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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에는별땅에는꽃 Oct 18. 2024

K의 이야기

-K-

대학원을 등록했다. 집과 학원, 반복되는 일상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대학원은 멀리 서울까지 가야 했지만 하루 왕복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막상 등록을 하고 나니 실감이 났다. 약간의 삶의 변화를 주고 또 스스로 발전할 수 있겠지 생각했다. 


학원을 연지도 4년 가까이 되었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작은 학원이었지만 처음에 K는 엄청난 정성을 들였다. 하나하나 소품들을 골랐고, 인테리어도 신경을 썼다. 자리 잡기까지 고생은 했지만 어느새 수강생은 제법 많아졌다. 


일과 집 일상을 반복하던 때 친한 언니와 술자리가 생겼다. 오랜만에 마신 술.. 술기운이 올라오니 또 그 사람이 생각났다. M. 나의 22살 처음 봤고 몇 년을 좋아했다. 그 사람이 부르면 갔고 가라면 갔다. 그러나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던 사람. 나쁜 놈이라고 속으로 욕을 했지만 그 사람에 대한 마음까지는 변하지 않았다. 몇 차례 연애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이 마음속에 있었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오늘따라 그 사람 생각이 많이 났다. 언니에게 푸념식으로 말을 하니 전화해 보라고 말했다. 전화를?.. 받을까? 고민하고 고민을 했으나, 취기에 나의 이성은 감성을 이기지 못했다.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말을 할까. 이런저런 말을 하다 횡설수설했다. 그러다 혹시 지금 볼 수 있냐 물었다. 그 사람이 알겠다고 했다. 알겠다고? 왜? 내가 부르는데 온다고? 믿어지지 않았다. 그 사람이 오는 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막상 보니 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좋아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언니는 자리를 비켜줬다. 그날 우리는 밤새도록 대화를 했다. 웃고 떠들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른 채 대화를 하고 또 했다. M은 많이 변해 있었다. 자신감 가득했던 20대에서 이제는 뭔가 자신감 없고 어두워져 있었다. 무슨 힘들일이 많았는지 걱정되었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남을 가졌다. 


그러다 M이 만나자고 했다. 편지와 꽃. 그 사람 다운 방식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남을 시작했다. M은 날 아껴줬다. 이제는 내가 오라면 왔고 가라면 갔다. 그게 좋다고 말했다. 나를 위주로 모든 걸 맞춰줬다. 신기했다. 이 사람이 이제 내 것이 된 것 같았다. 드디어 나의 짝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갔다. 현실적인 것들이 이제 다가왔다. 대학원.. 아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과제를 해야 하는데, 학원도 운영해야 하는데.. 그리고 M도 봐야 하는데.. 그런 M은 회사가 아니면 모든 포커스를 K에게 맞추고 있었다. 미안함이 들었다. 기다리게 하는 모양새가 계속되었다. M에게는 일상이 없었다. 일이 끝나면 간단하게 조깅을 하는 모양새고 그리고는 술을 마시는 것 같았다. 어떻게 매일 마시지? 생각했다. 잠을 못 자는지 이따 금식 새벽 5,6시에 톡이 와있다. 이틀에 하루 잔다고 말했다. 그게 가능한 건가?... 정상적인 건가.. 시간이 더 갔다.


물론 함께 만나고 했을 때는 즐거웠다. 함께 맛있는 걸 먹고 술도 마시고 여행도 다녔다. 다만 이따 금식 보이는 M의 우울감 공허함이 점차 눈에 보였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대학원 수업이 끝나고 서울에서 내려오는 길 항상 데리러 와줬다. 집까지 바래다 주기 위해서다. 늦은 기차를 타고 내려왔기에 잠시 얼굴 밖에 보지 못하지만 1시간을 운전을 해야 했다. K는 그런 그에게 택시를 타겠다 했지만 M은 10분이라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차라리 1시간을… 본인을 위해 쓰지 …라는 생각이 깊어졌다. 


미안함은 어느새 의문이 되었다. K가 바라는 건 간단했다. 각자 일상을 잘 보내고, 만났을 때 또 행복한 시간을 가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을 잘 보내야 한다. 하지만 M의 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자기 위해서 술을 마셨다. 우울감에 빠져있었다. 가끔 멍해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감정기복이 심했다. 스스로를 위해 하는 게 없었다. 스스로를 위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를 배워보는 게 어때하고 싶은 건 없어?라고 물었다. 그때마다 M은 나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어떻게 그렇지.. 점점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함이 몰려왔다. 나는 할게 이렇게 많은데 왜 그는 나만을 바라보고 있지..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이게 있을 텐데.. 이해하려 했다. 그럼에도 좋았으니까. 


하지만 점차 시간이 갈수록 그에 대한 생각이 굳어진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K도 점차 바빠졌다. 1학기를 중간고사를 이미 망쳤다. 원하는 점수를 받지 못했다. 물론 연애를 시작하고 데이트에 시간을 많이 썼기 때문이지만 그 또한 K의 선택이었다. 남은 학기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점차 바빠짐에 따라 신경 쓸 것들이 많아진다. 그럴수록 M은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늘어날수록 M은 스스로 공허함을 달랬다. 취기로.. 아니라고 하지만 늘 통화에 취기가 묻어 있었다. 그리고  점차 그의 우울감이 나의 우울감을 건드렸다. 영향을 주고 있었다. 점차 M의 기분을 신경 쓰고 있는 날이 많아졌다. 가끔 아무 말 없이 있을 때 숨이 막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점점 그런 순간들이 많아졌다. K는 말했다. 좀 바뀌어 보자고. M은 그럴 때마다 알겠다고 했지만 순간만 이어질 뿐 변하지 않았다. 


이미 저 공허함에 중독되어 술이 아니면 나를 통해 그걸 망각하고 살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노력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바뀌어야 한다. K는 그런 그에게 이별을 말했다. K는 지금까지 느낀 점을 어쩌면 더 냉정하고 날카롭게 말했다. 한심하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못 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원한다고 말했다. 행복을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매일 통화에서 취기를 찾는 나의 모습이 이제는 지겹다고 말했다. 아닌 척 하지만 사람에게 굉장히 의존적이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위해 살아보라고 말했다. 나는 함께 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그는 K를 잡고 또 잡았다. 이렇게는 못 끝내겠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바뀌겠다고 말했다. 술도 우울함도 어떻게든 고치겠다고 말했다. K는 이미 지쳤다고 말했다. 혼자 바뀌어 보라 말했다. 바뀌고 내년에 그때 연락하라고 말했다. 더 이상 연락 하지 말라고 말했다. 아픈 말들을 내뱉었다. 


이게 그에게 도움이 될까. 내가 아는 20대의 M은 그냥 그대로 살아갈 사람이다. 변하긴 할까. 이대로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확신이 들었기에 K는 그를 상처 줬다. 진심으로 변하길 바랐다. K 역시 아팠다. 돌고 돌아 겨우 만났는데..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변해 있는 M이었다. K가 옆에 있으면 K에게 의지 할 것이다. 스스로 변하지 못할 것이다. 그날 이후 그에게 연락이 없었다. 우린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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