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내일배움카드가 일찍 발급됐다. 발급이 늦어지면 듣고 싶었던 강의 신청일이 촉박할까봐 은행에서 직접 수령하겠다고 했는데 이틀 만에 발급되니 우편으로 받았어도 괜찮았을 거 같다. 나는 어찌됐건 빨리 받기 위해 은행 중에서도 당일 바로 발급되는 곳에서 카드를 수령했다. 가기 전에 미리 확인해보고 가는 게 좋을 듯.
카드를 발급받자마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듣고 싶었던 강의를 신청했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함께 가르쳐주는 강의였다. 그리고 환급과정은 아니었지만 들어보고 싶었던 드로잉 강의를 드디어 신청했다. 기초 소묘부터 이미지화 시키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수업이다.
올해가 아직 4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지금 새로운 변화들을 많이 앞두고 있다. 당장 이번주 일요일에는 뉴진스의 디토를 배우는 원데이 댄스 클래스가 기다리고 있고 다음주 수요일에는 20년 동안이나 유지했던 내 방의 오래된 가구들을 내린다.
디자인이며 드로잉, 댄스, 인테리어 모두 실은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다. 취준생 시절에는 괜히 시간 뺏긴다는 이유로도 미뤘고 사실 여유 부릴 만큼 돈이 있지도 않았다. 나중에 일을 시작하고 여유가 더 생긴다면 그때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매번 미뤘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서는 돈이 생겨도 시간이 없었다. 뭐가 됐든 여유가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작년 나는 일하던 팀의 계약이 만료되기 직전 부상을 당했다. 영화 제작팀 특성상 몸이 불편하면 일하는 데 많은 제약이 생긴다. 막내의 입장이라 대체 업무를 주체적으로 찾지 못하기도 했지만 점차 내 역할의 불안함을 여실히 느꼈다. 언제든 대체될 수 있겠구나.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현장을 보며 누군가 등 떠밀어 나를 내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계약이 끝나고 당연히 추가촬영은 나가지도 못했지만 갑작스러운 공백이 생기며 생각이 많았다. 나 다운게 뭔데! 약간은 오글거리게 표현되는 그 대사가 나를 쿡쿡 쑤셔댔다. 나도 나를 잘 몰랐다. 그도 그럴 게 여태껏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성공하려면 이건 안돼, 이럴 시간 없어. 그렇게 말하며 어느 순간 나를 제약하고 있었고 정해진 게 없는데도 막연한 규칙으로 나를 억압하고 있었다.
영화팀에서 내가 길을 잃었던 건 그 당시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정말 이 일이 좋은지, 더 하고 싶은지 등등 일을 하는 동안의 내 주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게 일을 시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생각하기를 멈추고 있었다.
하반기에 있었던 일은 차차 이야기하겠지만 갑작스럽게 생긴 시간에 많은 생각들을 해보며 당장 급할 것도 없는데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 하고 싶었던 걸 자유롭게 하며 나라는 사람을 채워보자 마음먹었다. 영화를 처음 찍어봤을 때를 생각하면 사실 나는 내가 영화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들을 기반으로 어찌 보면 자연스럽게 영화일을 시작하게 됐다.
삶이 예측불가하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이제는 아는 만큼 그렇기에 더더욱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하다 보면 또 어느 순간 이 모든 게 나라는 사람의 기반이 돼서 또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길로, 나다운 길로 찾아가게 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