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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Sep 04. 2023

월말정산_08_01

있는 그대로를 좋아한다는 것

많이 더웠던 여름이 지나간다. 별로 돌아다니지 않았는데도 충분히 여름을 느꼈던 걸 보면 올해 내가 제대로 계절을 만끽하고 있구나 싶다. 한편으론 계절의 끝으로 시간의 흐름을 알아차려서 그런지 왠지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미련은 없다. 이번 여름이 끝나도 다음 여름이 찾아온다는 걸 이젠 알고 있으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쉽게도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겠다는 버킷리스트는 지키지 못했다. 너무 더운 날은 피하고 비가 쏟아지는 날은 피하다보니 갈 수 있는 날이 없었다. 사실 덥고 비가 오는 게 여름다운 건데 난 아직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멀었나보다. 비키니는 포기하더라도 쉬어갈 틈이 필요하긴 해서 이번주 내로 휴가를 다녀올 생각이다. 내가 좋아하는 강릉으로!


프롭테라피에 대한 불평을 계속 쏟아냈는데 안 맞는 운동을 향한 비난은 이제 멈추고 나와 잘 맞는 요가로 갈아탔다. 좋아하지 않으면 그냥 좋아하지 않으면 되는 건데도 나는 꼭 그 티를 내게 된다. 어떤 걸 싫어하면 그걸 밀어내는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그 대상이 잘못됐다고 설명하고 싶나 보다.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프롭테라피에게는 괜히 미안.


다행히 오랜만에 돌아간 요가는 여전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뻣뻣해지는 속도도 빨라지는 건지 제대로 된 자세를 잡는 건 더 어려워졌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정확한 자세를 배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잘 따라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대충 흉내만 냈던 예전과 달리 요즘엔 좀만 엇나가도 선생님이 내게 달려온다. (조금 무서울 때도 많다.)


팔 하나하나 다리 하나하나 선생님께 찢기고 나면 바로 직전과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지만 그걸 지나고 나면 훨씬 시원하다. 제대로 고통을 느껴야만 나아질 수 있다는 건 마음에도 몸에도 똑같이 적용되나 보다. 


또 최근에 들었던 생각인데 사람마다 취향이란 게 참 제각각이라 누군가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무언가가 (혹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꼭 맞는다는 게 신기하다. 한편으론 감사하다고도 생각한다. 계기는 형부였다. 3살 차이 나는 언니는 11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형부와는 올해 들어 자주 만나게 됐다. 사실 엄청 외향적인 성격이셔서 나와는 좀 다른 결인데 아빠하고 비슷한 모습이 있다.


우리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걸 꼽으라면 술과 산이다.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형부는 산을 좋아하진 않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는 건 똑같다. 사실 아빠는 거의 매일을 술을 마시는 편이라 우리 집에선 그리 환대받지 못했다. 엄마와도 그것 때문에 자주 싸우기도 했고 난 그런 모습을 보고자라 취한 모습을 꺼리는 편이다. 언니도 그래서인지 술을 좋아해도 많이 마시는 것만큼은 매우 경계한다.


하지만 형부와 아빠, 두 사람이 모이면 상황은 달라진다. 언니와 다같이 만나기로 하고 둘이 먼저 만났을 때 언니가 온다는 소식에 먼저 쌓여있던 술병을 몰래 숨겼다고 한다. 아마 언니가 없었다면 병이 몇 개가 쌓이건 그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새로운 사람이 가족으로 들어왔다는 경계심이 먼저였지만 이렇게보면 형부에게 감사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비난만 받던 아빠가 누군가에는 그냥 함께하는 술친구로 존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잘못된 사람은 없고 잘맞느냐 안맞느냐만 있는 게 아닐까 하고도 생각한다.


사실 이건 나에 대한 이해를 먼저 받았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형부는 매번 언니가 걱정을 많이 한다며 일러주곤 했다. 처음엔 언니가 걱정해주는 걸 모를까봐 알려주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매번 반복되니 나중에는 내가 뭔가 잘못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계속 들으니 좀 귀찮아지기도 해서 걱정하는 게 정말 그렇게 많은지 언니에게 먼저 물어봤다.


언니와 대화하며 형부를 알아갔다. 형부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내가 공황장애를 겪었다는 것) 아니면 만났을 때 봤던 내 모습만으로도 파악했는지 내가 예민한 면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형부 앞에서는 특히나 숨기려고 했던 면이라 언니가 그렇게 말했을 때 조금 당황하기도 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예민함을 공격하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해하는 쪽이었다. 형부 역시 내 앞에선 늘 즐겁고 밝은 모습만 보여줘서 나와 전혀 다르다고만 생각했는데 언니는 형부에게도 감정적으로 예민한 면이 있다고 했다. 형부도 형부의 가족들과는 성향이 다른데 가장 친했던 친척 중에 성격이 비슷했던 분이 있었다고 한다. 그분과 정말 가깝게 지냈는데 안 좋은 선택을 했고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언니는 가족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소통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언니는 예민한 성격이라기보다 무던한 편이고 내가 알아차리는 것들을 쉽게 넘겨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 차이를 인정하기 전까지는 언니와도 벽을 두고 지내는 편이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자매가 몇차례 일들을 거치면서 언니도 나도 우리가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서부터 깊은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형부도 그런 사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혹시라도 내가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언니가 사라지면 많이 힘들어할까봐 걱정하는 거였다. 


우리 가족에게 내 예민함이란 늘 공격하기 쉬운 약점이었다. 부당함에 대한 호소를 해도 그건 내가 예민하기 때문이라고 치부됐기 때문에 난 나라는 사람을 숨기려고 했다. 굳이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으려고도 하지 않고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려 조심하기만 했다. 형부에게서 처음으로 예민함에 대한 이해를 받아본 순간이었다. 형부의 걱정이 귀찮기보다는 감사하게 느껴졌다. 정말로 내 안위를 걱정한다는 걸 알게 됐다. 


작년, 언니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정말 걱정스러웠다. 언니가 떠나면 집에 남을 사람은 아빠, 엄마, 나 세 사람이니 그 조합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아마 그때 형부의 걱정을 들었다면 나조차도 내가 걱정스러워서 형부의 말이 더 부담이 됐을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언니의 도움 없이도 내 자리를 지켜내는 법을 배웠다. 


형부의 걱정을 듣고 나보다는 형부가 많이 힘들었겠다 싶어 걱정하게 되는 걸 보니 내가 많이 단단해졌고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형부와도 언젠가 서로의 예민함에 대해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다. 형부에게도 새로운 가족에게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받는 감사함을 보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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