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골프, 골퍼, 스윙, 그리고 몸

피지컬과 유연성, 근력, 지식, 열정과 인내 사이의 어딘가

by 골프치는 한의사

#1.

처음 그 형님을 뵌 것은 한 골프 유튜버의 팬모임에서였다. 그분은 모임의 매니저로서 카카오톡 단체방과 이벤트 등을 주관하고 계셨고, 훤칠한 키에 백발이 멋진 형님이었다. 그 분과 친해지면서 같이 라운드도 하고 연습장도 다니곤 했었다. 그때는 아직 골프클리닉을 구상하기도 전이었는데, 그 형님과 자주 같이 공을 치다 보니 그 형님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눈에 들어왔다. 매니저로서 레슨 기회도 많이 받고 라운드도 자주 다니던 형님이었는데 계속 공이 많이 휘어지는 거다.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키가 180이 넘고 팔도 긴 편이셔서 거리는 문제가 없었는데, 방향성이 와이파이인 게 문제였다.

형님의 스윙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니 스윙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연찮게 허리 통증으로 한의원에 방문하셨었는데, 치료를 하다 보니 형님의 요추가 역 C자로 휘어져 있었다. 여쭤보니 오래되었다고 한다. 허리 탓에 어깨까지 라운드숄더로 굽어 있었고, 양팔의 외회전이 원활하지 않은 체형이었다. 다운스윙에서 오른쪽 어깨가 외회전 되지 않으니 엎어 내려오고, 팔로 스루에서 왼쪽 어깨가 외회전 되지 않으니 치킨윙이 된다.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이 만세 스윙이었다. 팔과 손이 항상 몸 앞에 있는다는 생각으로 팔을 수직으로 움직여 스윙을 하면 공이 휘는 정도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18홀 내내 이어지기에는 너무 불안했고, 조금만 힘이 들어가거나 반대로 컨디션이 떨어져도 유연성이 떨어지는 탓에 공이 좌우로 휘어버리곤 했다. 척추가 역 C자로 휘어 있으면 익스텐션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골반 회전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고, 하체로 힘을 쓰지 못하니 거리가 날리 만무했다. 큰 키와 긴 팔로 거리는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었지만 척추 교정이 일찍 이루어졌다면 훨씬 더 많은 비거리를 가질 수 있었을 거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모임이 공중분해되면서 형님과의 연락도 끊긴 지 몇 년이 되었지만, 그 웃음과 그 스윙은 가끔 기억이 난다.


#2.

그는 40대 초반의 싱글 골퍼였다. 175cm 정도의 키에 건장한 체형. 한눈에 장타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은 두툼했고 악력은 강했다. 1년 전 오른쪽 골반을 다쳐 힘을 쓰지 못하면서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렸다고 한다. 아픈 골반을 가지고 계속 라운드를 하다 보니 왼쪽 어깨까지 통증이 생겼다. 도저히 라운드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하고 골프클리닉에 내원했다.

이미 70대 스코어를 꾸준히 치고 있는 골퍼에게 통증과 스윙에 대한 설명은 의미가 없다. 3개월 정도 꾸준히 골반과 어깨를 치료했고, 골반 통증이 70% 정도 호전되었을 때 다시 연습과 라운드를 재개했다. 아직 잔디가 올라오기도 전인 2월에 그는 모임에서 주최한 라운드에서 1등을 했다며 웃으며 한의원에 들어왔다. 골반 통증이 완전히 가셔서 거리도 거의 다 회복했다고 한다. 그렇게 치료를 마무리하나 싶었는데 최근에 한의원을 방문했다. 왼쪽 어깨가 아직 완전하게 낫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오른쪽 골반을 밀지 못하니 왼쪽 어깨를 당기면서 부족한 힘을 보충하게 되고, 그 피로가 누적되면서 왼쪽 어깨 앞쪽의 전삼각근에 염증이 생겼다. 보통은 슬라이스가 나기 쉬운 상황이지만 70대 스코어의 골퍼는 손목의 움직임만으로 구질을 조절할 수 있는 수준이므로 실제 샷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통증과 그로 인한 비거리 감소가 문제다. 지금도 가끔 한의원에 방문해 치료를 받곤 한다.


#3.

그는 왼손잡이 반대 스윙을 하는 골퍼다. 키가 작고 근육량이 많지는 않지만 유연성이 좋은 편이다. 필라테스를 1년 동안 했고 강사 자격증 권유를 받을 정도로 몸의 유연성을 키웠다. 단지 운동 신경이 없다 보니 오른팔로 클럽을 휘두르는데 익숙하지가 않다. 공에서 멀어지는 게 두려워 백스윙은 뒤집어지고 다운스윙을 왼팔로 당기니 샤프트는 수직으로 엎어내려 와 푸시 슬라이스 구질을 만들어 낸다. 클럽이 길어질수록 우측으로 휘어지는 정도가 심해진다. 오르막 파 5가 제일 두렵다. 억지로 구력이 쌓여가다 보니 어프로치와 퍼팅은 모임에서도 수준급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왼팔로 당기는 스윙보다는 오른손잡이처럼 스윙하기로 결정했고, 한 팔 스윙을 500개씩 연습하며 오른팔의 감을 익혔다. 그렇게 인아웃 스윙궤도를 만들었을 때쯤 오른쪽 어깨에 오십견이 왔다. 외회전을 너무 과도하게 연습한 거다. 두 달간 채를 전혀 잡지 못했고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통증을 치료하고 난 후 다시 채를 잡았고, 오십견 후유증으로 굳은 어깨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유난히 악력이 약했던 그는 악력기 두 개를 사서 하나는 사무실에, 하나는 차에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끙끙거리며 악력기를 쥐어댔다. 오른 어깨가 괜찮아질 무렵, 그는 왼쪽 어깨도 외회전이 원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땅히 치료를 받을 곳을 찾지 못한 탓에 그는 또다시 긴 여정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로테이터 연습기를 사서 외회전을 몸에 익히고, 밤마다 폼롤러를 어깨에 끼고 누워 넷플릭스를 시청한다. 가끔 짜증이 날 때면 왼손잡이 채를 검색해 보곤 하는 게 취미가 되었다. 장비병 환자인 탓에 지금 있는 채를 다 팔아야 하는 게 귀찮아서 왼손으로 전향할 생각은 꿈도 꾸지 않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드로우와 페이드에 대한 새로운 D-plane의 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