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전환
첫날 우여곡절 끝에 촬영이 끝났다. 현장을 마무리할 때쯤 든 생각은 꽤나 할만한데? 였다. 오픈 세트장인 데다가 데이 촬영이다 보니 스케쥴은 무조건 해가 지면 끝이 났다. 기억으로는 6시? 7시쯤 해가 졌기 때문에 다음날 다시 새벽부터 촬영이 시작된다고 해도 꽤나 여유로운 일정이었다.
더욱이 제작지원을 오기 직전 참여했던 팀은 웹드라마였는데 그때의 일정과 비교하면 이건 뭐 마실 나온 수준이었다. 웹드라마 이야기도 추후에 풀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정말 지옥 같은 스케쥴이었다. 이틀이상 나이트 촬영하는 건 기본이고 실내에서 촬영하다 보니 해가 뜨고서도 촬영이 딜레이 돼서 모든 스케쥴이 끝났을 때 며칠 드러누울 정도였다.
그에 비하면 이건 정말 약과였다. 덕분에 촬영을 마무리하고서는 팀원과 내일 촬영 준비를 위해 주유소에서 발전차 기름을 가져오곤 저녁을 먹으러 갔다. 나는 초면이었지만 제작팀을 잘 챙겨주시던 스태프분들이 사주신다고 해서 따라가게 됐다.
영화일을 하면 보통 처음 말을 틀 때 어떤 작품을 했는지 묻게 된다. 어떤 작품을 몇 개 했는지로 경력을 알 수 있기도 하지만 대개 일하는 사람들이 한정적이다 보니 서로 아는 사람을 발견하면 말을 트기가 쉬워져서 그런 거 같기도 하다. 나 역시 독립영화를 시작할 때도 그렇고 웹드라마 할 때도 이 질문을 받았었다.
드라마 제작사에 6개월 정도 짧게 있기도 했지만 내가 있던 회사는 신생회사라 대표작이 없기도 했고 독립영화를 끝내고도 상업영화가 아닌 이상 웬만하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역시 내 경력으로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난 스태프분들이 이야기하시는 작품들은 너무나 익숙한 영화들이었다. 누가 들어도 알만한 그야말로 대표적인 상업영화들이었고 역시 더 큰 곳으로 나오니 같이 일하게 되는 분들도 달라지는구나 싶어 신기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아직까지 이 팀의 소속이 아니라 객원 느낌이라 그냥 이야기를 들으며 우와 신기하다 정도였다. 그분들 역시 나는 곧 떠날 사람인 걸 알고 있다 보니 더 남아보라며 장난스럽게 이야기하셨던 거 같다. 나도 분명 지금 이 팀이 나한테 찾아온 기회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이 작품을 하게 되면 분명 나도 모두가 알 수 있는 경력이 생기는 거니까. 하지만 몇 가지 걸리는 일들도 존재했다.
당시 팀 분위기는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물론 내가 독립영화만 경험했었기 때문에 그 차이가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독립영화도 사실 인간적인 분위기로 촬영하는 곳이 드물겠지만 내가 처음 경험했던 팀은 그야말로 가족 같은 화목한 분위기 그 자체였다. 같이 일했던 피디님이나 상사분들도 이런 분위기는 드물다고 하셨고 마지막 뒤풀이에서 이 작품으로 처음을 시작한 친구들이 조금 걱정된다고도 하셨다. 밖으로 나가면 더 치열할 테니까.
그 말이 딱 맞다고 생각이 들 만큼 상업영화팀은 또 상업 영화다운 팀이었다. 화목하기도 하지만 정치적인 싸움도 있었고 인간적인 분위기와 기싸움이 공존하는 곳이라 나한테는 오래 머물기가 버겁게 느껴졌다. 애초에 모두가 그 분위기를 알고 있다 보니 제작지원으로 왔던 나에게 더 남아있으라 장난처럼 제안하기도 했던 거 같다.
하지만 사실은 결국 사람 때문에 머물게 된다. 둘째 날 촬영을 마치고 팀원들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 자리만큼은 화기애애하고 즐거웠다. 팀원들도 여유가 없다 보니 그렇게 모여 술을 마시는 게 처음이라 했는데 나는 어차피 떠날 마음으로 자리하다 보니 더 재미있게만 그 자리를 즐겼던 거 같다. 이대로 헤어지기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가 돼서 고충도 나누면서 더 알고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또 이틀차 촬영이 끝나고 휴차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