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

찌질함을 받아들이기

by 김물꽃

며칠 전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졸업 후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었기에 설마 결혼하나? 싶었다. 카톡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청첩장이 와있었다. 한 달 뒤 결혼한다는 날짜가 찍혀있었다.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다. 가뜩이나 요즘 벌어뒀던 잔고가 떨어지고 있어 불안함이 차오르고 있었는데 축의금을 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혹시나 연락을 받았는지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니 친구는 졸업 후 번호를 바꿨던 터라 연락온 게 없다고 말했다. 그 친구가 진심으로 부러웠고 괜히 연락을 받아서 축의금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불편해졌다.


일단 연락에는 축하한다고 답장을 했지만 결혼식에 참석해야 할지, 또 가든 못가든 축의금을 얼마로 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 또, 사실상 7년 가까이 연락을 안 하고 지냈던 터라 나였으면 결혼식 초대를 안 할 거 같은데 이렇게 모바일 청첩장으로 전달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불쾌하기도 했다. 사이를 생각해보면 대학교 동아리 개념의 선배였어서 학교를 다닐 당시에야 단체로 가까이 지냈었지만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따로 볼 만큼 친하지는 않았다보니 더 생각이 많아졌다.


습관처럼 나 혼자 지레짐작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쨌든 이렇게 연락을 준 건 결혼식에 진심으로 초대하고 싶어서이지 않을까? 그럼 축의금을 조금 내더라도 참여하는 게 맞지 않나? 근데 지금 그리 여유롭지도 않고 내가 결혼할 때 선배한테 연락을 할 거 같진 않은데 무리할 필요는 없지 않나? 온갖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과정들을 늘어놓긴 했지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도 내가 참 싫었다. 사실 일을 하고 있다거나 잔고가 여유롭다면 연락을 줬다는 거에 대한 고마움으로 흔쾌히 축의금을 냈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들은 결국 내가 지금 여유롭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일을 언제 시작할지 모른다는 불안함때문에 빚어낸 찌질한 생각들이었다.


마음속에 불편함이 있으니 며칠 동안 괜히 울적했다. 하고 싶은 걸 하겠다면서 결국 주변 사람들을 못 챙기는 거 같아 내가 궁극적으로 되고 싶어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다시 질문을 던졌다. 어찌 됐건 다정하고 인간적인 사람이 되겠다며 다짐하지만 이럴 때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내 모습은 참 나여도 받아들이기 어렵구나 싶어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러다 문득 그냥 지금 이대로를 받아들이자 싶었다. 나의 줄어가는 잔고도 받아들이고 선배의 연락에도 다시 고마움을 표하고 결혼에 대한 축하도 제대로 전달하자 마음먹었다. 사실은 내가 적은 돈을 보냈을 때 선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또 주변에 안 좋게 이야기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금 다른 사람 시선들을 신경 쓰느라 지금 내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에게 축의금을 보내곤, 결혼식에는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축의금이라도 많이 보내고 싶은데 내가 지금 일을 쉬고 있는 상황이라 축하하는 마음만큼 축의금을 많이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고 보냈다. 그리고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란다고도 전달했다. 모든 감정들이 진심이었다.


솔직하게 내 마음을 전달하니 속이 후련했다. 일을 쉬고 있다는 것도, 보낼 돈이 얼마 안 된다는 것도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차라리 있는 그대로 말하고 나니 선배의 반응은 선배의 몫이라는 사실을 더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답장이 어떻게 올지 조금 긴장되기는 했다. 늦은 밤 선배에게서 답장이 왔다. 축의금 안 보내도 괜찮은데 왜 보냈냐며 나를 달래주는 말투였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식은 잘 준비해서 올리겠다고, 축하하는 마음 잘 받았으니 안심하라는 연락에 내가 위로를 받는 거 같았다.


선배는 뒤풀이가 있으니 늦게라도 와서 술 마시고 가라며 제안해주는데 선배의 따뜻함에 계산적이었던 내가 너무 마음에 걸려서 갈 수 없을 거 같았다.


선배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를, 그리고 적게나마 축하의 마음을 표시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를 그대로 보여줬기에 그리고 선배가 그 마음을 알아줬기에 오히려 선배와의 끊겼던 인연을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선배네 신혼집에 집들이라도 가서 꼭 괜찮은 선물을 해드리고 싶다.


아직은 찌질한 내 모습을 부정하는 게 더 익숙하지만 이것도 연습하다 보면 조금은 더 나아지겠지. 그리고 찌질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날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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