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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Dec 01. 2023

월말정산_11_01

가족이라고 똑같은 마음은 아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아직 많은데 벌써 월말 정산을 기록할 시간이다. 11월은 일정이 많았는데도 벌써 12월이야? 싶을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그런 걸 보면 내가 제대로 즐겼구나 싶다. 10월의 월말 정산을 돌아보니 웬만한 계획은 다 지켰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던 거 같아 괜히 뿌듯하고 대견스럽다. 


우선 언니의 결혼식이 무사히 끝났다. 나는 처음 하는 일이 있으면 일어날 수 있는 변수들을 모두 통제하고 싶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신경이 예민해진다. 결혼식이 다가오기 며칠 전의 일명 눈썹 왁싱 사건으로 이런 내 상태를 알아차렸고 변수가 생기면 그때 가서 대처하자는 생각으로 긴장을 풀어줬다. 덧붙여 이건 한번뿐인 언니의 결혼이니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는 생각으로도 나를 꽉 잡아줬다.


정작 신경 쓰이던 눈썹은 샵 선생님 덕분에 완벽한 화장으로 완성될 수 있었고 계획에도 없던 구두가 말썽이라 변수가 생기기는 했다. 신부 동생이 헐떡 거리는 구두를 신고 다니더라 하는 소리를 들을까봐 신경이 쓰였지만 생각보다 대수롭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넘기니 언니를 축하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덕분에 열심히 연습했던 축사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주변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더라는 후기도 들을 수 있었다. 매우 만족.


구두 이야기로만 봐도 그렇지만 인생사가 그렇다. 내가 예측하고 막으려고 해도 변수는 새로운 곳에서 일어난다. 내가 모든 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미리 준비하고 막을 수 있는 모든 악재를 최대한 막아보려 할 수도 있지만 그 일에만 집중하다 오히려 삶을 즐기지 못할 수도 있다. 살아지는 삶을 가능한 만큼 즐기다가 다가오는 변수는 그때 가서 대처하는 게 인생을 즐겁게 사는 방법인 거 같다.


또, 가족에 대해서도 새로 깨달았다. 난 어릴 때부터 가족이란 서로 원치 않는데 얽혀서 고통받는 집단이라 생각했다.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사람들로 왜 이리 오랫동안 고통받아야 할까 괴로웠다. 떼어낼 수 있다고 떼어내고 싶었고 그러지 못한다면 거리를 둔 채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언니의 결혼으로 가족이란 상태가 든든할 수 있겠다고 처음 생각해보게 됐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가 굉장히 낮은 편이라 사람과 사람이 어떤 관계 속에 있어도 계속해서 노력하지 않는다면 유지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있어도 지켜지겠지 하고 마음을 놓으면 분명 관계가 깨질 거라고 생각하는 면이 있어서 그런지 아주 오래된 친구들이 있어도 한편으론 멀어질까봐 불안한 마음이 깔려있다. 


언니의 결혼식날, 집으로 돌아와 언니에게서 카톡을 받았다. 결혼식 준비를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떨어져 지내더라도 늘 응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연락을 받고 가슴이 벅찼다. 직장 동료, 친구, 연인 관계에서도 언젠가는 이 관계가 변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품고 살았던 내가 처음으로 안정된 관계를 느꼈다. 가족이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고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었다. 가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모든 가족에게 같은 마음을 느낀 건 아니다. 아빠와 처음으로 단 둘이 데이트를 했다. 사실 공연 프로그램 방청이라는 목적이 있긴 했지만 둘이서 서울로 나들이를 나간 건 처음이었다. 끝까지 안될 거 같다가 아빠가 겨우 시간을 맞춰 함께 보러 가서 나도 많이 기대했다. 전날 몸이 좋지 않아 신경이 쓰였는데 지하철을 타고 나가는 길에 슬쩍 상태를 말했다.


아빠는 내가 아픈 거 같다는 그 말을 괜히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거라며 몇 번이나 장난스레 넘겼고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는 그 태도에 화가 났다. 내가 아프면 아픈 거라고 그걸 아빠가 아니라고 말할 이유는 없다고 정확히 표현했다. 아빠는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어서 나도 그런 줄 알았다고 말했다. 예민함이 왜 이런 식으로 취급받아야 하는 걸까 좀 피곤했다.


어렸을 때부터 난 우리 집에서 예민한 아이, 피곤한 아이, 굳이 문제를 일삼는 아이 취급을  받았다. 사회에서 겪게 되는 정말로 잘못된 문제들에서도 소리 내지 못하고 나를 먼저 검열했던 건 내가 잘못된 사람이라는 전제가 먼저 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작년, 일하던 중 발가락이 부러지고도 아픈 티 한번 내지 못한 채 그대로 세트장 마무리며 운전까지 하고서 돌아갔던 건 아픈 걸 표현하지 못했던 나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일 있으면 엄마아빠한테 먼저 말하지 그랬냐는 말에 언젠가는 그래야겠다 마음먹었지만 사실 그러지 못할 걸 알았다. 이제는 아빠도 나도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면서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은 그 상황이 좀 속상했다. 다른 사람은 뭐라 해도 부모만큼은 내가 아프다면 그 말을 온전히 믿어주는 사람이었음 좋겠다는 기대도 다시 깨진 거 같았다.


내가 하는 말에 아빠가 삐진 표정을 지어도 대화를 접지 않았다. 내 기분을 망친 대가를 받아내듯이 사과를 뜯어냈다. 속이 후련해지진 않았다. 이왕 나왔으니 기분 좋게 마무리 지으려고 그 문제는 풀기로 하고 나름 재미있게 하루를 보냈지만 감정이 목에 걸린 것처럼 답답했다. 그 감정을 해결하고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려는 나를 발견했다.(정작 이야기 한 건 엄마뿐이었지만.)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내가 예민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받고 싶어서 그랬다는 걸 깨달았다.


예민함으로 지적받으면 여전히 화가 나고 많이 상처받는다는 걸 인정했다. 딱 그 순간의 일로 나온 감정이라기보다 그동안 나를 아프게 했던 많은 상처들이 더해진 만큼의 감정이었다. 내가 예민하다는 걸, 그리고 그 예민함이 잘못된 게 아니란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해도 아직은 그러지 못했다. 우선 지금은 그런 말에 상처받는 나부터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굳이 주변 사람에게서 내 예민함에 대해 판단해달라고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의견에 다른 사람의 동의는 필요 없었다. 그건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또, 엄마아빠의 감정에 상관없이 나는 나대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표현하기로 다시 결심했다. 아빠와 다시 불편해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중심을 나에게로 다시 가져오니 오히려 편해졌다. 굳이 누군가의 기분을 맞출 필요 없이 난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 것들을 드러내기로 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촌오빠의 결혼식에 엄마, 아빠, 나 셋이 참석하게 됐다. 또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내가 괜한 말을 꺼내서 분위기를 망치는 건 아닐까 걱정되는 일은 많았지만 나를 믿었다. 벌어지지 않은 상황은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고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 내가 나를 위해 가장 적절할 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믿어줬다. 


나를 위한 행동은 간단했다. 부모님을 위해 굳이 더 좋은 딸처럼 연기하지 않았다. 친척들이 다소 과하게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낼 때도 지나치게 참는다거나 과하게 화내는 일 없이 적절히 그 무례한 말들을 막아냈다. (예를 들면 계속해서 술을 마시라며 권유한다거나, 결혼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식이었다.) 나를 보호하려고 굳이 나까지 무례하게 굴 필요도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의 기분부터 신경 쓰려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다. 그 강박에서 벗어나니 훨씬 자유로웠고 나다울 수 있었다. 


가족은 생각보다 엄청난 존재가 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별 게 아니기도 하다. 다른 관계와 마찬가지로 내게 잘해주는 만큼 마음을 줘도 충분한 것 같다. 뭐든지 내가 편해야 잘 굴러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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