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선스틱

귀차니스트의 선택

by 김물꽃

최근 구매한 제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바로 선스틱이다. 이름대로 스틱 형태로 된 자외선 차단제이다. 사실 난 피부가 좋은 편도 아니지만 관리를 엄청 열심히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좋아지지 않은 건지도 모르지만. 관리를 하려면 대개가 그렇듯 부지런을 떨어야 하지만 난 귀찮음이 더 크다. 피부에 관해서는 딱히 당장의 필요성을 못 느끼다 보니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금방 나태해진다.


엄청 중요한 약속이 아니고서야 편한 상태로 돌아다니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 화장도 잘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외출할 때 선크림을 바르는 습관도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매번 선크림을 손에 덜어 얼굴에 바르고 그 답답함을 느끼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얼굴을 덮고 있는 막 같은 느낌은 아무리 발라도 익숙해지지 않는다ㅜ 아마 내가 촉각에 예민한 편이라 더 그렇기도 한 것 같다.


야외에 나가면 햇빛 때문에라도 발라야 한다고 생각해도 잠깐 나갈 때는 정말 고민됐다. 겨우 집 근처 도서관을 다녀오는 왕복 20분 정도의 거리인데 선크림을 발라야 하는 걸까. 잠깐이라면 피부도 눈감아 줄 수 있지 않을까 자기 합리화를 거쳤다. 매번 이기는 건 귀찮아하는 나였다. 집에 들어와서 바로 씻어낼 생각도 없는데 선크림을 바르고 견디는 상태도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겨울, 봄을 버티다 여름만큼은 햇빛을 무시할 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 잠깐 나가더라도 분명 자외선이 나를 공격할 거 같았다. 이십 대 초반을 넘어 중반까지도 미래의 내가 관리해주겠지라는 생각으로 마음껏 방치했지만 서른을 맞이하니 조금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게 된 제품이 바로 선스틱이다!


사실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서 이게 뭔가 싶기도 했다. 편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효과가 좋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근처 드럭스토어에서 구매하려다 찾아보니 종류가 그리 다양하지 않아서 결국 인터넷으로 주문하게 됐다. 선스틱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나는 몇 번의 합리화를 거치며 자외선 차단제 없이 외출을 감행했다.


약속 때문에 멀리 나갈 때야 화장을 하다 보니 결국 선스틱을 바르는 상황은 대개 동네를 돌아다닐 때뿐이다. 한국무용을 배우러 나갈 때나 도서관을 이용할 때, 산책하거나 장을 보러 가는 상황들이었다. 특히 한국무용은 아침 9시까지 센터로 가야 해서 일찍부터 움직이는데 그때 처음으로 선스틱을 사용했다. 사용법은 매우 간단하다. 뚜껑을 열고 립밤 바르듯 얼굴에 선스틱을 문대기만 하면 끝이다.


사용해 본 결과, 이 제품을 매우 추천한다. 궁금한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제품은 AHC 회사에서 나온 건데 써보고 좋으면 더사자 싶어 가장 적은 용량으로 구매했다. 하지만 자주 바르는 거 아닌 이상 적은 용량으로도 괜찮은 것 같다.


직접 발라보니 립밤으로 표현한 것처럼 얼굴에 문지르는 데도 불쾌하다거나 그런 불편한 느낌 없이 매우 부드럽게 쓱쓱 잘 발린다. 따로 하얘지는 것도 아니라 지금 발린 건가 싶기도 한데 사용후기들을 보면 효능은 좋다고 하니 난 그분들의 말을 믿는다. 효과가 없다 해도 이건 내게 플라시보 효과가 있다.


우선 정말 정말 간편하다. 잠깐만 밖으로 나가더라도 쓱 바르고 나가면 되기 때문에 뭐 1분도 안 걸린다. 따로 손에 덜어낼 필요도 없어 귀찮지도 않다. 무엇보다 좋은 건 나와의 타협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선크림 없이 밖을 나갈 때면 귀찮음으로 피부를 포기하는 거 같아 내심 마음에 걸리는 날이 있었지만 선스틱과 함께라면 늘 피부를 신경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참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사람은 참 신기하다. 하나에 대해서 이다지도 귀찮아하는 사람이 또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는 지겨울 만큼 부지런을 떠는 게 하나의 면으로는 역시 알 수 없구나 싶다. 피부에 관해서는 기초 관리, 화장 등 모든 면에서 심드렁한 나라서 게으르기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약간은 뜬금없지만) 책이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무조건 리뷰를 쓰는 습관이 있다. 이건 언제 어느 순간 보건 간에 나와의 약속처럼 버릇이 돼서 안 하면 더 이상하게 느껴지는 습관이다. 이런 불균형 덕분에 집중이 필요한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사실 너무 게을러 보이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이것 역시 자기 합리화처럼 더 있어 보이게 마무리 했다.


무튼 나처럼 피부에 너무 귀찮아하지만 막상 맨얼굴로 밖을 나가자니 햇빛이 걱정되는 사람이라면 선스틱을 무조건 추천한다. 귀찮음을 이렇게라도 극복해 낸 보답으로 내 피부가 햇빛에서 잘 지켜지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월말정산_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