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_02

나로 채우는 것

by 김물꽃

드디어 옷장이 도착했다. 사실 치수를 재며 가구를 주문하면서도 실제로 보면 다를 거 같아 걱정이 되기도 했다. 워낙 사소한 일에도 완벽하려고 몰두하다 보니 가끔 계획만 세우다 그 꼼꼼함에 내가 지치기도 하는 편이긴 한데 인테리어 역시 어느새 과몰입하고 있었다.


방이 그렇게 넓지 않은 편이라 옷장은 슬라이딩으로 계획하고 남아있는 유일한 대가구인 침대를 기점으로 여기저기 배치하며 구상했다. 겨우 옷장과 침대 위치를 잡고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주일의 기다림 끝에 옷장이 도착한 것이다.


하루 전날 연락을 준다고 했지만 배송전날 저녁 6시쯤 전화를 받았다. 당장 내일 오전에 설치하러 온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옷장을 세우기로 한 벽에 전기선이 있는 터라 멀티탭을 연결해 둔 상태였는데 이대로 옷장을 세워도 괜찮나 싶었다. 안되면 다른 벽에 있는 110v에 변압기를 연결해 전기를 사용해야 하는 건데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어 그 코드에 전기가 들어오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전화를 받고선 일단 가구는 받아야 하니 알겠다고 했지만 전화를 마치자 관리사무소에서 엘리베이터 점검으로 내일 오전 10시부터 사용이 어려울 거란 안내 방송이 나왔다. 앞동부터 차례로 점검한다고 하여 지장은 없을 것 같지만 불안한 마음에 기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마 괜찮을 거라는 답변에 긴장의 끈은 이제 그만 놓기로 했다.


정말 습관처럼 나는 다시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하하. 이 정도까지 고민의 고민을 거치다 진짜 그만하자 싶었다. 어차피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옷장 설치는 기사님께 맡기면 되는 거고 추후의 일을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옷장이 배송 오는 당일, 엘리베이터는 무사히 작동했고 까칠하실까봐 걱정했던 기사님은 시원시원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방을 보시곤 멀티탭이 튀어나와 옷장에 눌릴 수도 있다고 하시길래 안된다면 멀티탭을 빼겠다고 말씀드리자, 고객 편의가 우선이니 이대로 설치를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설치도 얼마 걸리지 않았고 후기에서 슬라이딩 조립이 애매하게 돼서 불편하다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무사히 설치가 완료됐다.


기사님이 가신 뒤, 먼저 옷장을 깨끗이 닦아냈다. 물티슈로 혼자서 박박 닦아내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방을 새로 채워나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옷장이 자리 잡고, 원래 생각했던 대로 침대 배치도 바꾸니 이제 좀 방다워지는 거 같았다.


본격적으로 방을 채워나갈 시간이었다. 사실은 옷장이 도착할 때쯤 배송될 줄 알고 책장을 먼저 주문했었다. 근데 생각보다 빨리 도착해서 냉장고 옆에다가 세워뒀었는데 변수일 줄 알았던 이 책장이 계획을 더 빨리 진행하도록 도와줬다.


혼자서 조립하기에는 어려워서 아빠와 같이 진행했다. 이케아에서 주문한 빌리 책장인데 설명서대로 차근차근 따라 하니 금방 조립할 수 있었다. 아빠랑 조립하면서 투닥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또 하나의 가구를 들이니 더욱더 방 다워진 모습이 좋았다.


옷장과 책장으로 배치를 확정하고 남은 공간들의 치수를 다시 확인했다. 주문하려고 했던 책상의 치수가 침대와 책장 사이에서 딱 떨어지니 쾌감이 있었다. 사람들마다 인테리어 취향이 다르지만 나는 견적에 맞게 가구 치수가 딱 떨어지는 구조를 좋아한다. 방이 그리 넓지 않으니 공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싶어 구상한 계획이었다.


그렇게 공간을 채워 넣는 마지막 대가구로 책상을 주문한 뒤 이제는 정말 방을 꾸밀 시간이었다. 남은 공간을 채울 수납장을 선택해야 했다. 사실 레퍼런스로 삼았던 사진이 있어 책상과 책장 배치는 어렵지 않았다. 수납장도 그 사진에서 본 대로 고른다면 방을 꽉꽉 채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뭔가 그 사람의 구조대로 따라 한다면 내 방이 아닐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다른 부분들은 내 취향대로 채워 넣자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나 옷장, 책장과 책상은 모두 화이트 톤과 나무 재질로 색을 맞췄다. 방이 더 넓어 보이면서도 조화로운 느낌이 들도록 색상과 재질을 통일시킨 것이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포인트를 두고 싶었다. 특히 수납장만큼은 다른 가구들과 달리 특색 있는 가구를 원했다. 주방 수납장처럼 유리와 일반 수납장이 함께 구성된 철제 가구를 떠올렸다. 마땅히 눈에 들어오는 게 없어 여러 차례 고민하다가 문득 이거다 싶은 수납장을 발견했다.


확실히 내 취향이었던 건지 새로 찾은 거라 생각했던 그 수납장은 내가 북마크 했던 게 표시되어있었다. 당장 주문하려고 보니 원하는 색상은 품절이라 2월까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조급하게 인테리어를 끝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내 취향대로 정성껏 꾸미는 것이 목적인 만큼 그 정도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수납장을 주문하며 대략적으로 남은 공간들을 어떻게 꾸밀지 그려보았다. 사진들을 캡처해 내 방식대로 조각조각 붙여 넣었더니 확실히 내 방이라고 느껴졌다. 무난하고 깔끔한 화이트 톤의 배경에 중간중간 포인트가 되는 색상의 책꽂이, 조명, 액자 등을 배치했더니 레퍼런스로 두었던 그 방보다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이미지가 그려졌다.


20년 동안 방치해 온 방을 이제서야 바꿔야겠다고 생각이 든 건 작년 다사다난한 일을 겪으면서였다. 항상 주어진 대로 순응하며 살아왔지만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있다면 그냥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 방 역시, 잠을 자는 시간 외에도 내가 생활하는 공간인데도 나라는 사람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 없었다. 어릴 적 엄마가 꾸며놓은 대로 생활해 온 이 공간을 이제는 바꿔보고 싶었다. 내가 주거하는 공간인 만큼 원하는 대로 취향을 마음껏 담아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인테리어는 아직 진행 중이고 도착하지 않은 물품들이 대다수이지만 변화하는 과정이 아주 마음에 든다. 방으로 상징되어 말하고 있지만 내 생활을 나에 맞게 꾸며낸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조금은 무기력함이 찾아오려 했던 요즘 다시금 생기가 찾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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