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기 나름
나는 잠들고 꾸는 꿈을 상당히 신뢰하는 편이다. 꿈을 많이 꾸느라 정작 숙면은 취하지 못하는 날이 많지만 그건 별개의 일로 치자. 그 꿈들이 모두 들어맞았냐고 묻는다면 사실 기억나는 게 몇 개 없으니 그리 잘 맞는 건 아닌 듯하다. 하지만 분명히 무의식에서 내게 말해주는 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꿈을 꾸고 나면 잠결에도 홀린 듯이 해몽을 검색한다. 지금 보니 그냥 그런 행위를 즐기는 거 같기도 하다.
그중 특히 내가 좋아했던 꿈은 태몽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한 번도 사주를 본 적이 없다. 가끔 삶이 너무 힘들 때 도대체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싶어서 보러 가려했었지만 뭔가 연이 안 맞았던 건지 아직까지도 보러 간 적이 없다. 그동안 내 선택을 확인하려고 타로를 본 적도 있지만 삶이 평탄하게 흘러갈 때면 사실 사주까지 보러 가고 싶지는 않다. 온전히 나다운 선택을 하고 싶다고 해야 하나.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 사주 보는 사람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중요한 사람이 될 테니 잘 지켜보라고.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는 내 사주가 좋으니 굳이 보러 갈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 내용을 다 믿진 않았지만 좀 안심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였으니까.
특히 난 엄마가 말해준 내 태몽을 좋아했다. 맨 처음 들었을 때, 엄청 커다란 무지개가 엄마한테로 쏟아졌다는 꿈으로 기억했다. 해몽을 좋아하는 나답게 그 이야기를 듣고는 솔직히 좀 설레는 마음으로 무지개 태몽들을 검색했다. 하나같이 큰 사람이 될 거라는 좋은 이야기뿐이라 비범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뻤다. 이후로 종종 무지개가 담긴 아이템들을 보며 내 태몽을 떠올리곤 했다. 난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엄마에게 무지개 태몽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는 기억을 정정했다. 무지개가 아닌 빛이었다고 말했다. 큰 빛이 엄마에게 쏟아지는 꿈이라고. 사실 정말 내 기억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엄마의 기억이 달라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들었던 기억으론 무지개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빛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 혼자 무지개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이길 바랬으니까.
엄마가 그렇게 정정해줬어도 한동안은 인지부조화마냥 내 태몽을 여전히 무지개로 떠올렸다. 이제는 엄마가 다시 알려준 태몽으로 제대로 기억하곤 있지만 사실 그건 내가 믿기 나름인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엄마가 꿨던 태몽이 무지개든 커다란 빛이든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무지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렇게 믿어도 되는 일 아닐까.
비슷한 이유로 나는 꿈을 꾸고 나서 해몽을 검색하지만 결국 내가 듣고 싶은, 원하는 대로의 해석으로 만들어낸다. 안 좋은 이야기가 섞여있다 한들 내식대로 좋게 다듬어보고 좋은 이야기가 있다면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일들을 그 꿈들로 잔뜩 포장해 기분 좋게 정리한다.
물론 가끔은 해몽이 필요하지 않은 아주 직관적인 꿈들도 꾼다. 그건 대개 악몽의 모습을 띠고 있다. 상황은 모두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내가 상처받았던, 상처받을 법한 순간들이다. 아주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진심을 외면받으면서 끝없이 내 억울함을 호소한다. 갈등이 심화되는 동안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남을 계속 공격하려 해도 내 상처가 깊어진다.
꿈에서 깨고 나면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닌데도 너무 진이 빠져 숨이 가쁘다. 실제로 겪었던 일들과 버무려져서 잠시동안 정신이 멍하기도 하다. 이건 사실이 아니야. 진짜가 아니야. 계속 나를 달래주다 겨우 정신을 차리면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불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엔 그 속에서도 좋은 점들을 찾아내려 한다. 그건 내가 실제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과거의 나라면 상대방이 나를 공격할 때 그 비난을 모두 받아내기만 하면서 상처받았을 것이다. 요즘에 꾸는 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론 똑같이 상처받는다는 걸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안에서 끝없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사투한다. 상대방이 들어주든 무시하든 끊임없이 반박하며 내 고통과 감정을 알린다.
그런 꿈을 꿀 때 처음엔 도대체 나한테 뭘 알려주려는 건가 싶었다. 앞으로 또 누군가와 싸우게 될 거란 예고라면 정말 끔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츰 생각해보니 그 꿈은 내가 잘 변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나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려준 것이다. 아마 예전과 비슷한 갈등을 겪게 된다해도 다르게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잠에서 깼을 때 그렇게 지쳐버렸던 건 꿈속에서조차도 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또 내가 대견했다. 잠드는 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잠들었으면 좋겠지만은 꿈속에서도 나는 이토록 또 열심히 노력하고 있나 보다. 역시 어떤 꿈을 꾸든 그건 내가 해석하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