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즈음에 (2)

by 김호섭

다음은,

공원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의 대화이다.

새벽, 저녁마다'어르신 건강 에어로빅'을 함께하는 어르신들이다. 두 분 모두 팔십 대 중반이시다. 얼추 구순 무렵이시다.


할아버지 : 이봐요. 자네 옆자리 시장 할머니 요즘 왜 않나와? 죽었어?

할머니 : 글쎄요. 이웃에 사는 지간도 아닌데 내가 어찌 알겠소. 안 나오면 죽었는갑지.

할아버지 : 아니면, 요즘 운동 많이 해서 젊어지는 거 같더니 애 낳았나? 산후조리 중인가?

할머니 : 하여튼 이양반 별소리를 다하시는구랴.

할아버지, 할머니 : 껄껄 하하 호호

할아버지 : 이봐. 거기. 과묵 총각. 자네는 뭔 일인지 알고 있나?

생생 : 저 저요? 저는 일단 총각은 아니지만... 시장 어머님 소식은 저도 들은 바가 없어서요..

할아버지 : 총각 맞는거 같은데? 한 서른 중반쯤 돼보이구만. 어찌 그리들 매정한가. 이 할머니 죽었으면 문상이라도 가야 하니 좀 알아들 보소.


며칠 후, 시장 할머니께서 모처럼 운동에 나타나셨다. 살아계셨던 거다.

할아버지 : 죽었는 줄 알았지. 애 낳으러 친정 다녀온 거유?

시장할머니 : 이양반이 나없는 사이에 날 저세상 보냈다더니 참나. 애를 낳다니 깔깔깔. 단풍구경 갔다왔다요.

할아버지 : 아무튼, 저세상 갈때 가더라도 우리함께 운동했던 시간은 즐거웠소. 언제 갈지 서로 모르니

미리 인사 정도는 서로 나누며 살자고~


마계 인천 어르신들의 포스가 작렬한다.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을 해학과 풍자, 유쾌와 유머로 풀어내는 저 어르신들이야말로 초연 달관 저 너머의

광장의 철학자. 공원의 철학자들 아닌가.

생생은 웃음과 감동의 도가니탕에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무릎을 탁 친다. 유레카!

맞다. 지금과 같은 사상초유의 100세 시대속의 예순 즈음을 위한 철학을 구하려면 공원의 어르신 같은

최근의 철학자에게 물어봐야 한다! 공원을 뛰어 내려온다.




방구석에서 찾아낸 철학자는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 브뤼크네르. 세계적인 지성이라는데 생생은 솔직히 잘 모른다. 1948년생. 2022년 현재 대충 70대 중반의 형님이시다. 딱이다!

이 형님의 말씀 중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다. (출처 :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2021 인플루엔셜)


(여기서는 노년과 진짜 노년을 구분한다. 완전히 신체의 기력이 없어진 누워서 사는 시기를 진짜 노년이라 하고 그전까지는 그냥 노년이라 구분한다.) 노년의 시기. 이 시기가 오늘날처럼 철학하는 나이, 특히 정신의 나이 인적은 없었다. 이 시기는 칸트가 정의한 인간 조건의 모든 과제가 날카롭게 다가온다. 나는 무엇을 바라도 되는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믿는 것이 나에게 허락되는가? 이 시기는 활동적인 삶과 관조적인 삶을 번갈아 누릴 수 있다. 세월의 파괴력은 역동성을 제한하지만 아예 중지시키지는 못한다. (중략)
정신적 나이, 감성적 나이는 생물학적 나이와 일치하지 않는다. 노화를 늦추는 방법은 욕망의 역동성안에 머무는 것이다. 양립 불가능한 것들을 화해시키자. 낭만주의와 느긋함을, 뻔뻔함과 주름살을, 백발과 기꺼운 폭풍을. 나이에서 황폐한 장식을 벗겨내고 노년을 유머와 멋으로 갈아엎어야 한다. 한계는 밀어내기 위해 존재한다. 생은 어떤 단계에서든 불가역성에 반발할 수 있다. 심연으로 가라앉기 전까지는 언제라도 그럴 수 있다. (중략)
아직은 퇴장할 때가 아니다.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늦게까지 하라. 어떠한 호기심도 포기하지 마라. 생의 마지막 날까지 사랑하고, 일하고, 여행하고, 세상과 타인들에게 마음을 열어 두어라. 흔들림 없이 자기 힘을 시험하라. (중략). 포기하라는 사회의 강요를 거부하라. 아직은 퇴장할 때가 아니다. 오늘의 노년이다.


딱이다! 원하던 바늘을 찾았다. 요즘, 생생이 남몰래 추구했던 마음의 소리를, 어쩜 이리도 기가 막히게 파악하시고 이렇게도 멋진 말로 정리해 주신 걸까? 완전 맞춤형 철학자이시고 1타 강사의 족집게 강의같은

시원시원한 금과옥조의 문장이로다.

역시 세계적 지성이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역시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누군가 그냥 한말이 아닌 것이다.


다시 힘을 내본다.

썰렁하기 그지없는 유머나 아재 개그도 마음껏 날려보자.

허술한 몸도 살살 달래가며 고쳐가며 데리고 살고,

출간이든 등단이든 지금은 너무 먼 이야기이니

되지도 않는 글이지만 일단 계속 써보자.

왜냐. 내가 좋아하는 "일" 이니까.

쓰다 보면 알게 되겠지. 노년의 나의 과제와 사회에서의 나의 쓸모가.

자연스레 정리되겠지.




또한 분의 철학자가 있다. 노래의 철학자. 음악의 철학자.

광석이 형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생생과 동년배이나 생일이 빠르니 형이다.

인천 신포동 호프집에서 만난 그림. 호프집이름은 다시 확인후, update 예정입니다~


형의 음악과 미소와 이슬과 함께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

스물아홉에 불렀던 이노래를 다시 부른다. '서른 즈음에'.

가사와 멜로디에서의 걱정과 불안과는 다르게 우리의 서른은 찬란했다. 괜찮았다.

예순도 그러하리라. 괜찮을 것이다. 서둘러 퇴장하지 않는한.

(광석이 형! 잘 지내죠? 너무 걱정말아요.)


공원 할아버지가 나더러 서른 중반 총각이라고 칭하지 않았는가. 어르신. 만수무강 하시옵고 복 받으소서!

멋지고 근사하게 그 서른을 맞이하자. 그 예순을 맞이하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아직은 퇴장할 때가 아니다.


한줄요약 : 아직은 퇴장할 때가 아니다.
두번째 서른살~ 회이팅!

(두번째 서른살이라는 멋진 댓글을 주신 @써니 작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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