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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Nov 17. 2023

트라우마_39

처음부터 15년의 세월을 예측한 건 아니었다

내가 나라는 사람이 되도록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있다. 나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나눠봤을 때 아마 80퍼센트 정도의 많은 비율을 차지할 사람들은 바로 가장 오래된 친구들이다. 중학교 3학년, 16살에 만나 벌써 15년의 인연을 이어오는 이 친구들은 친구라는 이름에 담아두기엔 너무 각별하다.


남자친구하고 헤어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하고의 모임이 있었다. 이 친구들에게 받았던 위로를 전달하려면 우선 우리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언급하는 편이 좋을 거 같아서 곁다리 이야기를 풀어본다.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데에도 이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순간들이 있기 때문에 종종 트라우마 연재에 등장할 예정이다. 지금의 이야기는 내 글을 읽어주는 분들에게 친구들을 소개하는 인사가 될 것 같다.


사람 인연이 신기하다고 생각한 건 사실 이 친구들과의 인연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나는 9살 때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와 중학교까지 계속 다녔으니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이미 초등학교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이 친구들 중에 초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는 한 명도 없다. 


글의 편의를 위해 애칭으로 표현하려고 했는데 쑥스러우니 그냥 성씨로 표현해야겠다. 어울려 다녔던 친구들은 나까지 총 네 명으로 김씨, 이씨, 엄씨 이다. 먼저 김씨를 알게 된 건 사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같은 반이긴 했지만 그 당시 서로 다른 친구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친하게 지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3학년 때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과 모두 떨어지고 김씨하고만 같은 반이 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둘이 붙어다니게 됐다. 그런 사소한 우연이 우리를 만나게 했다고 하면 참 신기하다.


이씨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로 전학을 왔다고 했다. 다른 반이었기 때문에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고도 당연히 친하게 지낼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처음 말을 걸게 된 건 김씨와 CA활동이 떨어지게 돼서 바꿔줄 수 있는지 물어볼 때였다. 사실 오래된 일이라 그랬던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이 친구하고와도 특별했던 건 알고보니 우리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는 거였다. 이 친구가 몇 년 전 결혼해, 이사를 가기 전까진 가장 오랫동안 곁에 있었던 동네 친구였다.


엄씨는 우리들 중 가장 신기한 인연이다. 사실 엄씨는 3학년 2학기가 되어갈 무렵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이 친구는 우리 중 유일한 대문자 E 성향의 친구인데 그때도 여전했다. 보통의 전학생은 첫날에라도 쑥스러워하는 게 디폴트 같은데 이 친구에게는 낯가림이라든지 어색함이라는 단어가 전혀 들러붙지 않았다. 전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레 반에 녹아들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우리와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넷이서 다녔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 있었어서 새 학기가 시작되고 시간이 지났을 땐 여섯 명 정도가 어울려다녔다. 그리고 그때 내가 가장 친했던 친구는 따로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참 오래갈 인연은 따로 있구나 싶기도 한데 가장 친했던 그 친구는 3학년이 끝나고 고등학교를 올라갈 때 바로 관계가 끊겨버렸다.


난 그 당시 성적우수 전형으로 외고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 친구는 시험을 치르는 전형으로 외고를 준비했다. 같이 붙었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붙고 그 친구는 떨어졌다. 복도에서 친구들이 결과를 물어도 늘 그 친구가 붙어있어 최대한 티를 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혼자서 자격지심이 쌓였던 것 같다. 자신이 떨어진 것의 속상함을 나한테 쏟아냈다. 난 사실 굳이 관계를 끊을 생각까진 없었지만 그 친구가 우리와 연락을 끊으면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다른 친구 역시 그 당시 이해되지 않는 행동으로 우리에게 함부로 행동했고 그때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냥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친구가 혼자서 멀어졌다. 16살, 한창 예민할 나이이니 관계가 생겼다가 멀어졌다, 싸웠다가 화해하는 일들은 사실 자주 있었다. 꼭 이 친구들 뿐만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더 친하게 지냈던 다른 친구들과도 연락이 끊기는 일은 종종 생겼다. 뭔가 다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가 속한 환경이 달라지다 보니 어울리는 무리도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거라 생각했다.


사실 나도 사춘기 때 친구들을 소중하게 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돌아봐도 부끄러울 정도로 미성숙한 짓거리들을 너무 많이 했다. 특히나 중학교 친구들은 가장 오래됐고 친했기 때문인지 참 그 친구들을 함부로 대했었다. 만나기로 해놓고 당일에 아프다며 약속을 취소하기도 했고 한동안은 잠수 탄 것처럼 연락을 안 하기도 헸었다. 고등학교에서는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더 마음을 쏟았고 대학생 때는 대학교 친구들에게만 몰두했었다.


나름의 변명을 하자면 그땐 특히나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았었는데 그 우울함을 털어놓질 못하니 자꾸 숨기려다 그런 행동들을 하게 됐다. 부모님 사이가 나쁘다는 건 내 기억으로 성인이 되고서야 용기를 내서 털어놓게 됐었다. 내가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힘들어했다는 것도 성인이 되고 좀 지났을 때 겨우 말할 수 있었다. 기쁘고 즐거운 모습만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 있을 때만 친구들을 만나려고 했다. 


그래서 그때를 돌아보면 어떻게 그런 나하고 계속 친구를 해줬을까 싶다. 우리끼리 만나면 서로의 사춘기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수치스러워하는데 나 역시 생각날 때마다 친구들에게 고해성사를 한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고마워하고 이 친구들을 신뢰할 수 있는 건 가장 못났던 내 모습을 다 기억하면서도 나를 보듬어주고, 기다려주고 결국은 성장하는 걸 옆에서 지켜봐줬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에게서도 느끼지 못하던 안정감을 이 친구들이 느끼게 만들어줬다. 가족이라는 의미는 이 친구들에게 더 어울릴 거라고 자주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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