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감정은 어딘가 무섭다
요즘은 계속 소설 이야기만 쓰는 거 같지만 사실 온 정신이 거기에만 쏠려있어서 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주말 동안 어쩌다 보니 과제 초안을 완성했다. 글을 다 쓰고서도 찝찝한 마음이 든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엔 더 확신이 없다.
아직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말하기엔 이른 단계 같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쪽은 과감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는 쪽이다. 하려던 이야기가 영화 님포매니악과 비슷한 지점들이 있어 이미 봤던 영화인데도 다시 찾아봤다. 대사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피며 보다 보니 예전보다 더 들어오는 내용도 있었다. 보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던 건 이걸 이야기해도 괜찮나 하는 의심이 있었을 텐데도 그걸 뚫고 가는 힘이었다.
이번에 내가 쓴 글엔 인간의 역겨움을 담아보려 했다. 인간임을 포기한 어떤 여자가 상담을 받으러 오면서 시작되는데 알고 보면 그 여자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건 가족들 때문이란 게 밝혀진다. 그녀 스스로는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들 기준에서는 역겹게 보이는 것이다. 이걸 완성하고 나서 뭔가 허한 마음이 들었다. 과연 다른 사람도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줄까? 두렵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는 여기서 뭘 말하고 싶은 거지? 하는 궁금증이 남았다.
사실 가상의 이야기를 펼친 거긴 했어도 이번 글에는 내가 꽤 많이 드러났다. 평소에 갖던 생각부터 가족들에게 상처받았던 내용들이 각색을 더해 곳곳에 펼쳐졌다. 글을 완성하고 찝찝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다시 들여다보기 싫을 정도로 거북함을 느낀 건 소설 안에 담긴 내 감정이 너무 날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예쁘지 않고 아주 모나 있는 감정들.
가끔 이런 순간을 겪는다.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려고 애쓰다가도 너무 가감 없이 표현했을 때 버리려고 꽁꽁 싸매왔던 감정을 깜빡하게 꺼내버린 거처럼 당황스럽기도 하고 기이하다. 이게 정말 내 거였나? 내가 생각하던 게 맞나? 싶은 거다. 근데 글을 쓸 때 이걸 어디까지 담아도 되는 건지 아직 그 적정선을 모르겠다. 감정을 다룰 수 있는 정도로 써냈을 땐 사실 솔직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있는 힘껏 다 드러냈을 때는 혹시 과한 게 아닌가, 내가 이야기로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아닌가 망설이게 된다.
특히 가족 하고는 좋았던 기억과 안 좋았던 기억이 골고루 섞여있다 보니 굳이 그걸 꺼내고 싶지 않을 때도 많다. 괜찮다고 생각했고 넘어갈 수 있다고 꼭꼭 씹은 과거인데도 그걸 이야기로 바꾸려고 다시 토하고 꺼내보고 자세히 들여다보다 보면 아직 소화하지 못한 부분이 체기처럼 남는다. 그럼 그 기억과 감정이 다시 올라와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소설이 끝날 때까지는 자리를 잡고 있는다.
고민을 털어내다 보니 아직은 내가 그 감정을 이야기로 다룰 만큼 완전히 소화하지는 못했구나 싶다. 그래서 이야기를 이야기로 보지 못하고 자꾸 과거의 나를 빗대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거 같다. 이제 이번 과제를 제출하면 최종 과제로 단편 소설 분량을 써내야 하는데 참 아직은 글 쓰는 게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