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을 시작하면서, 골프를 다시 생각해보다
나는 런린이다.
런데이 어플에 있는 11.38km를 합치면 11월 22일 토요일까지의 월 마일리지는 67.78km가 된다. 오늘은 쉬는 날이다. 이틀 뛰고 하루 쉬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30분 달리기로 설정하고 달려서 4~5km 남짓을 달리다가 나흘 전부터 40분으로 시간을 늘리면서 6km까지 달리게 되었다. 계획대로라면 11월 30일까지 6번을 더 달릴 수 있으니 최대 36km를 더하면 11월 목표 마일리지는 100km가 된다. 내년 3월까지 10km를 60분으로 달리는 것이 목표다. 현재 6분 30초 페이스로 달리고 있으니 거리를 채우기에도 속도를 늘리기에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
40년이 넘게 살아오면서 운동을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운동은 단연 달리기였다. 작은 키와 없는 운동 신경에도 공을 다루는 것은 나쁘지 않았던 반면 소위 기초 체력 운동이라고 일컬어지는 움직임들은 말 그대로 젬병이었다. 그중 가장 하기 싫었던 것이 달리기다. 느렸고, 무거웠고, 힘겨웠다. 왜 뛰어야 하는지도 몰랐고, 쇳덩어리를 드는 것이 훨씬 나았다. 급하고 꾸준하지 못한 성격도 한몫했던 것 같다. 집중해서 빠르게 끝내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단순 반복을 싫어하는 편인데, 대표적인 운동이 바로 달리기였다.
러닝 열풍을 실감하기 시작했던 것은 한의원에 러너 환자들이 오면서부터였다. 지금도 내 한의원에는 운동 중 다치거나 통증이 생겨 방문하는 환자의 비율이 절반이 넘을 정도다. 전문클리닉으로 운영했던 골프와 야구 이외에도 헬스, 크로스핏, F45, 클라이밍, 탁구, 배드민턴과 역도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치료를 위해 한의원에 방문했다. 주변에 달리는 원장님들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달리기를 권유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주위를 둘러보니 살고 있는 아파트 입구에 200m짜리 트랙이 있었다. 학교도 아니고 왜 아파트 옆 천변 공터에 크기만 작을 뿐 완벽하게 깔린 트랙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구입한 지 몇 년이 지났는지도 모를 운동화를 신고 트랙을 달려보기 시작한 것이 9월 즈음이었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은 10월부터였고, 지금처럼 이틀 뛰고 하루를 쉬기 시작한 것이 11월부터다. 러닝에 대한 책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고, 골프를 시작했을 때처럼 러닝 유튜브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운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러닝은 굉장히 독특한 스포츠다. 분명 효율적인 달리기 주법은 존재한다. 하지만 마라톤 마스터스의 최상위급 선수들의 달리기 주법은 절대 동일하지 않다. 이 다양성은 골프나 야구 등의 스포츠에서 나타나는 스윙이나 움직임의 다양성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는 특징이 있다. 모두 다르고, 심지어 효율적이지 않은 주법으로 달리기도 한다. 그런데 빠른 속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기록도 좋다. 다른 스포츠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비효율적인데, 좋은 성적을 낸다?
러닝 유튜브를 보고 책으로 공부하면서 러닝만의 특징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누구나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천천히 뛰게 되는데, 이를 조깅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천천히 뛰면 된다. 숨이 차지 않게, 뛰면서 말을 할 수 있는 속도로, 편안하게 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오래 달리다 보면 저절로 달리는 시간이 늘어나고 속도도 빨라지게 된다. 생체 역학적으로 효율적인 주법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굳이 교정하거나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계속 달리면 된다. 그러다 보면 빨라지고, 오래 달릴 수 있게 된다. 인터벌이나 업힐, 지속주와 거리주, LSD 훈련 등은 풀코스를 뛸 정도가 되었을 때 성적 향상을 위해 요구되는 훈련이다. 10km를 뛰기 위해서, 하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조깅만으로도 충분하다. 평소 오래 달리는 훈련이 충분히 쌓여 있다면 말이다.
러닝의 일관성과 효율성은 바로 뇌에서 나온다. 우리가 걸을 때 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달릴 때도 뇌를 최대한 쓰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뇌가 근육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일일이 신경 쓰지 않도록 최대한 일관된 움직임으로 달릴 수 있다면, 우리 몸은 알아서 최적의 효율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산소를 사용해 달릴 수 있다면 심박이 안정되고 호흡도 가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천천히 오래 달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오래 달리더라도 뇌를 쓰지 않을 수 있으면 우리 몸은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다. 익숙함 가운데 근육과 인대, 근신경계가 활성화되면 우리 몸은 점점 더 오래, 더 빠르게 달릴 수 있게 된다. 마일리지가 중요한 이유다.
러닝이 다른 운동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골프는 생체 역학적인 효율이 매우 중요한 운동이다.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어 공을 강하게 타격하려면 짧은 순간 힘이 분산되지 않고 공에 그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최대한 효율적인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최대 효율을 내는 움직임은 정해져 있으며, 그 효율을 꾸준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연습량과 함께 효율적인 움직임을 감당할 수 있는 근력과 유연성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골프를 잘 치기 위해서는 체력과 근력, 유연성이 동시에 요구되며 골프가 건강에 좋다기보다는 골프를 잘 치기 위해서 건강해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러닝은 그렇지 않다. 한 걸음 한 걸음의 효율이 골프 스윙의 그것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다. 발목이 조금 회내 돼도, 무릎이 조금 잠겨도, 고관절이 많이 들리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의 걷는 속도는 피지컬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누구나 비슷한 속도로 걸을 수 있다. 천천히 뛰는 속도는 사람이라면 다 비슷하다. 효율이 그렇게 큰 구별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러닝을 공부하면서 일관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는 것. 내 몸의 움직임을 크게 의식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몇 분, 몇십 분, 몇 시간째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 일정한 움직임을 소뇌에 프로그래밍해서 입력시키는 것. 골프에는 이런 연습 방법이 없을까.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연습법. 특히 추운 겨울철에 다음 시즌을 준비하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연습법. 딱히 준비물도 필요 없고 공간만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연습법.
바로 빈 스윙이다.
내가 처음 골프를 접했을 때, 행복골프의 김헌 교장선생님은 빈 스윙을 엄청 강조하셨던 분이다. 하루 빈 스윙 300개로 빈 스윙 만 번을 달성하면 누구나 골프를 잘 칠 수 있다고 주장하셨고, 실제로 그 연습법으로 많은 골퍼들이 실력을 향상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도 빈 스윙을 만 번 했었냐고? 이 질문을 하시는 분은 이 글을 정독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위로 올라가 서론 부분을 다시 읽어보시라. 했겠는가.
빈 스윙은 지겹다. 공을 치지 않기 때문에 재미도 없다. 아무 생각 없이 클럽을 휘두르다 보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자괴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폼도 제멋대로고 척추각도 유지되지 않고 반복 연습인 탓에 피니시 자세도 취하지 않는다. 이걸 매일 300개나 하라고? 이건 연습이 아니라 벌칙이다. 그냥 연습장 가서 공에 집중해서 치는 것이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훨씬 낫지 않겠는가.
빈 스윙은 내 몸에, 정확하게는 소뇌에 골프 스윙의 움직임을 프로그래밍하는 일이다. 공을 치지 않기 때문에 이상한 동작이 나오지 않으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클럽을 휘두를 수 있다. 우리가 레슨 받을 때 공이 없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휘두르라는 조언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가. 빈 스윙은 임팩트가 없으므로 끊어짐이 없고 공을 강하게 타격하기 위한 순간적인 흐트러짐 또한 나타나지 않는다. 누구나 막대기를 가볍게 휘두를 수 있다. 척추각이니 하체의 움직임이니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자연스럽게 휘둘러라. 휘두르고, 돌아와서 또 휘둘러라. 쉬지 않고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하다 보면 개수가 하나 둘 채워지게 된다. 우리 몸은 편안하게 클럽을 휘두르는 반복적인 움직임을 소뇌에 저장하게 된다. 그러다 공을 치면 또 이상한 움직임이 나오면서 애써 만든 스윙이 망가지기 때문에, 빈 스윙의 개수는 달리기의 걸음수만큼이나 많아야 한다. 그리고 한 번에 이루어져야 한다. 기억될 때까지. 이전의 이상한 움직임 따위 소뇌에서 완전히 지워질 때까지.
내년 USGTF 도전을 앞두고, 연말까지는 공을 치지 않기로 했다. 2년 전 오른팔을 무리하게 연습하다 오른쪽 어깨에 오십견이 왔는데, 통증은 사라졌지만 아직 가동 범위가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서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면 여지없이 탑볼을 치거나 끝에서 오른쪽으로 휘는 공이 나타난다. 적어도 연말까지는 빈 스윙 연습을 통해 오른쪽 어깨의 움직임을 올바르고 익숙하게 만들어 소뇌에 저장할 계획이다. 연습은 사흘에 한 번, 러닝을 쉴 때 하기로 했다. 500개쯤 휘두르고 나면 어깨 회복에 이틀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최적이다. 달리기에 재미를 붙였으니 회복을 위해 쉬는 날에 빈 스윙에 집중할 수 있다. 어깨 통증은 달리기에 영향을 주지 않으니 어깨가 아파도 달릴 수 있다. 최고다.
빈 스윙 제대로 해보신 적 있는지 물어본다. 하루 100개만이라도 가볍게 휘둘러보시기를 권한다. 스윙의 모양이나 몸의 움직임을 전혀 생각하지 말고 내 손에 있는 막대기를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휘둘러 보라. 우리의 뇌는 몸에 명령을 내려 최적화된 효율을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빈 스윙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생각이 들 때 다시금 공을 쳐보라. 움직임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공도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