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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Jan 08. 2024

연말정산_02

I’M READY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는 연말정산!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안 하는 거 보단 낫겠지 싶어 정리해본다. 사실 새해 계획을 먼저 써볼까도 생각했는데 작년을 정리하지 않아서 그런지 별로 생각나는 게 없었다. 했던 것들을 돌아보면 새로 하고 싶은 것도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서 이래저래 연말정산부터 마무리하기로 했다.


작년엔 정말 많은 일에 도전했다. 그림이나 춤같이 직접적으로 배운 것들도 많지만 혼자 드라이브 가기라든지 해변에서 비키니 입기 등 버킷리스트로 남겨두던 일들도 다양하게 시도했다. 2024 새해에 하고 싶은 게 딱 떠오르지 않는 건 이미 많은 걸 해봤기 때문인 거 같다. 그동안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미루며 메모장에 적어두기만 했는데 작년엔 대부분의 것들을 그냥 해보지 뭐 그런 생각으로 해치웠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일들도 막상 해보니 재밌는 경우도 있었고 하다 보니 흥미가 떨어져 관심이 식은 일들도 있었다. 어찌 됐건 낯설다는 이유로 두려워하기보다 새로운 걸 배우는 재미에 초점을 맞추니 인생이 더 풍요로워지긴 했다. 지금 살아남은 것들을 이야기하면 춤 배우기, 그림 그리기 정도인데 이젠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당황하지 않게 됐다. 취미는 내 인생을 다양한 색으로 색칠하는 일 같다. 스케치만 있어도 충분하지만 색이 더해지면 분명 더 화려하고 아름답다.


가장 커다란 시도는 인간관계를 다루는 나의 방식과 내 사고 체계였다. 이렇게 정리하니 좀 거창해 보이지만 정말로 작년은 나를 알아가는 충분하고도 깊은 시간이었다. 갈등이 무서워서 늘 피하기만 하던 내가 상처받더라도 제대로 부딪히자 마음먹고 열심히 싸워봤다. 여러 번 깨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했지만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는 법도 배우게 됐다. 


있는 그대로 내가 부끄러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나를 꽁꽁 싸매고 어떤 척을 많이 했었는데 그런 모습도 많이 깨부수게 됐다. 찌질하거나 속이 좁은, 다소 미성숙한 모습들도 그대로 인정하고 귀엽게 봐주는 중이다. 남들에게 미움받을 용기는 여전히 부족하긴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이쁠 만한 모습으로 칭찬받기보다는 나라는 사람 그대로 존재하려고 노력 중이다. 


작년엔 정말 되고 싶은 내가 많았다. 그중 하나는 꾸준함을 기르는 일이었다. 자극추구형 인간이라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건 그전에도 종종 해왔지만 그걸 꾸준히 밀고 나가는 힘은 부족했다. 어느 순간부터 난 그런 사람이야 하고 단념하곤 했는데 그런 나에 머무르는 내가 싫었다. 달라지기 위해서 약간의 강박을 더해 일상을 채워나갔는데 영어 공부와 브런치 연재가 대표적인 일이었다.


몸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도 있었다. 브런치 연재일은 일주일에 두 번 뿐이면서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과제를 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마음에 드는 글도 있고 당장 지워버리고 싶은 글도 있지만 어쨌든 제1의 목표는 일주일 두 번이라는 연재 주기는 꼭 지키자는 거였다. 내가 꾸준히 뭔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내고 싶었다.


결과적으론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영어 섀도잉 공부를 하는 일이나 일주일에 두 번 브런치를 연재하는 일 모두 빼먹지 않고 지켜냈다. 당장 원어민처럼 영어 회화를 하게 됐다거나 써둔 글로 출간을 하게 됐다는 극적인 결과물은 없다. 하지만 이 일로 뭘 이뤄냈는지는 내가 알고 있다. 이건 열매라기보다 씨앗에 가까운 일이다. 내가 무엇이든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걸 믿게 됐다. 나에 대한 신뢰를 얻게 됐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앞서 말했던 인간관계에 관한 일도 비슷했다. 누군가와 싸우는 게 무서웠던 건 내가 크게 터져버릴지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화를 내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늘 혼자 쌓아두다 크게 터트리곤 했다. 상대방의 잘못 때문이었다 해도 그건 내게도 좋은 방식이 아니었다. 내가 그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으니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똑같이 두려워하면서 예전의 실수를 반복하곤 했다.


작년 말, 가족 사이에서 다시 큰 트러블을 겪게 되면서 왜 하필 일 년의 끝에서 이 감정과 상황을 다시 마주하게 됐을까 속상했다. 결국에 달라지는 거 없이 일 년이 끝나는 건가 싶었다. 많이 아쉽고 슬펐다. 하지만 지옥을 천국으로 바꿔줄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있는 곳만큼은 그렇게 바꿔낼 수 있다는 걸 이젠 정말 믿게 됐다. 다른 무언가가 아닌 나를 향한 믿음이다. 


웹툰 유미의 세포들을 보면 유미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온몸의 세포들이 유미를 응원하며 for 유미! 하고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몸이 흔들릴 만큼 불안하고 두려운 순간에 그 장면을 떠올린다. 분명 지금 내 몸의 세포들이 힘을 합쳐 나를 응원하고 있을 거라고.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외치며 나를 앞으로 이끌었다.


자신 있게 말한 것 같지만 비슷한 상황이 오면 다시 흔들릴 걸 안다. 갈등 상황은 내게 재난과도 같아서 분노나 서러움과 같은 감정은 모두 공포로 느껴진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온몸이 땅으로 꺼질 것처럼 주저앉고 싶은 감정이 언제고 또 찾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열심히 연습했다. 1년 동안 가장 최선을 다한 건 나라는 인간을 알아가고 단단하게 만든 일이다. 이제 정말 나아갈 준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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