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외출 : 군생활을 시작하며

추사관

by 김형우

2018년 1월 4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였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고, 훈련소의 모든 것은 꽁꽁 얼어붙었다. 20대의 초반의 낭만이란 것은 이제 빙하기를 맞이해 멸종되어 버렸고, 추위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훈련병 들이 무리 지어 기약 없는 해빙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논산 훈련소 4주 후 제주 경찰학교 3주, 그리고 자대배치 후 한 달. 어느덧 추위는 지나가고 봄이 찾아왔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는 봄이라지만, 당시 내게 시작되는 것은 캠퍼스의 낭만도 새학기의 다짐도 아닌 지긋한 군생활 뿐이었기에, 시작이라는 단어는 설렘보다는 착잡함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SNS 상에서는 봄을 즐기는 수 백 가지 방법들이 오르내리고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도 나의 일이 아니었다. 시골마을 구석진 곳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 한 명. 그게 그해 봄 내가 맡은 역할이었다. 아무것도 자랑할 게 없고,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문득 내 존재가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오랜 기다림 끝에 첫 외출이 찾아왔다. 일주일에 한 번 부대 밖으로 나와 사회공기를 쐬는 시간. 나는 이 시간을 특히 자유롭게 보내고 싶었고, 새삼 의미 있게 쓰고 싶었다. 일주일에 하루 씩이라도 초라하지 않은 척 지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한 주 한 주를 초라하지 않은 척하다보면 정말로 초라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기대를 쥐어짜내었다.

초라함을 떨쳐내기 위해선 누구보다 특별하게 그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20개월이라는 시간, 제주도라는 공간 속에서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그래서 제주를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수 십 년간 모르고 살았던 내 고향의 이야기를 알아보고자 하였고, 남들이 그렇게 여행하고 싶어 하는 이 섬을 누구보다 구석구석 누비고 다니고 싶었다. 그렇게 지도 어플을 이리저리 확대하며 가볼 만한 곳들을 찾아다녔다. 전역할 때까지 제주도 전역을 모두 둘러보자, 라는 야심찬 목표를 노트 첫 페이지에 적으면서. 그리고 바로 다음 줄에는, 기왕 돌아다닐 거 책까지 써보자는 생각을 자그맣게 적어두었다.


이후의 20개월은 내적 갈등의 연속이었다. ‘그게 되겠나’하는 의문과 ‘뭐라도 해야지’하는 다짐이 서로 힘겨루기를 지속하였다. 물론, 나는 어떻게든 다짐에게 유리한 편파판정을 내리려던 심판이었다. 전역이 한참 멀었다는 생각, 군대에서 몸부림치는 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수시로 부유하였지만, 그런 회의감은 꾹 눌러둔 채 억지로나마 희망을 삼켜보기로 했다. 뭐라도 시도한다면 20개월 후 빛을 발할 것이라는 희망을.


여행기를 목표로 삼으니 가야 할 곳이 너무나도 많았다. 허나 당시의 나는 운전 경력 전무한 뚜벅이일 뿐이었고, 부대로 돌아오는 길도 헷갈리던 신병일 뿐이었다. 갓 전입한 이등병이 여행 다닌답시고 복귀시간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단 부대 주변의 장소들부터 모색해보기로 하였다. 마침 근처의 추사관이란 곳을 발견했다.

추사, 김정희. 역사 교과서에서 심심치 않게 보았던 이름이다. 내 기억 속에서 ‘제주도 유배생활’이라는 특징이 떠올랐다.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이라니, 참으로 상징적이다. 제주에서 원치 않은 20개월을 보내게 된 나와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 동질감에서 오는 묘한 이끌림과 함께, 추사관은 나의 제주여행 첫 장소로 낙점되었다.


추사관이 자리 잡고 있는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일대는 대정성지라는 읍성 터인데, 현무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벽 밖으로는 마늘밭들이 죽 이어져있어 정겨운 제주 시골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시멘트 집들과 작은 가게들을 지나 성벽 안으로 들어서면, 감자창고처럼 생긴 목조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 건물이 바로 추사관이다.

건축가 승효상 선생이 설계한 추사관 건물은,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 ‘세한도’ 그림 속의 집을 본 따 만들었다. 화려하기보다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추구한 이 건축물은 시골 마을의 분위기와 대정성지의 풍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군더더기 장식 없이 단정하게 세워진 낮은 건물을 보고 있노라니 유배당한 이의 마음에 생겼을 정신적 고요가 느껴지는 듯하다.

20180411_173645.jpg 추사관은 세한도 그림 속 집을 본따 설계되었다.

추사관 관람은 계단을 따라 지하로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그재그로 난 계단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가 본다. 전시실로 들어서니 때마침 해설사분께서 전시 해설을 시작하시던 참이었다.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추사의 생애에서부터 그의 작품세계까지 차근차근 따라간다.


추사 김정희는 젊은 나이에서부터 뛰어난 지식인이었다. 30대에 문과 급제 후 벼슬에 나가서도 탄탄대로를 걷던 그였지만, 이후 안동 김씨 가문과의 정쟁에 휘말리게 된다. 그 결과 그의 출세는 꺾이고 유배길에 올라 제주에서 약 9년간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제주와 같은 섬으로 유배 보내는 것은 당시 가장 가혹한 형벌 중 하나였고, 추사에게는 여기에다가 집 주위에 가시 울타리를 두르고 가둬두는 위리안치 형까지 처해졌다. 바로 이 추사관 자리가 추사가 혹독한 유배생활을 치르던 장소였다.

추사에게 있어 제주에서의 9년은 사회적으로 모든 것을 잃고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예술혼을 치열하게 갈고 닦아낸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는 벼루를 10개나 구멍 내면서 그의 글씨를 갈고 닦았고, 그 결과물이 바로 그 유명한 추사체이다. 유배 이전의 추사의 글씨는 다른 명인들의 글씨를 본뜨려하면서 ‘기름지다’고 평가되었는데, 처절했던 제주살이를 거치며 그의 글씨에는 기름기가 빠지고 울분과 성찰, 해학이 담긴 독자적인 추사체로 거듭났다고 한다.

추사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세한도 역시 제주 유배시절에 나왔다. 제자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그린 그림인 세한도는 소나무와 잣나무, 그리고 그 사이의 집만으로 간결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림 한 켠에는 ‘날이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 잣나무의 푸름을 안다’는 논어의 구절이 적혀있다. 제주 유배생활이라는 인생의 혹한기를 거치며 그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전 생애에 걸쳐 끊임없이 쓰고 그려온 추사의 작품들을 지나 한 층을 올라가면 정 가운데에 추사의 흉상만이 홀로 놓여 있다. 유배지에서 추사가 느꼈을 쓸쓸함이 느껴지는 듯하면서도, 속세를 떠나 마음을 비워낸 자가 얻게 된 정신적 고요함 역시도 느껴지는 듯하다. 흉상의 시선을 따라가보면, 건물의 동그란 창을 향한다. 창 밖으로는 소나무가 보이고, 햇빛이 들어온다. 세한도의 그림 속으로 들어온 듯하다.


신영복 선생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교도소가 ’밑바닥‘이라는 사실입니다. ··· 이처럼 낮고 어두운 밑바닥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기에 걸맞는 ’철학‘을 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습니다. ··· 이러한 자세는 곧 막힌 벽으로부터 시선을 들어올려 하늘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유배지에서의 성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원치 않게 놓이게 된 제약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는 것. 제약의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것은 더욱 치열한 고행을 요할 것이다. 그들의 시간을 떠올리자니 내가 빼앗긴 시간은 무척이나 소박해 보인다. 그 소박함으로 인해 나의 의지는 더욱 굳건해진다. 딱 20개월, 최선을 다해 정신을 집중하리라고. 멍하니 벽을 보기보단 목 아플 정도로 하늘만 바라보리라고. 하나의 벼루라도 구멍을 내고 전역해보겠다고. 유배지에서도 명작을 그리고, 감옥에서도 고전을 남기는 와중에, 군대에서 책 쓰는 게 안 될 게 뭐가 있나.


이 날의 작은 여행은 이후 나의 군생활에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책을 쓰는 과정에 회의감과 게으름이라는 적들이 나를 방해하려 들 때쯤이면, 추사를 떠올렸다. 내 시간은 소박한 고행일 뿐이라는 생각, 그렇기에 이 정도 고난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꿋꿋이 하늘을 바라보는 것 쯤은 해낼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언젠가 내 눈 앞에서도 소나무의 푸르름이 반짝거릴 날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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