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희 Jan 04. 2018

체온을 마주하는 일







신이 말했다. 1년 동안 기사님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는 것, 삼시 세끼 요리사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는 것, 개인 마사지사와 함께할 수 있는 것. ‘이 중 하나를 고르거라’ 일말의 고민도 없이 나는 개인 마사지사와 함께하는 1년을 보낼 거다. 아쉽게도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 “어깨 좀 주물러줘”, “손 좀 주물러줘”라 말해도 허공에 흩어질 뿐 그 누구도 지친 내 어깨와 손을 만져주는 이는 없다. 테니스공을 공과, 골프공으로 셀프 마사지를 해보고, 폼롤러를 샀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와중 동네 커피숍을 지날 때 세워진 입간판이 떠올랐다. ‘XX 더 타이, 오픈 할인’ 한 시간에 오만 원이 넘는 돈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아 늘 마음만 있었는데 오픈 할인이라는 달콤한 말에 4층 마사지샵으로 향했다. 


방을 안내받고, 옷을 갈아입었다. 5분 정도 캄캄한 1평 남짓의 방에 있었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니. 코팅된 안내 문구가 보인다. ‘사와디 캅’, ‘고쿤갑’이라는 인사와 감사를 전하는 말을 시작으로, ‘어깨=라이’, ‘목=커’, ‘많이=여여’라는 글씨가 보였다.  ‘난 목이랑 어깨가 아프니까 외워야겠다’ ‘라이 여여’, ‘커 여여’ 혼자 중얼중얼 거리며 외웠다. 태국어 공부에 열중하고 있던 때. 마사지사가 들어왔다.


‘사와디 캅’을 하려는데 “안녕하세요”라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 마사지사에 당황해서 “아, 네 안녕하세요”라 말했다. 물론 두 손을 모으는 일은 잊지 않았다. (예전에 2pm 닉쿤에게 배웠다. 닉쿤과는 9년 이상 알고 지냈다.  닉쿤은 나를 모르고, 나만 닉쿤을 아는 일방적인 관계다. Tv의 한계다)


인사를 끝내고는 따뜻한 손으로 등을 천천히 눌러주셨다. 그리고는 이내 손바닥에 힘을 실어 누르자 뚝뚝 소리가 났다. 왠지 벌써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목과 어깨를 눌러주셨다. 체온과 체온이 맞닿는 게 오랜만이었다.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드는 찰나 마사지사는 “디롱” ‘디롱’이라 말했다. 디롱이 뭔가 싶었는데 눈치를 보니 엎드려있던 자세를 바꿔 천장을 보고 누워있으라는 뜻 같았다. 그러니까 ‘뒤로’, ‘뒤로’ 천장을 얼굴과 마주하고 이내 눈을 감았다. 마사지사는 “great” 칭찬을 해줬고 나는. 고쿤캅을 또 써먹지 못하고 “땡큐”라 말했다.


눈으로 힐끔 시계를 보면서 ‘아 시간이 왜 이렇게 빨 리가지’하며 아쉬워하는데 옆으로 자리를 옮기신다. 손을 잡고는 손가락 하나하나 꾹꾹 눌러줬다.  종아리를 눌러주고, 허리를 발로 꾹꾹 눌러줬다. 1시간의 타이 마사지가 끝났다. “고생하셨어요”라 말해주셨다. 고생 하나도 안 하고 호강했는데 되려 고생했다 말한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손을 합장해서 고개를 숙이고 ‘고쿤캅’이라고 말했다. 드디어 태국어를 써먹었다.


마사지는 조금 아쉬웠다. 힘이 약했다. 조금 더 세게 해주시길 바랐다. 말할까 했지만 그럼 더 고생하시는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 천천히 꼼꼼하게 마사지해주시면서 체온을 나눠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1시간에 3만 원을 쓰고 태국어도 배웠다. 마사지를 받기 전과 별 차이는 없지만 받는 동안은 좋았으니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타인의 체온이 전해지는 게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잡아준 거친 손은 따뜻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