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물꽃 Nov 10. 2023

트라우마_38

타인의 상처를 내가 해결해줄 수는 없다

우울증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시기에 위로받았던 웹툰이 있다. 밤의 베란다 라는 작품이다. 온이라는 소녀와 민주라는 소년이 주인공인데 둘은 각자 극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의 아픔을 발견하게 됐을 때 우리 둘이서 서로의 상처를 뛰어넘자는 이야기를 나눈다. 나도 사랑을 한다면 꼭 그런 모습으로 해보고 싶었다. 


전남친이 내게 본인의 아픔들을 이야기했을 때 나는 언젠가 우리 둘이서 각자의 아픔을 극복해내는 모습을 그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돼주면서 어쩔 수 없었던 그런 상황들을 모두 뛰어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서로에게 아픔을 주게 됐을 때 우리는 그런 사람이라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가 하고 많이 좌절했다. 행복한 가정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으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싶어 안타까웠다. 사랑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주지도 못하는 게 불쌍했다. 


하지만 서로의 운명은 각자가 극복해내야 한다는 걸 전남친과 헤어지면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전남친을 보낼 때는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꾹 참아냈지만 집으로 돌아와 마지막을 실감하며 울었다. 미운 것도 많았지만 그 헤어짐의 순간에선 진심으로 고마움도 느꼈다. 연애를 하면서 내가 더 좋은 사람으로 나아가게끔 한 사람은 아니었어도 분명 나는 이 연애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어떤 연애는 이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해주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전남친을 만날 때 나는 이 사람이 가진 감정을 모두 해결해주려고 노력했다. 바쁜 스케쥴로 컨디션이 바닥나있을 때도 만나지 못한다고 전남친이 서운해하면 내 상태보다는 전남친을 신경 쓰며 풀어주려 애썼다. 전남친이 술을 마시고 전화로 내게 서운함을 쏟아내고선 다음날 아무 기억도 하지 못할 때 사실 나는 그 감정이 버거웠는데도 이 사람은 아픔이 많은 사람이니까 내가 이해하자며 나를 혹사시켰다. 언젠가는 이 사람이 내가 해준 것처럼 내 상처를 보듬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끝이 있었다. 전남친이 헤어지고서 다시 나를 찾아왔을 때, 다시 만나달라며 싸우는 것보다 헤어진 게 더 힘들다고 매달렸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파하는 모습을 봤을 때 마냥 후련하지도 않았지만 그걸 해결하자고 다시 만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그 사람의 미련이나 아픔까지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그 사람의 감정은 처음부터 모두 그 사람의 것이었다.


전남친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건 그 사람의 가정사과 개인적인 아픔들을 모두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외면하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그건 내가 엄마와 빚어왔던 갈등과도 닮아있었다. 엄마는 마흔이 됐을 무렵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모두 잃었다. 11살쯤이었던 그 어린 나이에도 엄마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 머리에 떠오르는 기억이 아닌 뼈에 새겨진 각인 같은 흔적이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치매를 앓으셨고 가장 가까이에서 간호하던 엄마를 제일 먼저 잊어버리셨다. 외할아버지 역시 돌아가실 때 치매를 앓으시다 친척들이 모두 외출한 사이 혼자서 돌아가셨다. 두 분이 돌아가셨을 때 “엄마는 이제 고아야.”하고 내게 말했고 산소를 갈 때마다 엄마는 세상이 무너진 듯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이 오열했다. 


나는 엄마의 상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엄마가 내게 모든 감정을 쏟아내도 외면하지 못했다. “결국에 가족밖에 없어.” 엄마의 말은 내게 저주 같았다. 친구와 멀어지고 동료 때문에 힘들어할 때도 엄마는 이 말로 나를 옭아맸다. 사실은 친구보다도 나를 더 힘들게 한 사람은 가족이었는데도 이걸 끊어낼 수 없다는 게 괴로웠다. 가족이었기 때문에 엄마가 가진 모든 불행을 들어줬다. 고작 십 대때의 일이다.


이십 대가 되고서 살기 위해 엄마를 밀어낼 때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가정에 무심하고 엄마를 늘 혼자두기만 하는 아빠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런 아빠가 이해되기도 했지만 사실 한편으론 원망스러웠다. 나한테서 아빠의 모습이 비칠 때면 끔찍한 자기혐오를 느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나라는 게 너무 싫었다. 


전남친의 아버지는 지병을 앓으셨다. 돌아가실 무렵 아저씨 역시 치매를 앓으셨고 전남친을 기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슬픈 드라마를 볼 때 그 이야기를 나한테 들려줬는데 아무리 슬픈 장면을 봐도 전남친은 울지 않았다. 아마 눈물이 나지 않는 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너무 많이 울었기 때문일 거라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도 그 사람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그 덤덤한 모습이 슬퍼 내가 대신해서 더 눈물을 흘렸다.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부모를 둔 엄마와 16살에 할아버지를 잃은 아빠가 겹쳐져 더 마음이 아팠다.


전남친에게서 많은 상처를 받아도 헤어지지 못했던 건 아마 부모님하고 풀지 못한 갈등을 이 사람하고서는 해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아픔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문제가 있었던 건 우리 부모님이지 나는 잘못이 없다고. 그렇게 면죄부를 받고 싶었다. 우리 집에서 나는 늘 비정상의 영역에 속해있었고 갈등의 원인이 나라고 생각했으니까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헤어지고서야 깨달았다. 전남친의 가정사나 그 사람이 가진 개인적인 아픔들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직접 치유해나가야하는 일이었다.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건 본인이 그럴 의지가 있을 때를 전제로 하는 거였다. 나아지려는 생각이 없는 사람을 나 혼자서 구해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적어도 나는 이 사람과 고통에 머무르며 허덕이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가진 아픔을 모두 뛰어넘고 싶었다. 


어릴 때는 힘든 일이 생기면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생긴거지 하고서 많이 좌절했다. 여러번 그 시련이 닥쳐와도 받아들이는 일 없이 매번 실망하고 괴로워했다. 하지만 이젠 알고 있다. 그 일들은 어쩌면 모두 그렇게 되려고 벌어진 일이다. 왜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그냥 그러기 위해서 내게 던져진 거다. 


전남친과의 연애부터 이별까지 개인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건 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가는 일의 단초가 되었다. 가족에게서 겪은 아픔을 먼저 풀어내야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 모든 일들을 겪어내고 나니 그때 벌어졌던 일들이 이해가 갔다. 다 그러려고 일어났던 일이다. 특별히 내게 더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일들도 아니었다. 그냥 삶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사건들 중 하나였다는 걸 이제는 안다. 

작가의 이전글 월말정산_10_0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