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_01

제대로 된 원인

by 김물꽃

나는 어렸을 때부터 편두통이 심했다. 기억하기론 중학생 때부터 달고 살았던 거 같다. 오른쪽 눈이 뿌옇게 보이는 날에는 편두통이 시작됐다는 걸 알 수 있었고 머지않아 오른쪽 눈부터 오른쪽 머리가 저린 듯이 아파왔다. 체력적으로 무리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주로 그 증상을 겪었다.


편두통 약을 찾아먹으면 얼추 좋아지긴 하지만 대개 편두통 약을 먹으면 졸음이 쏟아졌기 때문에 학교에서 중요한 시험이 있거나 수업을 들어아하는 날이면 약 먹는 걸 참기도 했었다. 하지만 한번 정말 토가 나올 정도로 심한 통증을 느낀 다음부터는 한쪽 눈이 뿌옇게 보이기 시작하면 더 심해지기 전에 약을 찾아먹었다.


하지만 재작년, 어김없이 편두통이 찾아온 날이었고 급하게 약을 찾아먹었다. 하지만 왠지 그날따라 증상이 다르게 느껴졌다. 약을 먹고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고 머리보다는 눈 자체가 아픈 느낌이 들었다. 혹시 몰라 안과를 방문해 검사를 받았다.


처음엔 안과에서도 눈이 건조해 그런 거 같다며 인공눈물 처방을 받았다. 역시 아픈 건 편두통 때문이었나 하며 집으로 돌아가려던 길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방금 검사를 받고 나온 안과였는데 확인할 게 있으니 다시 올라와보라는 연락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오른쪽 안압이 높게 나왔다고 이야기했다. 기억으로는 1.5배에서 2배 정도 높게 나온 수치였던 거 같다. 일단 안압을 떨어트리는 약과 염증약을 처방해 줄 테니 일주일간 경과를 지켜보자고 말씀해주셨다. 처방받은 약을 눈에 떨어트리자 그동안 편두통처럼 겪어왔던 통증이 제대로 완화되는 느낌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10년도 넘게 편두통으로 알았던 내 통증이 안압 때문이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됐다.


정확한 원인을 찾았으니 다시 통증을 느끼는 일이 없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안압이 오르는 이유만큼은 정확한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편두통과 마찬가지로 내가 스트레스받거나 과로할 때 나타난다는 정도만 알 수 있었고 내가 스트레스까지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염증을 달고 안과에 나타날 때면 처방을 내려주시며 과로하지 마세요, 혹은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라는 말을 함께 하셨지만 길어야 몇 달 뒤면 다시금 안과에 재방문하고 있었다.


그래서 안과에 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머리로 아무리 부정해도 내 몸에서 티가 나버리니 스트레스 받았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가 없는 거다. 괜찮은 척을 해도 눈에서 이미 통증이 느껴지니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에서 안압이 오르면 다시 그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끝이 없는 악순환이었다.


오늘 나는 익숙하게 다시 한번 안과를 방문했다. 요 며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감정적으로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있었다. 증상이 극심한 건 아니었지만 느낌상 머지않아 안압이 오를 거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의외로 안압이 높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염증도 나타나진 않았지만 내가 아프다고 하니 일단은 예방할 수 있는 항생제와 염증약을 처방해주셨다.


내가 편두통이 아니라 안압 때문에 아팠다는 걸 제대로 알게 된다 해도 어차피 아픈 거라면 결국 변한 게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게 찾아오는 아픔을 막을 수 없는 거라면 제대로 원인을 알고 있을 때야말로 그 고통을 치유하고 또 예방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내가 아프다는 결과만으로 판단 내릴 일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하게 안압이 높은 날이 있었는가 하면 오늘처럼 의외로 안압이 낮은 날도 있을 것이다. 고통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커질 염증을 방지하고 고통이 시작되기 전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거다.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다면 움직여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이다. 어차피 주어지는 고통이니 방치하자는 생각은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똑같이 아플 거라도 더 큰 고통이 오기 전 내가 한 발 앞서서 대처한다면 언젠가 내가 통증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주도하고 있다고 인식하게 되는 날도 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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