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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Nov 20. 2023

한국무용_02

한 번에 하나씩

5월에 첫 번째 글을 쓰고 이제서야 두 번째 글을 쓴다는 게 양심 없어서 스스로도 뜨끔한다. 근데 요즘 들어 계속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늦게서나마 한국무용 포스팅을 이어 본다.


모든 춤이 그렇겠지만 한국 무용 역시 하나의 작품을 들어가기 전에 기본 동작들을 먼저 배운다. 처음엔 간단한 동작들을 외우기만 하면 되니까 그리 어렵지 않았다. 팔동작에도 순서가 정해져있어 번호로 암기하면 되는데 좀 헷갈리긴 했지만 반복해서 하다보면 저절로 익혀졌다. 하지만 진도를 나가면서 발동작과 팔동작을 함께 하다보면 이미 외웠던 것도 한순간에 뒤엉켰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춤을 배울 때도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는 거 같다. 우선 난 많이 조급한 편이다. 처음 배우는 게 있어도 머릿속으로는 한 30년쯤 해온 장인의 모습을 떠올려서 그런지 초보인 나를 쉽게 용납해주지 않는다. 한국 무용을 배울 때도 난 이걸 처음 해보는 거니까 당연히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고 실수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 텐데도 그걸 봐주지 않았다.


무엇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완벽에 집착하다보니 오히려 동작들이 흩어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마음만 조급해서 당장 해내지 못하는 나를 답답해했다. 그런 학생을 많이 봐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였기 때문인지 선생님은 적절한 조언을 알려주셨다. 그건 엄청난 비결이 담긴 이야기는 아니었다.


‘한 번에 하나씩’


이상하게 이 말을 듣고는 마음이 편해졌다. 동작을 배우고 작품을 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순서가 헷갈리다보니 머릿속에서 지금의 동작을 하면서도 다음 동작을 떠올리느라 지금 걸 놓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한 번에 하나씩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동작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불안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조급한 성격은 일상생활에서도 불쑥불쑥 나타난다. 할 일은 남아있는데 시간이 정해져있을 때 이걸 모두 끝내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진다. 그럼 한순간은 어떤 순서로 해야 완벽하게 끝낼 수 있을까에 집착하며 머릿속으로 떠올려보다 일과들이 서로 엉켜 꼬여버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무용 선생님이 말해줬던 그 조언을 떠올린다. 한 번에 하나씩.


어떤 순서로든 일단 당장의 일을 하나 해치우고, 그다음일을 해치우고 그러다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할 일을 끝낼 수 있다. 모든 일을 끝내기 어려울 거 같다면 우선은 가장 급한 일 먼저 하나, 그다음 중요한 일 하나 해치워나가면 된다.


당장 며칠 전만 해도 이 말을 떠올렸다. 난 잠을 못 자면 많이 예민해지는데 그날이 그랬다. 8시 정도면 일어나지만 집에서 들리는 소음 때문에 6시쯤 잠에서 깼다. 일단 일어나보려고 몸을 일으켜 차도 마시고 밥도 먹었다.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 글을 써보려는데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결국은 다시 기절하듯 잠들었다. 다시 일어났을 땐 10시였고 1시에는 요가를 가야했다. 나는 그 사이 브런치 글을 써야했고 영어공부도 해야 됐고 소설도 쓰고 싶었다. 


서두르면 모두 할 수 있겠다 싶어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변수는 몸이 안좋았다는 거다. 잠을 제대로 못 잤기 때문인지 이제 또 시작될 생리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일어날 때 몸에 있는 피가 모두 빠져나가는 것처럼 어지러웠고 당장이라도 토하고 기절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고 싶은 욕심은 알겠지만 이러다 아플 거 같다는 예감이 딱 들었다.


누워서 조금 쉬고는 있었지만 마음은 급했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요가는 빠지고 싶지 않은데 브런치 글을 못 쓰고 나가면 업로드는 더 늦어질 거고 쉬면서도 쉬는 게 아니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몸은 조금 괜찮아졌다. 잘 먹는다고 했는데 양이 부족했던 건지 먹을 것도 좀 챙겨먹으니 나아졌다. 이미 1시는 지났지만 금요일엔 2시 30분 수업도 있어서 그것만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상호대차를 신청해둔 책도 빌려야 했다. 요가가 끝나면 도서관이 닫기 때문에 먼저 들러야했다. 


1시 50분쯤,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브런치도 써야하고, 소설도 써야되고 2시 30분까지 요가도 가야하니 몸보다도 정신이 더 빠르게 움직이는 거 같았다. 그러다 다시 한번 그 말을 떠올렸다. 한 번에 하나씩. 한 번에 딱 하나씩만 해내자. 가장 급한 건 브런치였다. 노트북을 열고 글을 써갔다. 아침에 쓰다 만 글은 전부 지워내고 처음부터 다시 적었다. 완전히 마음에 드는 건 아니어도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였다.


시간은 어느새 2시 20분이 되어있었다. 일어나서 씻지도 않은 상태라 서둘러 세수를 하고 로션도 발랐다. 시간을 강박적으로 지키는 사람이라 사실 늦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늦어서 안 가는 것보다 아예 빠지는 게 더 싫을 것 같았다. 준비를 끝내니 벌써 30분은 넘었지만 그래도 밖으로 나갔다. 도서관에서 무사히 책을 빌렸고 요가 수업도 늦게나마 참여했다.


원래 듣던 타임이 아닌 데다 늦었더니 자리가 없었다. (부득이한 경우 다른 시간대에 듣는 건 괜찮다고 하셨다.) 선생님께 인사하고 구석탱이에 요가 매트를 깔자 옆에 있던 분이 자리를 좀 비켜주셨고 선생님도 다가와 다른 짐들을 치워주셨다. 늦게 가본 것도, 원래 시간이 아닌 때에 가본 것도 처음이었지만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요가를 끝내곤 집으로 돌아와 아직 못다 한 일들을 하나씩 마무리 지었다. 영어공부도 하고 전날 배운 춤 동작을 떠올리며 연습도 했다. 몸도 마음도 다시 자리잡았을 때 노트북을 열고 소설도 이어나갔다. 결국 모든 일들을 끝낼 수 있었다. 아무리 복잡한 일도 고민도 한 번에 하나씩만 떠올리면 은근히 간단해진다. 모두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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