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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Nov 13. 2023

방청소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를 하는 이유

올해 들어서 몇 가지 루틴이 생겼는데 그중 하나는 주말이면 방 청소를 하는 거다. 방이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다. 


가장 먼저는 음악을 틀어둔다. 아무 소리도 없는 상태에서도 움직일 수야 있지만 그렇게 되면 이 행위가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청소는 내게 해야 할 과제라기보다는 취미 쪽에 더 가까운 편이기 때문에 어찌 됐건 즐길 수 있는 상태로 분위기를 만든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두면 뭘 하더라도 재미가 더해지는 힘이 생긴다.


두 번째는 먼지털이를 가져와 전신거울과 가구의 겉면들을 쓸어내는 일이다. 사실 먼지털이가 세탁할 수 있는 형태로 된 게 아니라 정말로 먼지가 잘 닦이는 지는 모르겠다. 일단 닦아낸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먼지털이로 쓸어내지만 눈에 보이는 정도가 되면 물티슈를 가져와 닦기도 한다. 아무튼 최대한 먼지가 눈에 띄지 않도록 노력은 한다. 


세 번째는 돌돌이 (인터넷에 검색하니 정확한 명칭은 테이프 클리너라고 하는 것 같다.)를 가져와 침대 쪽을 샅샅이 훑는다. 먼저 침대 시트의 먼지를 해결하고, 베개와 쿠션, 마지막으로 이불을 고이 접어 한 면 한 면 정성 들여 먼지를 제거한다. 먼지를 찍어내고서 테이프를 만졌을 때 더이상 아무것도 붙여내지 못할 정도로 헐어있으면 괜히 뿌듯하다. 


마지막으로는 바닥을 쓸어낸다. 이건 피곤의 정도에 따라 다르긴 한데 귀찮을 때면 침대와 마찬가지로 돌돌이를 가져와 바닥의 먼지를 쫙 뜯어낸다. 휴지로 쓸어내면 쓸어내면서도 먼지가 생겨 찝찝함이 남는데 돌돌이를 이용하면 바닥이 나름대로 뽀득뽀득해진다. 하지만 기운이 남아있고 먼지를 제대로 닦아내고 싶을 때는 청소용 물티슈를 이용해 물걸레처럼 닦아낸다. 확실히 물기로 닦아내야 먼지가 더 사라지는 거 같긴 하다.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한다는 게 사실 나한테는 꽤나 부지런한 일이다. 먼지를 완전히 제거하고 싶다면 매일같이 이 행위를 해야하지만 그렇게 계획하면 난 아마 강박적으로 집착하게 될 거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가 신체적으로도 멘탈적으로도 딱 적당하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이라는 빈도는 무조건적으로 지켜왔다. 이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먼지 제거를 위해서다. 나는 비염이 심한 편이라 먼지가 있으면 아무래도 호흡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방 인테리어를 새로 하기 전에는 사실 먼지 구덩이에서 나를 방치하며 살았었다. 바닥에 머리카락이나 먼지가 밟히는 건 싫어했어서 바닥만큼은 잘 닦았었지만 그 외의 구역은 딱히 청소를 하지 않았다. 덕분에 여름에도 비염이 심했다.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서는 깔끔한 방을 잘 유지하려고 청소를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먼지를 없애면서 건강에도 더 좋은 환경이 된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사실 가장 중요한 목적이긴 한데 정신 건강을 위해서다. 올해 들어서는 사실 예전처럼 (예전이라 해도 고작 작년의 일이지만) 멘탈이 완전히 붕괴되거나 망가지는 일은 없었다. 그런대로 잘 살아갈 수 있는 상태를 계속 유지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아예 움직이기 싫을 정도로 가라앉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손도 까딱하기 싫고 누워있고만 싶어진다. 물론 정말로 지쳐서 그럴 때도 있겠지만 보통은 마음이 너무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주말이면 꼭 청소를 해야한다는 규칙을 떠올리면서 앞서 말한 순서대로 조금씩 몸을 움직인다. 그럼 가라앉았던 몸도 마음도 평소만큼의 마음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노래를 들을 만큼의 기운이 회복되고, 방을 쓸어내면서 땀을 흘리면 샤워하고 싶을 만큼의 기운이 올라온다. 기세를 몰아 산책을 나가고 싶어지는 만큼의 정신이 돌아오고 동네를 조금 걷다보면 다시 그 다음주를 생활할 만큼으로 괜찮아진다. 


자존감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행동할 때 하나씩 쌓여가는 거라던데 그건 나를 잘 알아야만 만들어갈 수 있는 것 같다. 10대, 20대에는 스스로 부끄럽고 못나 보이는 점이 많았다. 그런 나를 인정하기보다는 마주하기 싫어 부정했다. 다른 사람에게도 들키기 싫어 더 똑똑한 척, 더 깔끔한 척하면서 진짜 나를 숨겼다. 


만 스물아홉에 정말 여러 사람을 겪고, 떠올리기 싫은 흑역사도 여러 개 경험하고 나니 그냥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싶어졌다. (물론 종종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을 만나면 욱하는 게 먼저긴 하다.) 가끔은 너무 게으르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나라도 그냥 그런 거지 싶고 이해해주면 그런대로 이쁜 모습들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귀여워 보이면 끝이라던데 종종 스스로를 귀여워할 때도 있다. 


아마 방청소를 하는 것도 자존감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붕 떠있는 나도, 촥 가라앉은 나도, 어떤 상태의 내 모습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그냥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한 거다. 그렇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하다보면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원래 있던 중심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지는 건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는 일 같다. 스무 살이 되고 성인이란 입장에 놓이면 딱 나라는 사람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만 스물아홉, 이십 대의 끝이 되어서야 나를 알아간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이런 순간에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싶은 소소한 정보들을 이제서야 배웠다. 그렇게 나와 친해지니 좋아할 만한 것들,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챙겨주게 됐고 그러다보니 어떤 순간의 나라도 품어줄 포용력이 조금은 생겼다.


아직도 스스로의 모습에 실망하고 가끔 그걸 부정하려는 못된 버릇이 나오기도 하지만 예전보다는 조급하지 않다. 살아가는 것의 의미는 평생을 걸쳐 나를 알아간다는 목적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시간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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