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물꽃 Dec 04. 2023

월말정산_11_02

내가 바라는 나

11월을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면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언니 결혼식까지 단정하게 기르던 머리를 싹둑 잘라버렸다. 사실 평소에 짧은 머리를 더 좋아하는 편이라 조금 길어질 만하면 잘라대긴 했다. 긴 머리를 유지하다가도 근질거리는 마음을 꾹 참다가 한 번에 확 자르면 나름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데 속이 다 시원하다. 머리 자를 때 그걸 아까워하지 않는 내 모습도 마음에 든다. 굉장히 쿨해 보인다.


무튼 그렇다해도 이번만큼 큰 차이로 잘라본 적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전남친과 헤어지고서 잘랐던 게 마지막이라 벌써 1년 정도를 기른 머리였다. 사실은 언니 결혼식까지 유지할 생각보다는 긴 머리로 히피펌을 해보고 싶었어서 꾸준히 길러왔었다. 지저분한 느낌을 내려고 동네 미용실을 택했으나, 그런 느낌을 냈다기보다는 정말로 지저분해져버려서 미용실을 갈 때마다 다들 걱정 어린 우려를 했다.


그러다 여름이 되고 머리를 잘라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을 때, 왠지 언니 결혼식에서만큼은 차분한 모습으로 있고 싶었다. 헤어메이크업을 받을 때도 긴 머리인 편이 스타일링하기에도 더 나을 거 같아 변수를 줄이자며 충동을 억눌렀다. 그러다 결혼식이 끝나고, 긴 머리로 뽑아먹을 건 다 뽑아먹었다고 생각하자마자 미용실을 예약했다. 원하는 건 오직 숏컷이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미용실에서 디자이너 선생님은 잘라도 괜찮겠냐며 걱정했지만 난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머리카락에 대해서만큼은 미련이 없는 편이다. 어차피 자라는 거 뭐. 망치면 다시 기르면 되는 거지 그런 생각이었다. 사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숏컷이 너무 안 어울릴까봐, 정말 별로면 머리를 기르는 동안 거울을 멀리하게 될까봐 그런 걱정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머리카락이 떨어져나갈수록 생각보다 더 잘 어울려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혼자 만족해하는 게 부끄러워서 입꼬리 씰룩대는 걸 참아내느라 힘들었다. 어떠냐고 물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난 너무 마음에 든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그 반응에 힘입어 혼신의 힘으로 여기저기 손을 봐주며 다듬어 주셨다.


사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스타일링을 할 때 실패하는 일은 점점 줄어든다. 내가 어떤 게 잘 어울리고, 어떤 게 안 어울리는지 대충 파악하고 있다보니 굳이 선택하자면 안전할 길을 택하기 때문이다. 숏컷을 시도할 수 있었던 건 지금 당장 내가 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없으니 실패를 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덕분도 있다. 한 번도 안해봤으니 이상하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도 있었지만 막상 시도해보니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왜 진작 안 해봤지 싶을 정도로.


많은 일이 그런 거 같다. 올해에 시도했던 다양한 일들, 예를 들면 춤을 배우고 비키니를 입어본 평소의 내가 안 할 거 같았던 그런 일들. 사실은 막상 해보면 더 재미있고 나와 잘 어울리는 일들이 많다. 30살이 되면 나라는 사람이 딱 만들어져 죽을 때까지 그대로 살아갈 거라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마도 계속해서 나는 나를 발견해나가지 않을까 싶다. 태어나서 살아간다는 게 그런 의미가 있는 거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12월도 변함없이 계속해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떠난다. 우선은 축하할 소식이 생겼다. 창작 지원금에 선정되어 당분간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와우! 발표가 계속 늦어져 좀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알바 자리를 알아보기도 하고 제작팀 일도 몇몇 군데 지원해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일이 없었다. 사실은 지금 이 패턴으로 글을 더 쓰고 싶어서 그랬던 거 같은데 지원금을 받게 돼서 매우 다행이다. 모쪼록 나라의 도움으로 예술 활동을 잘 이어나가보려고 한다.


11월에 변화가 또 있었는데 동네에서 배우던 춤 수업을 그만뒀다. 아무래도 자율성이 좀 부족한 수업이라 답답할 때가 있었는데 자유롭게 배워보기 위해 당장은 혼자서 연습하는 중이다. 다행히 유튜브에 좋은 선생님이 있어서 그분의 튜토리얼 영상을 보며 따라하고 있다. 혼자서 처음 춰본 춤은 르세라핌의 퍼펙트 나잇이란 곡인데 쉽게 봤다가 큰코다쳤다. 어찌저찌 그래도 그 곡은 마스터했다. 성취에 집착하는 성향답게 한곡을 끝내고보니 짜릿함이 남달랐다. 


이 기운을 계속 가져가 새로운 곡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다음은 키스오브라이프라는 그룹의 베드 뉴스를 춰보려고 한다. 이번 달의 목표는 연습한 곡들을 다듬은 다음 연습실을 빌려 촬영해보는 것이다. 댄스복도 제대로 갖추고 찍어보려하는데 폼 좀 나게 잘 연습해봐야겠다. 사실 이렇게 혼자 춤을 연습한다는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다. 1월에는 춤 배우러 가서 거울 보는 것도 쑥스러워하던 내가 혼자서 촬영할 생각까지 하다니. 역시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한다는 건 재미있다. 어쩌면 그런 내 모습이 좋아서 계속 하게 되는 거 같기도 하다.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일도 있다. 11월엔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지 못하는 이유를 쭉 따라가니 그동안 스스로를 잘못된 사람이라 생각하며 믿지 못했기 때문인 걸 알았다. 그동안엔 그런 이유를 알았더라도 사실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달라지기 어려웠을 것 같지만 11월엔 참 많이 애써줬다. 그 노력을 스스로도 알 수 있었고 노력만큼이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아마도 그건 올 한 해 정말 나다운 시간을 많이 보내며 나라는 사람이 꽤 괜찮다는 확신을 쌓을 수 있었던 덕분인 거 같다.


11월에 너무 잘해줬기 때문인지 사실 12월에 더 바라는 모습은 없다. 굳이 바란다면 올 한 해 열심히 노력해온 모습들을 연말에도 열심히 지켜줬으면 하는 것이다. 누구하고 있건 간에 나다운 모습으로 솔직하게 있어주는 것, 상대방이 어떻게 판단할지를 신경 쓰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 연말에는 약속도 많다보니 익숙한 모습으로 돌아가기 쉬울 거 같은데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으로 열심히 연습했던 나를 잘 지켜줬음 좋겠다. 이 시간들이 쌓이고 나면, 분명 내가 바라던 모습이 더 익숙한 나로 자리 잡을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월말정산_11_0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