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충격은 아무리 단단한 것도 부러트린다
난생처음 뼈가 부러졌다. 바로 작년의 일이다. 상업영화 제작팀으로 일할 때의 일이었는데 지금에서 보면 이 일이 결국 내 삶을 완전히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내가 이 팀에 합류하게 된 건 정식 루트를 통해서가 아니었다. 바로 직전 일했던 독립영화팀 실장님께서 제작지원, 즉 며칠만 알바형식으로 나가는 자리를 소개해주셨다. 원래는 실장님도 함께 가려했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나 혼자 팀을 방문했다.
4일만 일하는 걸로 계획이 되어있었다. 지방 촬영이었는데 첫날이 데이였다. 촬영은 보통 데이 아니면 나이트로 진행되는데 데이는 해가 뜰 때 시작, 나이트는 해가 지면 시작이다. 6,7시쯤 일출 예정이라 나는 전날 그 지역으로 내려갔다.
원래도 낯을 가리는 성격이지만 상업 영화는 경험해 본 적이 없다보니 내려가면서도 많이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버스를 타고 숙소까지는 택시를 타고 이동했는데 회계팀에서 결제를 하기 위해 내리는 곳에 나와줬다. 촬영이 10회차 정도 진행되었을 상황이라 다들 조금은 지쳐있었던 거 같다.
짐을 대충 내려놓고 밥을 먹으러 모였는데 어색함을 견디느라 많이 애썼다. 제작지원의 좋은 점은 어차피 나는 며칠만 있으면 이곳을 떠난다는 거다. 다들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보니 편하진 않았지만 더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있었던 게 바로 헤어짐이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회계팀에서 장난처럼 나보고 더 남으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때만 해도 정말 그 말이 농담이라는 걸 아니까 웃으면서 대충 넘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나는 이 팀에서 5개월가량 남아 일하게 됐다.
나는 팀원이 아닌 부장님과 함께 방을 사용했다. 바로 전 독립영화팀에서 일했을 때에는 동갑내기 친구와 방을 썼던 터라 조금은 긴장도 되고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며칠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았다.
촬영 첫날, 부장님을 따라 현장에 도착했다. 야외 세트장이었는데 제작지원으로 합류했다보니 대본이나 전체 콘티를 전달받지 못해 이 장소가 어떤 용도로 쓰이는 건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나마 전날 우연히 마주친 팀원에게 그날 촬영분의 콘티와 대본을 전달받아 오늘치만 확인한 정도였다.
제작팀으로서 처음 한 일은 밥차를 세팅하는 것. 독립영화 때는 밥차와 계속 이동하기보다는 현장 주변의 식당을 섭외해 그때그때 식사를 세팅했었는데 상업영화는 아예 밥차와 계약하여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우리 팀에서는 식사 시 접촉을 피하기 위해 아크릴 판 같은 걸 설치했었는데 합류 첫날 내가 했던 일도 이 아크릴 판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어디서든 그렇겠지만 제작팀에서도 마찬가지로 누가 일을 차근차근 알려주기보다는 내가 눈치껏 따라가야 한다. 얼굴도 처음보고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걸 어깨너머로 보며 최대한 폐 끼치지 않으려 열심히 따라 했다. 무전기 너머로 여러 목소리들이 오가는 동안 일단은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길 바랬다.
각자 아침을 먹은 후 본격적인 촬영 준비가 시작됐다. 이 세트장에서 촬영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우선 스태프들이 도착할 무렵 제작팀이 자리를 잡고 주차 장소를 안내해야 했다. 촬영을 할 때 차가 걸리면 안 되기 때문에 임시로 설치한 식사장소 컨테이너 뒤쪽으로 차들을 보내고, 장비가 들어있는 차량은 재량껏 촬영장소 가까이에 배치해주는 방식이다.
제작팀으로 몇 회 차 일하면 스태프들의 차량 번호를 어느 정도 파악하기 때문에 안내가 수월해지지만 이때만 해도 나는 첫날이다 보니 모두 초면이라 차량이 들어오면 하나하나 물어보며 안내를 해야 했다.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지만 내가 제작팀으로 생각하는 최우선은 일단 씩씩하게 인사하는 것이라서 처음 보는 낯선 차량이더라도 모두 인사를 건네며 자리로 안내했다.
동이 틀 무렵 스태프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제작지원은 보통 제작팀이 필요한 위치에 자리를 잡으면 그 외, 새로운 차량 진입이 못하도록 막는다든지 부가적인 일을 담당하기 때문에 나는 세트장 바깥에 자리 잡아 차량이 진입하면 무전을 치는 일을 담당했다. 1월 무렵이라 롱패딩과 방한 부츠를 신었는데도 한기가 뚫고 들어왔는데 다음날에는 핫팩을 잘 챙겨야겠다고만 생각할 뿐 지금은 그냥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촬영이 안정기에 접어들고 나는 이제 촬영지 근방으로 위치를 바꿨다. 크게 이슈가 없는 촬영이면 보통 제작팀은 촬영 장소 주변에서 콜사인을 알린다. 다른 스태프들끼리도 사인을 주고받긴 하지만 사실상 제작팀이 사인을 주로 주다 보니 촬영이 들어갔는데 카메라에 사람이 걸린다거나 사운드 엔지를 내게 되면 그건 일부 제작팀 잘못으로 돌아간다. 때문에 일상적인 업무이긴 하지만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다. 일단 실수가 나면 욕을 먹는다.
아무리 낯을 가린다고 해도 콜사인은 보통 쟤 왜 저래? 싶을 정도의 큰 목소리로 외치곤 한다. 하지만 그날 나는 촬영지 파악이 잘 되어있지 않아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통제 구역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일단 내 시야에서 스태프들이 걸리는 부분을 확인한 뒤 촬영이 들어가면 그 근방으로 콜사인을 외쳤다. 그런데 하필 그 근방 너머로 사운드 엔지가 나버렸다.
물론 제작팀이라고 해도 모든 엔지를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건 하필 그때 그 주변에 내가 있었고, 내가 파악하지 못한 곳 너머로 소리가 났다. 내 근처에는 피디님이 계셨는데 피디님도 나를 처음 보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피디님은 내가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해서 그런 실수가 발생한 거라 생각하셨고 덕분에 나는 소리도 못 내는 애를 제작지원으로 받았냐며 대차게 비난을 들었다.
조금 억울하기도 했지만 뭐 피디님 입장에서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나 같아도 제작지원으로 부른 인원이 일을 제대로 못해낸다면 답답할 거 같았다.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듣고 움츠려들거나 쪽팔려서 피한다거나 하는 대신 나는 같은 자리에서 더 미친 사람 마냥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약간은 피디님 들으라는 듯이 크게 내기도 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자리를 이동할 때마다 나는 큰 소리로 콜사인을 외쳤고 덕분인지 사운드 엔지는 다시 발생하지 않았다.
아마 이 순간이 내가 제작지원에서 제작팀으로 남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