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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말정산_05

어디로 가야 할지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by 김물꽃

5월은 변수가 많은 나날이었다. 특히나 웹소설 강의를 취소하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올해 계획했던 일 중에서 제일 기대했던 일이었다. 첫 수업에서만 해도 강사님이 학생들을 존중해주는 모습에서 피드백이 기다려졌다. 하지만 과제 제출 후 피드백을 받았을 때 실망감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내용 파악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학생에 개개인에 맞는 피드백을 주기보다는 어딘가 통일된 모습의 피드백이었다. 피드백만 본다면 여러 작가의 작품이라기보다 강사님의 여러 버전이 나열된 느낌이었다.


그랬지만 취소하기까지는 고민을 했다. 지금 나는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누군가 이 길로 가면 안전하다고 끌어주길 바랬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잡아주는 주기적인 커리큘럼이 필요하기도 했다. 혼자서 기한도 없이 글을 쓰는 게 불안했으니까.


하지만 언론고시 준비할 때를 떠올리며 다시 답을 찾았다. 결국 이건 내가 혼자서 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브런치에서 작가 포스팅을 연재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브런치에도 웹소설 강의를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기 때문에 잘 끝마치고 싶었다. 계획이 틀어지니 실망도 크고 의욕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 마음을 공유하고 싶은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서 간접적으로 내 상태를 표현하게 된 것이다.


동력을 되찾은 건 의외의 곳이었다. 전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서 3년 만에 동료들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종종 따로 만난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모두가 다같이 모인 건 퇴사 이후 처음이었다. 신부의 결혼식을 보며, 또 회사에서 알고 지내던 감독님, 팀장님과 인사하니 그 무렵의 내가 떠올라 아련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곳은 드라마 제작사였다. 가끔 언급하기도 했지만 이곳의 추억은 그리 좋지 못하다. 노동 착취 수준으로 드라마 일이 아닌 일에도 끌려가 일하기도 했고 하루아침에 해고당하는 부당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때 버틸 수 있었던 건 오직 동료들 뿐이었다. 퇴사를 당한 날 술자리를 갖고 헤어질 때 자존심이 상한 걸 들키고 싶지 않아 끝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같이 떠나게 된 다른 동료가 펑펑 우는 동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웃기만 했다. 모두와 헤어지고 집에 들어가 내일부터 회사를 다니지 않게 됐다고 엄마에게 말할 때 그제서야 눈물이 쏟아졌다. 좋은 회사가 아닌 걸 알아도 남아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내가 실패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만나면 다들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는 결국 제일 먼저 탈출한 사람이 됐다. 회사를 다녔던 모두가 지금은 그 회사를 그만뒀다. 이제는 회사에 대한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서 꺼리는 분위기가 됐다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 들었다. 무엇보다 회사를 나간 뒤의 내 일이 잘 풀렸다. 회사를 다니며 모아뒀던 돈과 부당해고로 받은 퇴직금으로 단편영화를 만들기도 했고 그 경험을 내세워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제작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제작사를 다닐 때는 회사 이름을 말해도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릴 수 없었지만 지금은 어떤 작품을 했다고 말하면 경력이 증명된다. 내가 그런 식으로 나를 알리는 데 취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 회사에 남아있었다면 아마 경력을 쌓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결혼식에 가기 전에는 약간 긴장이 됐다. 오랜만에 만나니 너무 반갑기도 했지만 지금 일을 쉬고 있다 보니 위축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더욱이 들으려고 했던 웹소설 강의까지 파토났다보니 붕 떠있는 상태였으니 자신감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가기 직전까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안다며 나를 달랬다.


시간이 지난 만큼, 모두가 막내였던 시절을 지나 선배의 모습으로 변한 동료들을 보니 새삼 신기했다. 나도 오래 남아있었으면 저렇게 일하고 있었을까 싶기도 했다. 다른 동료들은 모두 일을 하고 있는 상태여서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이야기, 업계의 이야기들을 말해줬다. 동료들은 여전히 따뜻하고 재미있었지만 그 이야기들이 흥미롭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신기할 만큼 감흥이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 모습에 괜히 기가 죽어 지금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더 과장시켜 떠들어댔을 것 같다. 내가 지금 어떤 일들을 준비하는지,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증명하려 애쓰고는 현타가 왔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굳이 내가 뭘 증명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마음속에서 계속 들었던 생각은 아, 내가 이런 일 때문에 그만두려 했지 하는 깨달음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다시 돌아가겠구나 정신을 차리게 됐다. 제작사에 다니던 27살의 나는 이름 있는 작품을 하면 마냥 뿌듯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경력을 읊을 수 있는 사람이 부러웠다.


하지만 막상 상업영화를 하고 보니 이름값이 가진 허무함을 알게 됐다. 그건 어디까지나 이미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일궈놓은 자리에 내가 참여한 것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 이름이 내 능력을 보장하고 있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오히려 어디에서 일하든 정말 내꺼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증명해내지 않아도 경력이 채워지는 거라 생각한다.


동료들과 자리하며 동력을 얻었다는 건 내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다시 알아차리게 됐기 때문이었다. 유명한 작가님이나 감독님의 작품에 참여하는 건 더 이상 흥미롭지 않았다. 나는 내 이야기가 필요했다. 어떤 사람이 어느 자리에 올랐고 하는 문제도 이제 나를 설레게 하지 않았다.


너무 익숙한 그 이야기들을 다시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변하고 싶었다. 내게 맞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3년 전 원하지도 않는 일들을 부러워하던 나와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지만 예전처럼 다른 사람에게 흔들릴 정도는 아니라는 걸 이제 알 수 있었다.


집에 가는 동안 의지가 생겼다. 내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난 변하고 싶다. 주어진 대로 삶에 이끌려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가듯 그렇게 방치하고 싶지 않다. 예측한 대로 흘러간 5월은 아니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내가 원하는 대로 6월을 살아가고 싶다. 새로 시작할 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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