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발견
요즘 꽂혀있는 게 있다면 디카페인 라떼를 만들어 먹는 일이다. 포스팅에서 내가 카페인을 못 마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오랫동안 겪었던 불안장애 때문인데 불안장애 자체는 나아지고 있어서 카페인을 조금씩 시도해보자 싶었지만 결국 익숙한 걸 찾게 된다. 그리고 쿵쾅거리는 느낌보다도 사실 밤에 잠을 잘 못 자다보니 웬만해선 그냥 안정하게 디카페인을 마신다.
아는 사람들은 알 텐데 디카페인으로 맛있는 커피를 찾기가 쉽지 않다. 카페인을 마셔도 되는 경우라면 사실 커피 자체에 그리 까다롭지 않은 편인 거 같은데 디카페인은 보통 산미 없이 쓴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다행히 집에서 아주 가까운 카페에 디카페인 커피를 파는데 한국무용을 배우고 돌아가는 길에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니 청량 그 자체였다. 아이스 음료를 사마시는 걸로 여름이 느껴졌다.
원래 라떼 자체는 잘 마시는 편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우유가 들어가다보니 커피를 마시고 나면 배가 불러서 밥을 먹고 마시기에도 애매하고 밥 대신 먹기에도 애매한 느낌이라 손이 가지 않았다. 가끔 정말 밥대신 빵으로 떄울 때 곁들이는 정도? 하지만 진짜 드물었다.
그러다 며칠 전 전시를 보러 성수동에 갔던 적이 있다.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가 일이 생겨 혼자 가게 됐었는데 나는 보통 우리 동네인데도 어디가 유명한지 잘 모른다. 다니던 데를 주로 다니는 편이라 전시를 보고 나왔는데 어디를 가야 할지 몰랐다. 특히 성수동 자체를 처음 가는 거였는데 주말이다보니 어딜 찾아가든 사람이 그득그득했다.
당장 뭐라도 들이키지 않으면 쓰러질 거 같은 날씨였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몇 집은 허탕을 치고 그나마 가까운 디카페인 카페를 찾아 방문했다. 체인점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됐는데 이름은 업사이드 커피였다.
다행히 자리가 있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은 이때도 카페에 갔다가 밥을 먹을 계획이었어서 라떼를 먹을 생각은 없었다. 근데 너무 날이 더워서 당이 떨어져 비엔나커피 같은 음료를 마시려고 했다. 그러다 잘못 고르게 된 게 해방촌 커피라는 라떼 종류의 커피였다. 비엔나커피에서 아메리카노를 플랫 화이트로 대체한 느낌이다.
다행히 그리 양이 많지는 않았는데 한 모금 마셔보고 양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보통 이런 종류의 음료를 디카페인으로 바꾸면 크림과 커피가 따로 노는 것처럼 느껴지는 커피가 많았다. 디카페인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크림은 맛있어도 커피가 너무 쓰거나 부족한 맛이 느껴져서 조화롭지가 않은 거다. 굳이 비유하자면 제대로 갈리지 않은 슬러쉬나 골고루 섞이지 않은 미숫가루 같달까.
하지만 이 커피는 크림과 커피의 경계가 사라진 것처럼 하나로 어우러져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한 모금에 원샷할 수 있는 그런 맛이었다. 식당도 찾아야 했다보니 바로 나갈 수는 없어 조금씩 나눠마셨지만 한 잔 더 시킬까 고민할 정도로 맛있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간 뭐에 홀린 듯 맛있는 라떼를 찾아 헤맸다. 원래 알고 있던 카페에 방문하기도 하고 몇 번 시켜 먹었던 카페에 주문하기도 했지만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몰랐다면 몰랐을까 이미 뭔가에 깨어버린 것처럼 기준이 높아져있었다. 그냥 맛이나 챙길 겸 카페인으로 마실까 싶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 영화팀 일을 할 때 카누 아이스 라떼를 미친 듯이 타먹었던 게 생각이 났다. (카페인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이것도 완전 추천이다. 그냥 라떼를 아이스로 마시는 게 아니라 아이스 버전으로 나온 게 맛있다.) 찾아보니 디카페인 버전 라떼도 있어서 그걸 구입하려다 일단은 아메리카노를 구입해서 마셔보기로 했다.
사실 그냥 아메키라노만 마셨을 땐 좀 밍밍한 맛이다. 한 모금 마시면 이게 뭔 맛이지? 질문하게 될 정도로 특색이 없는 느낌이다. 그래서 라떼로 타 마시려고 했을 때에도 별 기대가 안됐다. 그냥 뭐 시험 삼아 먹어보자 싶어서 2개 정도로 진하게 우리고 우유를 타서 마셔봤는데 진짜 며칠간 마셨던 라떼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라떼가 아니고 아메리카노로 구입한 건 내가 단 맛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였다. 특히 믹스커피는 너무 달게 느껴져서 일단은 우유만 타서 마셔보자 싶었던 건데 우유 고소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뭔가 입에 맞는 음료를 찾고 나니 괜히 뿌듯해졌다. 밖에서 사마시면서도 만족을 못하다가 집에서 간편하게 타 마실 수 있으니 더 좋기도 했다.
사실 이렇게 보니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들어간 탐색 과정이었던 거 같다. 역시 입맛에 맞는 건 본인이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그게 좋은 원두로 만든 비싼 커피이든 쉽게 구할 수 있고 저렴한 믹스커피이든 내 입맛에 맞아야 최고가 될 수 있다. 모든 취향이 그런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