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설록
4월이 되자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풀잎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황량했던 황갈색 초목들은 따스한 햇볕을 들여 마시고 비로소 생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부대 앞 도로변에도, 집 앞 골목길에도, 시골의 돌담길 옆으로도 초록색이 스며들었다. 자연이 섬 곳곳에 꼼꼼히 물감을 칠해가는 가운데, 녹색 물감을 유독 진하게 칠한 곳이 있으니, 바로 오설록 차밭이다.
차밭이라 하면 왠지 산 속 깊숙한 곳에 숨어있을 것만 같았는데, 도로변 바로 옆으로 녹색 계단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햇빛을 어디서 먼저 떼어 오는 것인지, 오설록 차밭은 다른 장소에서 움트는 풀잎들보다도 더 선명한 색깔을 내고 있었고, 색깔만으로도 부족했는지 특우의 쌉싸름한 향기마저 분주하게 내뿜고 있었다. 드넓게 펼쳐진 오설록 차밭은 제주 여행 필수코스 중 하나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차밭 틈새로 들어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차밭 반대편에는 오설록 티 뮤지엄이 있어 차를 테마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었다. 뮤지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차를 주제로 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차 문화의 역사, 한국의 전통 다구와 세계의 찻잔 등, ‘차’를 주제로 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동선이 길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다.
차 전시관을 보고나면 자연스럽게 티 스토어에 다다르게 된다. 오설록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진열해놓고 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은 종류의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갓 우려낸 신선한 차를 시음해볼 수도 있다.
티 스토어를 지나 뮤지엄 건물을 나오면, 검은색 벼루 같이 생긴 건물을 볼 수 있는데, 바로 티스톤이다. 사전 예약을 하면 이곳에서 다도 체험을 할 수 있다. 체험은 추사 김정희를 소재로 한 비디오 아트를 감상하며 시작된다. 사실 추사와 제주, 차는 서로 인연이 깊다. 엄청난 차 애호가였던 추사는 제주도에 유배를 와서도 차 사랑을 멈추지 않았고, 당시 차 문화를 주도하던 초의선사에게 제주도로 차를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고도 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고급 원두를 해외에서 직구해서 먹는 정도의 애호가였던 것이다.
미디어아트 감상이 끝나면 다도실의 문이 열리고 본격적으로 다도 수업이 시작된다. 천천히 차를 우려내면서 우리가 마시는 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같은 차를 총 세 번 우려내 마셨는데, 서두름이 없이 잔잔하게 차를 우려내고 있자니 저절로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다.
다도체험이 끝난 후에는 티스톤의 지하로 내려가 차들이 발효되고 있는 숙성창고를 구경해볼 수 있다. 창고 벽면의 글귀에서는 다시 한 번 추사가 차 문화를 예찬하고 있었다.
‘조용한 가운데 혼자 앉아 차를 마심에 그 향기는 처음과 같고 물은 저절로 흐르고 꽃은 저만치 홀로 피니’
조용히 홀로 음미하는 차. 추사는 차를 통해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경험을 한 것이 아닐까. 혀 끝에 닿은 차는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고, 순간 세상의 잡음을 없애주어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그 속에 존재한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추사에게 다도란 일종의 명상이었을 테고, 차를 음미하는 것은 지혜를 닦는 행위였을 것이다.
허나 추사가 애초부터 ‘지혜’나 ‘깨달음’을 위해 차를 마신 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추사가 다도를 즐긴 것이 특별히 고상한 취미였다던가, 고도의 정신 수행 혹은 철저한 자기관리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추사가 차를 마신 것은 순전히 그것이 그에게 맛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도는 그의 취미였고, 그는 삶의 즐거움을 얻고자 취미를 즐겼을 뿐이다. 지혜와 깨달음은 그 즐거움의 부산물로, 기대치 않게 받게 된 선물처럼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취미에는 우열이 없다. 차분하게 차를 음미하는 것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방구석에서 홀로 영화를 즐기는 것도, 여럿이서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것도 모두 특별한 취미이다. 구태여 좋은 취미와 좋지 못한 취미를 구분해야 한다면, 그 기준은 ‘나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지’, 오직 그 하나일 것이다.
척박한 제주 땅에 홀로 유배 온 추사가 다도를 즐긴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가 차를 마신 것은, 고급 녹찻잎을 구했다고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요, 해박한 지식을 쌓아 남들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주변엔 자랑할 이도, 인정해줄 이도 없었기에 그의 취미는 온전히 추사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한 다도였기에 오히려 그는 더 몰입할 수 있었고, 그 행위에서 깨달음도 얻어갈 수 있었다.
현재 우리는 추사의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은 취미를 훨씬 더 쉽게 즐길 수 있다. ‘취미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보편적인 시대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취미를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자랑할 만한 취미', '잘 할 수 있는 취미', '생산적인 취미'를 찾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그러느라 자기 만족을 위한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리고 만다. 허나 추사가 그랬듯, 취미의 기준은 오직 나 자신이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취미를 시작하는 것이고, 그럴 때 우리는 그 활동에 몰입할 수 있다. 몰입은 나를 내면 세계로 이끌어,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그 발견의 결과가 추사처럼 철학적 깨달음이 될 수도 있지만, 사실 꼭 그럴 필요마저도 없다. 취미에 당위성은 없다. 굳이 당위를 정해야한다면, 그건 그저 즐겨야 한다는 것 뿐이다. 즐겁다는 감정이 새로운 몰입을 이끌고, 그러한 몰입의 반복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경험을 누리게 된다. 깨달음, 자기계발, 전문지식... 이런 것들은 그저 만족의 과정에서 얻게 되는 '기대치 못한 선물'일 뿐이다. 굳이 마다할 필요도 없고, 동시에 구태여 연연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느 캐릭터가 방송에서 말했다. '이유는 없어, 그냥 해!' 어쩌면 이것이 취미의 본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