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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Oct 16. 2023

여름휴가_05

내가 숙소를 고른 가장 큰 이유는 특별한 이벤트 때문이었다. 저녁이면 손님들끼리 모여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었다. 사실 친화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편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혼자 여행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해서 관심이 생겼다. 가뜩이나 머리가 복잡하던 때였고 불멍하면서 힐링하고 싶었다.


첫날에는 굳이 캠프파이어를 신청하지 않고 혼자서 밤을 보냈다. 여행할 날이 더 남은 시점에 얼굴을 알아두면 불편할 거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 관계를 오래 가져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건 아니라 캠프파이어를 한다면 떠나기 전날, 하루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캠프파이어는 8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어도 시간이 좀 남아있었다. 놀만큼 다 놀았더니 소설 써놨던 걸 다시 들여다볼 수 있을 거 같았다. 아이패드를 들고 숙소 다락방에 올라가 쓱 훑어보며 자체 피드백을 거쳤다. 확실히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들여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거 같았고 내 글이 더 객관적으로 읽혔다. 수정사항을 간략하게 적어두곤 돌아가서 새로 작업하기로 마음먹었다. 왠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바깥이 꽤 깜깜해졌는데 아직 캠프파이어가 준비된 거 같진 않았다. 혼자서 둘러볼 겸 밖으로 나갔다가 아예 숙소를 벗어나 그 근처 밭이 있는 곳을 걸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별이 보였다. 별을 보는 건 오랜만이라 엄청 반가웠다. 어떤 전시에서 옛날 사람들은 달을 티비처럼 쳐다보고 있었을 거라고 했었는데 나도 계속 별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별 움직임 없이 그냥 그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이때, 내가 여행하기 전부터 계속 듣던 노래가 오아이스의 샴페인 슈퍼노바라는 곡이었는데 곡 분위기랑도 너무 잘 어울리는 밤이었다. 원곡도 너무 좋지만 여행하는 동안에는 백예린이 부른 버전에 꽂혀있었다. 나는 한곡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그걸 듣는 편이라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들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번 여행의 테마곡처럼 이 노래가 흘렀다. 


어떤 사람은 여행지에서 향수를 구입하고 향으로 여행을 기억한다는데 나는 노래로 이번 여행을 추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에 돌아와서는 노래에 대한 흥미가 사그라들었지만 노래에 맞춰 영상을 편집해뒀는데 사진보다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대충 시간이 8시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슬슬 숙소로 돌아갔다. 방에는 어떤 사람이 책상에 앉아 뭔갈 하고 있었는데 캠프파이어를 가기 전 미리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사실 많이 떨렸다. 지나갈 사람에게는 말을 쉽게 걸지만 뭔가 오래 대화를 나눠야 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건 오랜만이라 두근거렸다. 그래도 캠프파이어에서 너무 뻘쭘하게 있는 것보다 미리 좀 말을 트고 누구라도 알고 난 다음에 가는 게 편할 거 같아서 용기를 냈다.


알고보니 그분은 어제도 캠프파이어에 참여했던 사람이었다. 같이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은 이미 다 숙소를 떠난 후라서 오늘은 그분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기숙사 이야기를 하고 학교 이야기를 하시길래 아 대학생인가 보다 하고 대화를 이어가는데 갑자기 몇 살 같냐고 물어봤다. 나는 당연히 이십대 초반이겠지 싶어 그렇게 말하는데 자신이 중학생이라고 말했다.


상상도 못한 나이라 일단 이십대 초반이라 말한 것에 사과부터 하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는데 너무 신기했다. 그분은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학교에서 혼자 여행하는 걸 과제로 내줘서 자신도 혼자 여행하는 건 처음이라 했다. 나도 몰랐지만 국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숙박허가증을 내주는데 그걸 인정해주는 숙소를 찾다 이곳으로 오게 됐다고 말해줬다. 


역시 새로운 곳에 오니 다와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구나 하며 캠프파이어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 올랐다. 그분도 너무 재미있었다며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같이 여행 다녔다는 말에 오늘 밤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자리에 앉아있으니 한두 분씩 모이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옆에서 불을 붙여주고 규칙을 설명해주셨는데 설명을 마치고 난 다음엔 쿨하게 떠나셨다. 사실 난 나보다 오래 사신 분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해서 좀 아쉽기도 했다. 한번 붙잡았는데 빠르게 떠나셨다.


맨 처음엔 다들 내성적인 분들이 모이셨던 건지 숨 막히게 조용해서 내가 말을 꺼냈다. 나 역시 강력한 내향인이지만 정적을 참을 수는 없어 용기를 냈던 건데 다행히 몇 분이 더 모이기 시작하면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니 확실히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사실 이야기도 그렇고 모인 분들도 정적인 분들이 많아 막 엄청 재밌는 분위기라기보다 굉장히 평화로웠다. 


그러다 어떤 분이 사실 자기는 일출을 보고 싶은데 같이 볼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나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일출을 보고 싶긴 했지만 당장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도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날 자신이 없어 손을 들진 않았다. 캠프파이어는 자정에 끝난다고 정해져 있었지만 방으로 돌아가 씻고 정리할 생각으로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나니 사실 에너지가 떨어져 침대로 들어가 보충하는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에 조금 아쉽기도 했다. 왠지 더 못한 것이 있는 것 같아 미련이 남을 것 같다가도 이만하면 괜찮았지 하고 잠이 들었다.


알람도 없이 일어나니 새벽 5시였다. 첫차를 타고 올라갈 생각이었어서 대충 계산했을 때 6시에 일어날 예정이었으니 훨씬 일찍 일어난 셈이었다. 다시 잘까도 고민했지만 지금 일어난 건 아마도 일출을 보러 가라는 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떡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어제 몇 분이서 가기로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복도에서 기다리는데 잠에서 깬 몇몇 분이 밖으로 나왔다. “저도 일출 보러 가려고요.” 말을 건네고 나도 그 일행 속에 속했다. 3명 정도 가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5명이서 일출을 보러 가게 됐다. 


(분량 조절에는 완전히 실패했다. 여행기는 다음번이 진짜 찐 마지막이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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