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부분은 이미 작가였다.

50년 만에 구하는 용서

by 김호섭
찾아보자. 나의 첫 글!


홀로 쓰고 홀로 보는 일기가 아니다.

엄연히 퍼블릭하게 오픈되어 있는 글. 독자가 있는 글이다.

그런 글은 성인(청년 ~ 중년)이 되어서야 제대로 쓸 수 있다고 누군가는 주장한다. 이것은 단언컨대 편견이다.

From 한글을 깨친 소년과 소녀 ~ To 한글을 많이 몰라도 괜찮은 할아버지 할머니.

작가로서 적합한 연령의 정의는 이렇게 폭넓은 기간의 허용이 보다 적합하다. 왜냐.

퍼블릭하게 오픈된 나의 첫 글은 국민학교 (현 초등학교) 1학년 때 쓴 글이고 학교 문예지에 뽑혀 만 천하에 공개되었으니까. 아울러, 지금 브런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거의 할아버지이니까.

그렇게 세상에 오픈된 글을 쓰는 사람을 우리는 작가라 부른다.

그러하니, 나는 이미 작가였다. 8살 때다. 신동이냐? 아니다. 귀엽고 깜찍한 보통의 어린이다.


다들 한두 번씩은 학교 문예지나 이런 유사한 곳에 글을 발표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러하니,

우리 대부분은 오래전에 이미 작가였다.

보라.

빵모자 풍모 어엿한 작가의 모습을.





나의 첫 글은 언제 썼고 어떤 이야기를 썼는가?

어느 가을깊은 날, 불현듯 스치는 질문에 우선 브런치부터

찾아본다. 작가의 등용문인 신춘문예나 여러 유명한 문단을 통해 데뷔한 공식적인 작가가 아니므로,

글쓰기를 마음먹고 똑똑똑 두드렸던 브런치에서의 첫 글이 나의 첫 글이라는 생각은 너무도 당연하다.


https://brunch.co.kr/@khskorea/1


2021년 9월 25일에 설레며 쓴 글이다. 그렇다고 손을 덜덜 떨거나 얼굴이 빨개져서 쓴 건 아니다.

방구석에서 나 홀로 쓰는 글이니 그 과정은 담담하다. 마음이 후달후달거리는 건 쓰고 나서다.

이렇게 써도 되는 건가? 정답은 없다. 에라 모르겠다. 발행 버튼을 꾹 누른다.

이제는 그때의 수줍음과 후달후달함에 슬며시 미소 짓는다. (라고 쓰지만 지금도 여전히 후달 거린다.)

어느새 브런치 활동 2년 차이고, 어느새 72개의 글을 쌓아왔다. 내 글을 구독하는 고마운 구독자는 무려 99명. 고수 작가님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의 수치이겠으나, 나름 신기하고 뿌듯한 마음은 감출 길 없다.

무언가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앞으로도 쌓아 올려질 거라는 다부진 믿음은 흐뭇하다.

돈이 쌓이진 않지만 그보다 더 흐뭇하다. (정말이냐?)


(그런데 말입니다.)

이글이 나의 첫 글이 아니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옛 친구들 덕분이다.




*국민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무려 오십 년 만이다. (*인천 박문 국민학교)

하얀 얼굴이 귀여운 부잣집 아들 정원이와, 1학년 1반 어여쁜 내 첫 짝꿍. 은정이가 그 주인공이다.

정원이는 외국계 기업 고위 임원이 되어있고, 은정이는 한의사 남편을 둔 귀부인이 되어 계시다.

어색한 근황 토크도 잠시,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정원과 은정의 얼굴에는 옛날 옛적 어린이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어 사뭇 귀여우며 정겨웠다. 우리는 바로 50년을 훌쩍 건너뛰어 어린이 정원, 은정, 호섭으로 리셋되어 다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하 호호 깔깔.

은정이가 말한다. "너희들 그거 기억나? 우리 담임선생님이셨던 최루시아 선생님 엉엉 울던 사건!

너. 호섭이. 개구쟁이 녀석. 너 때문에 선생님 울고불고 난리난리 났던 사건 말이야!"


어느 타임머신이, 어느 로켓배송이, 어느 인터넷 통신망이 이보다 빠를쏘냐.

호섭은 그때 그날의 그 순간에 이미 가 서있다. 학교 운동장에는 국딩 1학년 어린이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모자 뺏기 게임에 열중이다. 한 팀의 리더는 소년이고 다른 한 팀의 리더는 곱고 어여쁘신 최루시아 담임선생님이시다. 아마도 청군 백군 기마전인가 보다. 각 팀에 마지막 한 팀씩 남았고, 그 생존팀은 소년팀과 선생님 팀이다. 아마도 선수 부족으로 선생님께서 직접 게임에 참여하신 모양이다. 소년의 머리에는 파란 챙모자, 선생님의 머리에는 하얀 챙모자가 씌워져 있다.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는데...


(다음 편에 계속)

끊어가기 신공을 펼치려는 순간, 스크롤을 올려보니 별로 안 길다. 그냥 계속 One Take로 가자.




치열한 모자 뺏기 격전이 벌어지던 와중에, 소년은 오래전부터 궁금해 왔던 질문을 떠올린다.

선생님은 왜 맨날 똑같은 옷만 입고
이상한 두건을 쓰고 계신 거지?
엄마나 이모, 고모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인천 박문 국민학교는 인천가톨릭 교육재단 산하의 사립 국민학교. 1900년 설립. 인천 중구 답동성당 곁에 있다가 지금은 부자동네 연수구로 이전함. 교직을 이수한 수녀님들이 대부분의 선생님 이셨음. 그 당시 인천의 최상류 층 부자들만 자녀들을 보내던 학교였는데 가난했던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어쩌자고 여기에 보내고 키우신 건지 아직도 미스테리다. 대략적인 히스토리야 알지만 비싼 수업료와 학비를 감당하느라 겪으셨을 노고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소년은 이 참에 선생님의 두건! 그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마음먹는다. 선생님의 흰챙모자와 동시에 검은색 두건까지 홀라당 잡아 챈다. 어? 그 두건 안에는 그냥 짧게 쪽진 선생님의 머리다. 소년은 멀뚱멀뚱 그 쪽진 머리를 바라보는데, 선생님은 갑자기 울고불고하시더니, 소년에게 불같이 화를 내신다. 두건을 다시 잡아채시고 휙 성당 안으로 사라지신다. 게임은 끝났지만 청군이나 백군이나 승리의 환호성도 나팔소리도 없다.

너무도 놀란 소년은 운동장 한가운데 혼자서 벌을 받으며 서있고, 다른 아이들은 다시 교실로 사라진다.

아니 이게 이렇게까지 벌을 받을 일인가? 여자 친구들 아이스께끼 한 것도 아니고, 고무줄 끊고 도망친 것도 아닌데... 선생님은 왜 그다지도 화를 내신 것일까? 궁금증은 풀리질 않는다. 가을 운동장에서 쓸쓸히 생각해 본다. 석양은 길고 깊다. 소년은 이 해프닝에 대한 나름의 해석과 궁금증을 그저 끙끙거리며 끌어안고 있기에는 너무도 버거워 어느 날. 글을 쓰기로 작정한다.

그리하여, 학교 문예지에 나의 첫 글이 당당히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그 글을 찾아보자.

2022년 10월 어느 가을날, 나의 첫 글 찾기 프로젝트를 야심 차게 가동한다.

학교 행정부에 전화도 해보고 옛 친구들에게 수소문도 해보았으나 그 글의 행방은 묘연하다.

50여 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금 같은 IT기술이 없던 시절이다. 찾을 수는 없었다.

소년 호섭의 필력은 어떠했는지.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글을 썼는지. 구성은 어떻게 꾸렸는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는지. 한 줄 요약은 제대로 했는지.

무척이나 참으로 궁금하다.




수녀님들은 자신들이 머리에 두르는 이 두건을 일반적으로 ‘머릿수건’이라고 부른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는 풍습은 신분의 상징이나 여성의 몸을 감추기 위한 용도로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왔지만 교회 안에서 수녀들에게 적용된 것은 대략 3~4세기로 추정된다.
여자 수도자들에게 베일, 곧 머릿수건은 그 자체가 세속과 인연을 끊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온전히 투신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여인이 보여 줄 수 있는 아름다운 긴 머리를 가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혼식에서 신부가 베일을 쓰듯, 그리스도의 정배가 된 모습이 수녀님들의 베일이 담고 있는 뜻이기도 합니다.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교회 상식 속풀이 - 박종인 (요한) 신부님


굳이 이러한 검색을 하지 않아도 이제는 수녀님 두건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알 법도 한 그런 나이가 되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온전히 삶을 봉헌하려는 마음의 표현이었으리라. 두건은 표현의 표식이겠고, 본질은 그 숭고한 마음이었으리라.

정갈하고 말간 선생님만의 그 마음. 그 순수를 웬 엉뚱한 녀석이 온 천하에 발칵 드러냈으니 고고히 간직해온 선생님의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가 되셨을까.


이미 오래전에 작고 하셨다는 최루시아 수녀님께 용서의 기도를 올린다. 무려 50년 만이다.

"선생님, 그곳에서도 평안하시죠? 철부지 어린이 호섭입니다. 달리기 잘하던 그 아이. 두건 사건... 그때 그 희한한 아이. 기억하시죠? 우선, 그날의 해프닝. 용서를 구합니다. 워낙에 호기심 천국이었던 소년의 과도한 불찰로 선생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지 가름이 안 됩니다. 많이 늦었지만 진심을 다하여 사죄와 용서를 구합니다.

그날 선생님의 따끔한 질타와 홀로 서 있던 운동장의 고독을 통해,

타인의 소중한 가치와 정신 또는 마음에 대해 함부로 대하지 말며, 그러한 마음과 가치를 알기 위해선 우선 저자신이 올곧은 인간이 되어야 하고, 서로 간의 예와 정성을 다하여 그것들을 나누고 보듬고 아끼며 소중히 지켜줘야 된다는 관계의 이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타인에게 함부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은 개인의 치부뿐만이 아니라 고결히 간직하고픈 사랑의 마음, 그런 마음의 정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사 천지분간을 하게 된 것이겠지요."


그러자, 선생님이 이렇게 답하신다.

“호섭아, 오랜만이다. 선생님은 편안히 잘 지내고 있단다.

용서는 무슨. 그때, 나도 너무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너에게 과한 야단을 친 기억이 나는구나.

착하고 공부 잘하고 얌전하던 아이가 갑작스레 나의 두건을…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중에 너의 글을 읽고 선생님은 이미 다 용서했단다. 너의 글은 너무나 깜찍하고 귀여웠으며 너의 마음을 마치 어른처럼 담대하게 표현했더구나. 글로써 용서도 구했고. 이 녀석. 작가가 될 상이로구나하는 생각에 학교 문예지에 내가 적극 추천한 거란다. 선생님이 야단쳤다고 너무 주눅 들지 말고,

8살 소년의 반짝반짝 빛나는 호기심. 이 소중한 자산을 벗 삼아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이 세상을 따뜻하고 밝게 빛내렴. 시선이 따뜻한 그런 작가가 되렴."


네. 잘 알겠습니다. 선생님.

성부와 성자, 성모 마리아 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고인 최루시아 선생님에게 영원한 안식과 평안한 휴식을 주소서.

아멘.




글을 마무리 지을 무렵에 날아온다. 깨톡이다.

은정이다. 내 브런치를 구독했단다.

드디어 나왔다. 100번째 구독자!

무려 51년 차 작가로서, 소중한 마음을 보내준 100번째

구독자께 커피 쿠폰이라도 보내드림은 마땅한 일이다.


복 받으소서. 나의 모든 독자님!


한 줄 요약 : 어떤 해프닝의 진정한 의미를 오랜시간을 지나고나서야 알게되는 경우가 우리 일상에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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