들의 얘기가 적지 않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이미 생생 스스로 알고 있는 경험 아닌가. 그러한 인생의 난제가 경제적인 이유로 원활한 극복이나 치료가 안될 경우, 우리 대부분은 이런 예상만으로도 몸서리를 친다. 극도의 불안과 걱정에 휩싸인다. 그러하니 당연히도 돈과 건강이 우선순위 넘버원이다.


더군다나 대부분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은퇴를 했거나 그런 연령대이다 보니 이 불안과 걱정은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겠다. 그래서 개인적 핵심 키워드 (돈, 건강, 자녀)에 더해 함께 나오는 키워드는 "일"이다.

지금까지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과 지위를 갖고 있던 그 시간이 끝나고 이제 완전히 다른 시간 속에서 맞이해야 할 "일"이다. 심신은 그럭저럭 멀쩡한데 어느 날 갑자기 사회적 사망선고를 받고 강제로 방구석으로 내몰리게 되었건만 세상은 바뀌어 100세 시대라는 사상초유의 상황에 직면한 우리는 앞으로 뭘 해서 먹고살 것인가...

이 질문의 면전에 초라히 서있다. 이 초라함이 오늘의 핵심이겠다. 연령대에 대한 사회적 규정과 의학, 과학의 발전으로 변이 된 인간군상의 수명연장이 한마디로 환장하는 엇박자 스텝으로 꼬여버린 것이다. 누굴 탓하리오. 좋은 거냐 싫은거냐 구분도 허용치 않는다.


은퇴를 했어도 한순간이라도 놓지 말아야 할 정신줄의 이데올로기는 먹고사니즘이라니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시절이 이렇게 어수선하고 불안하여 노후자금이 충분한 사람도 부족한 사람도 아예 없는 사람도 이 고민 앞에서는 모두가 자유롭지 못하다. 돈... 참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되는 이 dirty 한 세상. 돈 말고 다른 산뜻한 해법은 없는가. 노년의 문턱에 선 60대를 근사하게 보내기 위한 해법은 도대체 무엇인가. 머리가 지끈거린다.


다시, 책에서 길을 찾아본다.

노후의 피할 수 없는 명제, 삶과 죽음이겠다.

철학자 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빅토르 위고, 칸트, 니체, 플라톤, 몽테뉴, 흄,연암 박지원, 라캉...


머리가 더 지끈 거린다. 내가 지금 필요한 조언이나 가르침을 찾는 건 이 분들의 거대한 철학의 산에서 바늘 찾기 게임과 같으니 버겁고 무겁다.

무겁지만 가볍게 '툭'던진 오늘의 질문 아닌가. 이에 대한 답도 고민도 툭툭해보자. 힘 빼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프거나 마음이 답답할 땐 친구와 한잔을 해야 한다. 어느 친구가 이런 말을 한다.

"너 요즘 뭐하냐?" 이런 물음이 올 때마다 생생의 답변은 담백하다.

"조그만 회사에 나가며 밥벌이하고 틈날 때마다 글쓰기를 하지."

마뜩지 않은 표정으로 친구는 다시 묻는다. "글쓰기? 돈 되냐?"

이런 무지렁이 또는 자본주의에 쩌든 녀석아... 또 돈 얘기냐? 생생은 입에 거품을 물고 글쓰기의 효능과 이점, 중년의 나이에 글쓰기라는 사회적 의미 등을 두서없이 설명한다. "어쩌고 저쩌고..."


친구는 고개를 위아래가 아니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묻는다. "아이고. 너 언제 철드냐. 주말 알바라도 하면서 한 푼이라도 벌어 놓아도 부족한 이 엄혹한 시국에 무슨 얼어 죽을 글쟁이 코스프레냐.

너 나이가 몇인지 알어? 곧 예순이야 예순. 갖고 있는 돈푼 하나 없는 놈이 젊은 사람들하고 어울려 글쓰기 하면 너도 젊어지려니 착각하나 본데, 천만의 말씀. 아서라 말어라. 현실을 직시해야지. 아이고 이 녀석을 어쩌면 좋으냐... 요즘 친구들 본인 부고도 종종 있고, 중병 사례도 부쩍 늘어 가는데 너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한가롭게 글쓰기나 하고 앉았고"

친구의 신랄한 비판에 씩씩대며 부들부들 떨던 생생은, 귀갓길에서 그만, 밀려오는 현타 (현실 자각 타임)에 빠져든다. 부들부들 거리는 화를 표하긴 했지만, 화의 강도만큼이나 쎈 현타의 엄청난 파도에 멍해져 버린 마음은 어찌 피할 수가 없다. 그간에 써온 글도 한심해 보이고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심한 자괴감마저 밀려온다. 글쓰기에 집중도 안 되고 멍만 때리는 시간과 불면의 밤은 깊어만 간다.


며칠 후 그 친구가 다시 전화를 해온다. 생생은 이렇게 답한다.

"너. 나한테 전화하지 마라. 이제 너랑 안 놀기로 했으니."

"하이고, 싫은 소리 했다고 삐졌냐? 요런 파르라니 얇은 포테이토칩 같은 녀석 하고는. 맛있는 연어회와 이슬 쏠 테니 튀어 나온나."

"돈 많은 너나 혼자서 실컷 드시게. 꿈 많은 난 일없으요. 내가 회에 이슬이라면 사족을 못쓰는지 아느냐. 쳇"

10분 후, 동네 포장마차에서 생생은 친구와 마주 앉아 다시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하... 얇디얇은 어니언스칩 같은 나의 인생이여.


"생생아. 지난번엔 내가 심한 말을 했다. 너의 브런치 글을 대충 읽어보니 대충 알겠더라. 너의 그 깊은 뜻을.

지난번 나의 언행을 정식으로 사과 하마. 용서해 주시게.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너. 너. 꼭 너의 이야기와 어쩌고 저쩌고를 담은 책 한 권 꼭 내라. 안 그러면 너 나한테 뚜드려 맞을 줄 알아라. 그때까지 술 한잔은 내가 책임지마."

생생은 속으론 감동의 눈물이 줄줄 흐르면서도 이게 웬쾌냐를 외치며 호쾌하게 말한다.

"그래 좋다. 약속 하마."

속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요 녀석 잘 걸렸다. 그 책 나오려면 평생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평생 술 사주는 호구가 생겼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을쏘냐.' 친구와 농담 반 진담 반 하면서 어니언스칩 생생의 기분은 다소 나아졌으나 아직 뭔가 쾌통치않다.


다시 공원에 오른다.


(공원에 오르는 동안 독자님들도 10분간 휴식을 취하시면 좋겠습니다. 얘기가 좀 길어질듯하니 여기서 잠시 끊고 가겠습니다. 친절한 작가. 김호섭 올림)




한줄요약 : 연어이슬과 어니언스칩 지조에 살짝 웃으셨다면, 돈과 꿈의 무거움에도 살짝 웃어 보는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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