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정산_01

괜찮은 시작

by 김물꽃

1월을 돌아본다. 새해가 되고 마음먹었던 다짐 중에 하나가 브런치 연재를 꾸준히 하는 거였는데 무사히 1월을 마무리하게 돼서 다행이다. 중간중간 농땡이 피우고 싶었던 날들이 있긴 해도 부지런히 글을 써온 나를 칭찬하며 작년의 1월과 올해의 1월을 비교해보려고 한다. 한번 더 겪는 스물아홉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일단 작년엔 내가 어떤 글들을 남겼을까 싶어 메모장안에 날짜를 검색했는데 8월에 들어서야 일기가 시작되고 있었어서 사실상 달력으로만 내 행적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작년 1월은 연말까지 슬레이트로 참여했던 웹드라마 회식 일정으로 시작했다.


이때의 난, 독립영화에서 같이 일했던 제작 실장님의 소개로 중간에 합류했다. 단편영화 외에 연출팀 슬레이터로 일하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이라는 말로 면죄부를 받고 싶진 않아서 중간에 들어가는 그 뻘쭘한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내 자리를 찾으려고 많이 애를 썼었다. 사실 돌아보면 처음일 수 있는 상황들에서도 완벽하려고 과하게 나를 몰아붙였다. 그 때문에 출근하는 길에 매일 잘해야 되는데 하는 마음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던 기억이 난다.


연출팀 조감독님께 인사드렸을 때 딱 슬레이트만 쳐주면 된다고 말했다. 급하게 도와주는 일손인 만큼 촬영세팅이나 뒷정리는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었다. 일을 적게 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보단 소속에 경계를 짓는 것처럼 느껴져서 끼어들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다 보니 그 틈을 어떻게 파고들어 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난감했는데 그 어색함을 편하게 견디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친해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라곤 실장님이 유일하다 보니 거기에 기대려 하기도 했지만 문득 내가 이러려고 들어온 건 아니었지 싶었다. 결국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단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먼저 행동했다. 웹드라마이다 보니 팀의 경계가 불분명해서 연출팀이 많은 걸 소화해야 하긴 했지만 눈치껏 씬의 연결을 맞출 때 소품을 옮긴다거나 연출팀 장비를 옮긴다거나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며 내 자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마무리하며 회식을 가졌다. 코로나가 있었다 보니 회식은 팀별로 구분하여 조촐하게 진행이 됐었다. 시작은 제작팀에 어중간하게 걸쳐진 위치였으나 결국 나는 연출팀의 소속으로 연출팀 회식에 당당히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그랬듯 불안함이 잇따랐다. 이 작품이 끝나면 그다음엔 뭘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었다. 프리랜서의 좋은 점이자 나쁜 점은 바로 이거다. 계약기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힘든 일도 끝이 있어 자유롭지만 동시에 어떤 일이든 바로 다음 일을 찾아야 한다는 거.


그런데 우연찮은 기회로 나는 상업영화 팀에 합류하게 된다. 사실상 작년의 1월을 생각하면 대부분이 촬영 회차로 기억된다. 웹드라마에서 내 자리를 부단히 찾았었음에도 이곳에선 마냥 쉽지 않았다.


중간에 들어왔다는 건 누군가와의 연이 있다는 의미로 비쳤고 자격도 없는 내가 운 좋게 들어왔다는 생각에 괜히 위축되었다. 불안함과 두려움을 꼭꼭 숨기느라 온몸에 신경이 곤두서있는 나날들이었다. 이때 스케쥴은 야외 세트장 이후 실내 세트장이 있는 지역으로 이동해 한동안 머물렀기 때문에 그리 버거운 일정은 아니었다. 나를 버겁게 만든 건 바로 다른 사람을 의식하느라 커져버린 내 불안함이었다.


새로운 스물아홉을 맞이하는 올해, 지금의 1월을 이야기하자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더 많아졌다. 우선 내가 규칙적으로 행하는 일들이 생겼다. 매주 월수금 브런치를 연재하는 것, 하루에 한 번 영어회화 공부를 하고, 꼭 뉴스를 보는 것. 나는 성과를 내는 삶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당장의 뭔가를 이루지 못하면 쉽게 불안에 빠진다. 하지만 하루에 하나씩 할 수 있는 이 조그마한 루틴들은 당장의 성과가 아니더라도 그래도 내가 하루를 잘 살아내고 있다고 믿게끔 만들어준다.


다음은 새로 도전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우선 그동안 배워보고 싶다고 말만 하던 춤에 도전했다. 몸치 박치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부끄러워 배우겠다는 다짐만 했었는데 막상 도전해 본 춤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맘껏 웃고 맘껏 즐기는 과정에서 스트레스 해소가 되었고 덕분에 나는 2월 걸스힙합 원데이 클래스를 새로 등록해 놓은 상태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지 걱정하는 것보단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배우는 디자인 수업을 수강하는 중이다. 적은 돈도 아니기 때문에 괜히 돈낭비 하는 거 아닌가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배움 자체를 좋아하는 나답게 새로운 걸 익힐 때마다 그 자체로 기쁨을 얻는 중이다. 모르는 게 많아 못 따라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보다는 처음이니 배워나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마주하니 마음 가짐이 편해졌다. 2월부터는 미리 신청했던 드로잉 수업도 진행될 예정인데 이것 역시 기대가 된다.


일상에서도 다양한 일들이 있긴 했다. 방치했던 내 방을 새로 꾸미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어느덧 내 취향이 듬뿍 담겼다. 연말에 만나지 못했던 교환학생 친구들, 중학교 친구들도 만나고 어색할까 두려워했던 형부와의 식사도 무사히 마쳤다. 설날엔 아주 오랜만에 가족들 다 같이 큰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보다는 내가 원하니까 선택한다는 생각으로 일상을 마주하니 삶을 살아내는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


돌아보니 올해의 1월이 괜찮아 보인다. 사실 요즘 내가 1월에 뭘 했나 싶어서 좀 힘이 빠지기도 했는데 나름 꽉 채워서 산 거 같다. 일하면서 바쁘게 지내는 것만이 나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를 위한 시간들을 충분히 살아내며 진짜 나다운 나로 채워지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많은 것들이 익숙하기보다는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시간이 쌓이고 연말이 다가와 한 달이 아닌 한 해를 마무리할 때 도전하고 노력하던 일들이 내게 습관으로 남아 꽤나 변화한 모습을 마주한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


1월은 사실 내 멘탈케어를 위해 내가 즐길 만한 일들로 가득 채우는 게 목적이었다. 때문에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조금 미뤄두기도 했다. 2월의 바람이 있다면 이제는 준비가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조금 보류했던 일들을 새로 시작했으면 좋겠다. 영상편집으로 프로그램을 다시 익히고, 소설이든 시나리오든 차근차근 써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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