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로 3번의 상담이 남았다. 처음 상담을 받았던 건 24살 무렵이다. 엄마를 너무 불편해하는 내가 이상하다 생각하며 상담실을 찾았다. 엄마와의 관계를 해결해보고자 하는 목적이었지만 내겐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다. 특히나 내가 견디기 어려워했던 건 불안함이었다. 안정감이라곤 느껴본 적이 없는 내게 불안함은 정체성 같았다.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 건 23살, 학교에서 연극 공연 연출을 맡아 준비할 때였다.
스트레스를 받는 게 일상이라 꾹 참으며 넘기기만 하던 내가 교양수업을 듣던 강당에서 공황을 경험했다. 심장이 뛰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마이크를 통해 울리던 강사님의 목소리가 귀를 찢는 소음 같았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공포감이 밀려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그 강당에서 나오면 될 일 아닌가? 싶지만 당시 나는 꼼짝도 못했다. 수업 중 나가면 감점이라는 말이 있긴 했지만 그보다는 여기서 내가 움직일 수 없겠다는 무력감이 강했다. 수업이 끝나고 겨우 밖으로 나갔을 때 지금 정말 문제가 있다고 자각하게 됐다.
학교 상담센터를 찾아가보기도 했지만 일단 급한 불은 껐다고 생각했고 긍정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자만했다. 당장의 공연이 더 중요하다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눌러가며 공연을 마쳤고 연출은 이런 고통도 다 이겨내야 한다고 나를 채찍질했다.
이후 공황장애와 우울증은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내 경우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증세가 심해졌고 상담을 받으면서 그나마 대처하는 방법들을 배워갔지만 2회기를 끝으로 상담을 그만뒀을 때 가장 심하게 우울증을 겪었다.
스물아홉이 끝나가던 작년 9월, 5년 만에 상담실을 다시 찾았다. 꼬여버린 관계들이 많았는데 모두 내 탓 같았다. 모든 게 내 잘못 같았고 나조차도 나를 미워했다. 살고 싶은 마음에 상담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차차 이야기하겠지만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 사고방식이 점차 변해갔다. 5년 전, 내 상처를 발견하고서도 나를 이해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이해하려고 했던 것과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내게 상처를 남긴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달라지겠다고 선언하며 화나는 감정을 억지로 잠재우지 않았다.
상담실에서 저주의 말을 쏟아내기도 하고 상담 선생님을 의심해보기도 하고 내가 가지고 있던 위험한 생각들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내가 가진 감정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을 충분히 미워했다.
상담실에 가기 전 늘 해야 할 말이 많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어떤 말을 할까 고민해야만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겁내는 게 있다. 이번주에는 내 마음에 걸리는 일들을 이야기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 경우, 시나리오를 쓸 때 과거의 일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주 떠오르는 기억은 사춘기 때의 내 모습이다. 늘 화가 나있고 억울했다. 아마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더 화가 나고 외로웠던 거 같다. 시나리오를 더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나와 비슷했던 아이들의 모습도 찾아본다. 특히 금쪽같은 내 새끼를 자주 보곤 했는데 상처를 후벼 파는 이야기를 보며 괴로워했다. 밤마다 상처받은 기억을 떠올리며 울다가 글을 완성시켰고 마침내 영화를 완성했을 땐 해소되는 느낌이 있었지만 다시 글을 쓰려니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지금 당장 그런 상황에 처한 건 아니지만 솔직히 겁이 난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꼬리질문처럼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특별히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는지, 아직도 그 일이 무서운지, 정확히 무서워하는 게 무엇인지. 대답을 해나갈수록 내 공포감에 실체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정확히 내가 두려워하는 건 불안함 그 자체였다.
내게 그려지는 이미지는 5년전 상담을 끝낸 직후 내가 지독하게 우울증을 겪었던 때의 모습이었다. 요즘 나는 예전과는 다른 사고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그때의 기억이 큰 상처를 남겼어서 그런지 나는 여전히 그때와 같은 상황에 처할까봐 겁을 낸다. 한편으론,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내가 완전히 분리된 사람처럼 느껴져서 지금의 내가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잘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상담에서 깨달았듯 지금 내가 두려워하는 불안함은 아주 모호하다. 내가 겁내는 게 구체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희미한 어떤 것이라면 굳이 지금 내가 그걸 겁낼 필요가 있을까. 미리 걱정해서 벌어질 일을 막을 수는 없고 미리 불안해한다고 한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더 도움이 되진 않는다. 그 사실을 내가 체험했기 때문에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던 건데 습관처럼 그 사실을 잊어버렸던 거 같다.
불안함의 공포를 알기에 불안함을 느끼는 누군가에게 사실 그거 별거 아니야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 공포감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불안함의 실체를 마주하고 파고들어서 그 실체를 한번 들여다보라고는 말해주고 싶다. 막상 파헤쳐보면 내가 그것보다 강한 경우가 분명히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