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필요한 피드백
면접관분들은 너무 따뜻했다. 후기로 듣던 무서운 압박 면접도 아니었다. 정말 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사회의 선배들이었다. 긴장한 나를 진정시켜주시기도 하고 많이 궁금해 해주셨다. 무섭게 하는 사람도 상황도 없었지만 내가 그렇게 떨었던 건 스스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두려운 질문은 다른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건 아주 본질적인 질문이었다.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면접 준비를 하면서도 가장 어려웠던 질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걸 알겠다. 초점이 완전히 타인에게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순간에도 어떤 답변을 해야 뽑힐 수 있을지에만 신경이 쏠려있었다. 내가 어떤 걸 만들고 싶은지 스스로에게조차 제대로 질문하지 않았다. 면접에서 잘 꾸며진 답변을 했지만 진심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합격이 된다면 그다음에야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탈락을 예감했고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많이 간절했던 꿈이었다. 뽑히지 않을 거 같다고 예상하면서도 내심 합격을 기대한 건 그만큼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내 노력으로 기적이 일어나길 원했다. 그 간절한 마음이 면접관들에게도 전달되기를 기대했다. 노력이 꼭 성과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는 다르길 바랬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는 와중에 언론고시 준비생으로 머무는 게 괴로웠다. 매일 같이 글을 써도 합격이 아니면 의미 없는 글이었다.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그 글들이 방향성 없이 흩어지는 상황이 괴로웠다. 필기시험에서 탈락했을 때에는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면접에서 떨어지니 마음 잡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보다는 면접관 마음에 들기 위해 고민하는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건 결국 내가 썼던 글 때문이었다. 언론고시를 처음 준비할 땐 어떻게 시작해야 될 지조차 몰라 스터디에 참여했었다. 운이 좋게 아무 경험도 없던 내가 합격자가 나와 공석이 된 스터디에 들어갔다. 작문 시험을 준비하며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피드백을 들으며 처음엔 많이 흔들렸다. 같은 글을 두고도 누군가는 좋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신랄하게 비난했다. 쓰고 싶은 글을 마구잡이로 써내다 차츰 욕먹기 싫어 스터디원에게 칭찬들을 만한 글을 써내기도 했다.
1년간의 스터디 생활을 끝으로 모임이 해체됐다. 내 글은 아직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한 기자분이 진행하는 작문 수업을 신청했다. 전문가의 피드백을 받으면 더 좋아질 거란 기대가 있었다. 한편으론 그분이 나를 이끌어주길 바라는 의존적인 생각이기도 했다. 수업을 들은 날 나와 안 맞는 사람이라 느꼈다. 성향자체도 많이 달랐지만 무엇보다 기자님이 써낸 글이 와닿지 않았다.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때 저 사람처럼 되고 싶은지가 내겐 중요하다. 성향이든 그 사람의 작품이든 그걸 동력으로 삼아서 더 열심히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님의 글을 보면서는 기자님과 비슷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하지만 그 글에 애정이 담겨있지는 않았다. 성과를 위한 기사라는 게 글에서도 읽혔다. 고민 끝에 강의를 취소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었다. 해보고 싶은 만큼 끝까지 해본 다음 그때도 도움이 필요하면 수업이든 스터디든 들어보자는 계획이었다. 이제 믿을 사람은 나뿐이었다. 글을 쓰고 피드백을 해줄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전에도 말했듯 난 내 글에 대해서 자부심은 갖지만 그건 좋은 글을 써냈을 때뿐이다. 오히려 너무 각박할 정도로 스스로의 글도 평가하는 편이라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편이기도 하다. 그런 나를 믿었다.
매일 같이 글을 쓴 건 스터디를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느슨해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좋은 글을 쓰는 것보다 꾸준하게 글을 써내며 그중에서 좋은 글을 건져내자는 생각이었다. 이런 방법을 취해보고서야 깨달았지만 내겐 혼자서 준비하는 방식이 더 잘 맞았다. 불필요한 피드백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피드백 자체를 싫어하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보지 못한 면을 깨닫게 해주고 새로운 의견을 제시해주는 게 고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유익한 피드백을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실 나 역시 누군가의 글에 피드백을 주는 게 쉽지 않다. 특히나 글이란 건 각자의 취향이 있으니 취향이 안 맞을 경우 제대로 된 의견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재미없다는 말 이상으로 해줄 말이 없으니까.
스터디를 할 때 감정소모가 심한 편이었다. 모두가 배려해서 의견을 전달하긴 했지만 그중 신랄하게 평가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실 도움이 되는 의견을 준다면 신랄하다고 한들 좋게 넘길 수 있지만 그저 비아냥거리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자존심이 강해 너무 표현이 지나치다고 지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글을 쓰는 동력은 저 사람마저도 인정하게끔 좋은 글을 쓰자는 것뿐이었다. 스터디를 하면서 방향을 잡기 어려운 건 그때 역시 중심이 다른 사람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글을 쓸 땐 내가 하는 평가에 집중했다. 판단이 흐려질 땐 정말 나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부탁했다. 그 사람들에게는 재미가 있는지의 여부도 귀 기울여 들었고 나와 다른 방향을 제시하더라도 이런 의견이 나올 수 있구나 하며 걸러 들을 수 있었다.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진 덕분에 어떤 걸 취해야 하고 어떤 걸 버려야 할지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쌓았다.
결과적으로 필기시험 합격을 이끈 건 오직 스스로의 힘이었다. 면접에서도 탈락했지만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다 생각한 건 가장 힘들거라 생각했던 작문 시험을 나에 대한 믿음으로 합격까지 이끌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