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달리기

함께 나아가고 싶은 시간 - 에세이

by 오로라

명절을 지내고 보름이 지났을 무렵이다. 방 안에 놓아둔 식물이 내 눈에 들어왔다. 시들시들 말라 가는 모습에 마음이 쓰여 욕실에서 물을 주었다. 그리고 물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

두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집에서 햄스터를 키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햄스터들은 한 여름을 이기지 못하고 통 안에 죽어 있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생명을 함부로 가져다 키우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애완동물 대신 백도선이나 카스트리아 같은 다육이와 산세베리아를 가져다 키웠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니 키우기 수월한 식물이었다. 그런데 명절이나 가족행사, 여행 일정이 잡혀 있으면 바빠서 이마저도 잘 챙기지 못했다. 괜스레 식물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화분 아래 구멍에서 물이 흘러나오며 똑! 똑!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물을 머금은 식물이 생기를 되찾는 것처럼 보여 다행이었다. 욕실 문턱에 걸터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고 14년 정도가 흘렀다. 열심히 달려온 것 같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신없이 달리느라 나와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열심히만 달려왔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몸에서 점점 기운이 빠져나가고 아픈 날이 많았다. 나를 돌보는 데 소홀했고, 무리를 한 대가가 나를 뒤따랐다. 몸이 망가져 큰 수술을 받아야 했고, 해오던 일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많이 부족했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많이 넘쳤던 것 같다.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괴로웠던 적도 있다.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기보다 집에 머물거나 침대에 누워 있는 날이 더 많았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고, 서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그동안 쌓은 것은 모래성이었고, 나의 몸짓은 땅에서 발을 떼지 못한 서툰 날갯짓이었나?’

나는 오랫동안 나한테 주어진 현실에 절망하였던 것 같다.



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것은 바로 글쓰기였다.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이웃 사람들이었다. 나는 내 안의 괴롭고 부정적인 생각들을 글쓰기를 통해 쏟아냈다. 처음에는 내가 써서 나만 보는 글을 적었다. 그러다가 글쓰기 강좌를 수강하고, 독서모임에도 나갔다. 그곳에서 다정한 이웃을 만났다. 차츰 글벗들에게도 수줍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글벗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구나!’

‘다들 저마다의 상처를 하나씩 가지고 살아가는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는구나!’

글벗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앞만 보고 달려 나갈 때와는 다른 감동과 울림이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와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




식물에 물이 다 빠지자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두 아들이 어딘가 나갈 채비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거실로 나가자,

“엄마! 운동 다녀올게요.”

작은 아들이 말했다.

“그래, 어디로 가는데?”

내가 궁금해 하자

“동네 한 바퀴 돌고 올게요.”

큰 아들이 대답한다.

“같이 갈까?”

내가 용기를 내어 말하자

“좋죠! 같이 가요.”

두 아들이 동시에 말한다. 아직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해서 기분이 좋았다.

방으로 들어가 움직이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아이들이랑 참 오랜만에 운동을 가는 것 같다. 그동안 코로나 19로 거의 집에 있었다. 몸이 뻐근할 때면 동영상을 틀어 놓고 요가나 체조를 따라 했었다.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화창하다. 가을 하늘이 저 멀리 도망가 있었다. 미세먼지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이다.

두 아들이랑 집 근처 숲길을 걸었다. 가끔 운동 삼아 걸었던 곳이다. 방음벽 너머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예전보다 사람들이 많이 걷고 있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온 사람, 이어폰을 꽂고 혼자 걷는 사람, 연인처럼 손을 잡고 걷는 사람, 수다를 떨며 걷는 사람, 아이를 데리고 같이 걷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들 마스크를 끼고 있는 것이 예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난번에는 흙길이었는데 시멘트를 깔아 놓은 걸 발견했다. 시멘트 길 위로 마른 흙먼지가 폴폴 날렸다. 흰 운동화 위에 금세 뿌연 먼지가 앉았다. 예전 흙길이 더 운치 있고 좋았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휠체어가 다니기에 수월하고, 비가 올 때도 걸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새 길을 깔았나 보다 생각했다.

작은 아들이 걷는 것을 보니 어거적 어거적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물어보니 신발이 작다고 했다. 조만간 새 신발을 사주기로 했다. 큰 아들은 중학생이 되더니 키가 훌쩍 자랐다. 뒤따라 걸으며 자식 자란 모습을 보니 부모로서 맘이 든든했다.

조금 걸으니 금방 숨이 차올랐다. 마스크를 끼고 숨을 쉬니 김이 서려 안경알이 뿌옇게 됐다. 아이들이 나를 보고 웃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마스크 코 부분을 살짝 내렸다. 그러자 바람을 타고 솔 내음, 흙냄새가 났다. 옅은 풀 냄새도 났다.




“한 번 달려 볼까?”

“네, 좋아요!”

아이들과 숲길을 달렸다. 갈림길이 나오면 나눠서 달리다가 다시 하나로 만나서 달렸다. 얼마 못 가 나는 지쳤지만, 아이들은 계속 달려 나갔다. 구름다리를 지나 양쪽에 메타세쿼이아가 심어져 있는 쭉 뻗은 길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더 신나서 달렸다. 아이들의 모습이 점점 작게 보였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이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멈춘 뒤 뒤돌아서서 걸어온 길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무리하지 않고, 나의 능력만큼 시간 달리기를 해야지'

아이들이 다시 되돌아 뛰어 온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거리며 뛰어 온다. 나도 모르게 아이들을 향해 양 팔을 벌려 본다. 다 자란 아이들이 거부한다. 머쓱했다. 대신 달리느라 애썼다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엄마와 함께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나무 사이로 햇살이 반짝였다. 어디선가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들렸다. 아이들과 나는 새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제23회 전국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출품작(2020. 10. 17)


<작가의 말>

2020년은 코로나 19로 인해 힘들고, 마음 졸였던 한 해였습니다. 희망을 품기 어려운 시기였지만,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 마음 먹으니 글쓰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일상의 혼란스러움, 감정의 소용돌이들이 하나하나 정리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상을 돌보고, 다시 시작하고, 움직일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올 한 해 제 글을 읽고 소중한 하트를 보내주시고, 구독을 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에도 각자의 속도에 맞춰 시간 달리기 잘하시길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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