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
유치원을 다닐 때 입김이 나오는 걸 보고 용이 불을 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의 칭찬에 내 꿈이 정해졌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릴 때부터 칭찬에 목매는 편이었으니까.
초등학생 때 친구 부모님이 주도하던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주말에 갯벌이나 유적지 같은 곳을 다녀오던 것으로 기억한다. 프로그램에서 가장 기대하던 순간은 일정을 다 마치고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일정이 끝날 때면 각자 짧게나마 여행기를 적어 제출했다. 순위를 정해 1등에게는 상을 주는 방식이었다. 승부욕이 강해 늘 1등을 차지하기 위해 글을 썼다. 어렵지 않게 1등을 차지했다.
학교 행사에서는 항상 글짓기를 선택했다. 내겐 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환경에 대해서건 불조심에 관해서건 언제나 생각이 많았다. 글을 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원고지를 받고서 어떤 걸 적어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글은 내게 말보다도 편한 수단이었다.
학예회에서 연극 대본을 쓴 적도 있었다. 원래 있던 동화 대본을 각색한 정도라 글을 썼다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내가 연극을 배울 거란 생각도 하지 못했을 때 도전했던 일이다. 오히려 아무 무서움이 없었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어 글을 썼다. 늘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다.
중학생, 고등학생을 지나면서 늘 일기를 썼다. 매일 꼬박꼬박 쓰는 성실한 타입은 아니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꾸준히 이어오는 습관이긴 하다. 스스로에게도 감정을 숨기게 되면서부터 털어내지 못한 감정이 많았다. 그때의 일기를 읽어보면 대부분이 분노와 슬픔이지만 살기 위해 글을 썼다. 들어줄 사람도 이해해 줄 사람도 없어 시간을 버텨내는 수단이었다.
이야기를 구상한 건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정확히 뭘 원했는지는 모르겠다. 얻어내려 했다기보다 도망치기 위한 방법이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그렇기 때문에 얻어내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나를 온전히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끔찍이도 싫은 사람에게 복수하기도 했다. 글의 형태라기보다 아이디어 구상에 그치긴 했어도 공상으로 가득 찬 공책은 그때 그 시간을 그대로 간직한다.
가장 많이 흔들린 시기이지만 결국 나라는 사람이 어느 정도 다져진 건 결국 고등학생 때인 것 같다. 일기를 쓰는 것과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두 가지는 내 일상에 아주 오랫동안 자리 잡게 됐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드라마 PD가 되고 싶어 매일 같이 글을 썼다. 불안한 마음에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는 생각으로 간절하게 매달렸다. 1000자 분량의 작문을 써내는 시험을 준비한 행위였다. 키워드를 뽑아낼 수 있는 책을 이용해 랜덤으로 단어들을 조합해 되든 안되든 글을 완성했다. 잘 써진 날에는 하루가 뿌듯했고 만족스럽지 않은 날엔 마음이 조급했다. 그 모든 작문은 합격하기 위한 글이었다. 시험에 떨어지면 모두 의미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의 이유는 오직 드라마 PD가 되기 위해서였다. PD가 되고 싶은 이유도 간단했다. 안정적인 수입을 받으며 좋아하는 연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직장이라는 점도 한 몫했다. 늘 다른 사람에게 나를 증명하고 싶었다.
매일같이 작문을 쓰며 실력이 좋아진 건 사실이다. 그렇게 바랬던 언론사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필기까지만 합격하면 면접은 무리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은 두려움이 앞섰다. 내 모든 게 까발려질 걸 예상했기 때문이다. 나 같아도 나를 뽑지 않을 거 같지만 그럼에도 합격 시켜주길 바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했다.
수업에서 알게 된 PD님에게 조언을 구하러 갔을 때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로 자신을 보여주라는 피드백 겸 응원을 들었다. 그 말에 나는 더 움츠러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진 게 없었다. 아니 그보단 내가 나를 너무 몰랐다. 어떤 질문을 들어도 내가 답하고 싶은 것보단 합격시켜줄 만한 답을 고르기 바빴다. 정답이 없는 선택지에서 정답을 고르려고 하니 답이 보일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