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특별한 날의 쾌락

by 김물꽃

이동진 평론가가 여행은 순간의 쾌락일 뿐 장기적인 면에서 행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아마도 그런 쾌락을 행복이라 칭하기에는 일상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에 더 가깝지 않냐는 의미였을 것 같다. 어떤 맥락이었는지 이해하기 때문에 충분히 동의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 생일을 보내고서 좀 다르게 생각해보게 됐다.


다른 사람을 위한 레터링 케이크는 준비해봤어도 정작 나는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내 만족으로 선물하는 거였지만 내심 받아보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케이크를 직접 주문해봤다보니 꽤나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아끼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고르는 그 시간을 선물 받는 일이기 때문에 더 기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생일을 잘 챙기는 편은 아니었다. 대학교까지 졸업하고서부터는 특히나 생일이라고 친구들과 따로 모이기보다는 가족들과 식사하는 정도로만 기념했다. 뭘 특별히 한다고 해도 먹고 싶었던 조각케익을 주문하거나 갖고 싶던 선물을 셀프로 구매하는 정도였다. 이번 생일도 원래는 가족들과 식사하는 정도로 마무리하려 했다.


가족들도 모두 일정이 있다 보니 생일 당일이 아닌 날에 모이기로 했다. 이번엔 언니와 결혼 예정인 형부도 참여하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형부의 첫 가족행사 참여이기도 했다. 보통 나는 2시나 늦어도 4시에 저녁을 먹는데 보편적인 식사시간에 맞추기 위해 저녁 7시로 식당에 예약했다. 결국 따지고 보면 가족들을 배려한 모임이었지 나한테 맞춘 생일은 아니었다.


정말 내가 원하는 생일인가? 싶었다. 불만이라기보단 내 생일 기념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생일 케이크를 주문했다. 내 취향들을 모두 반영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원하는 디자인과 맛, 내가 바라던 문구까지 모두 넣었다. 디자인을 확정하고선 혹시 몰라 정리된 내용을 아이패드로 그려서 다시 보내기까지 했다. 완성한 뒤에는 기가 다 빨렸지만 딱 내 케이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보니 주문해봤던 케이크 중 가장 고가의 케이크였다. 처음엔 사실 케이크 하나에 이 정도 돈을 쓴다는 게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한순간의 행복일 텐데 이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싶었던 거다. 하지만 문득 내가 이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나 싶었다. 일 년에 하나뿐인 내 생일이고 그동안 다른 사람만 챙겨봤지 나한테 이렇게 정성을 들인 적이 없었다. 분명 낯설었지만 이렇게 나를 챙겨주는 내가 고마웠다.


합리화의 과정이었지만 결국 내 생일만큼은 재고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됐다. 생일 당일은 누구 하고도 나누지 않을 나만의 행복을 위한 하루를 보내자고 결심했다. 먹고 싶은 음식과 입을 옷까지 모두 계획했다. 생일이 있기 며칠 전 가족들과의 식사는 즐겁긴 했지만 더 기대가 된 건 스스로 준비한 내 생일 파티였다.


생일 전날, 산책을 나간 김에 파티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러 갔다. 벽에 붙일 수 있는 비닐 풍선들과 방을 꾸밀 수 있는 고무풍선들을 골랐다. 사진을 찍기 위해 고깔모자와 파티용 선글라스도 구매했다. 이것저것 공을 들여 사고 나니 지치기도 했지만 점점 더 설레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평소 먹고 싶던 술도 미리 구매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내 안성맞춤이었다.


풍선을 사 온 김에 바로 방을 꾸미기 시작했다. 비닐 풍선은 빨대 같은 막대로 직접 불어야 하기 때문에 모든 풍선들을 불고 나니 거의 기절 직전이었다. 하지만 나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그 이유가 내 동력이 되었다. 고무풍선들을 묶으면서는 손이 부어가고 있었지만 점점 화려해지는 분위기에 저절로 마음이 들떴다.


생일 당일, 일정이라곤 레터링 케이크를 픽업해 오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준비했다. 화장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준비해 둔 생일상으로 사진도 찍었다. 이렇게까지 혼자 잘 노는 내가 나도 좀 신기했고 웃기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노는 걸 좋아한다는 건 이번 생일을 보내면서 나도 처음 알게 됐다.


케이크 픽업 전에는 포토부스에도 들러서 사진을 찍었다. 제대로 된 기념사진을 갖고 싶었다. 찍을 때는 정신없이 뚝딱였지만 뽑고 나니 꽤나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내가 너무 행복해보였다. 케이크를 픽업하고서 돌아가는 동안에도 계속 설렜다. 생일 파티의 주인공도 나, 초대 손님도 나뿐이었지만 즐거웠다. 오로지 내게만 집중하는 이 느낌이 좋았다.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들도 주문했다. 음식들까지 다 완성해놓고 보니 그야말로 완벽한 생일상이었다. 촛불을 부는 걸 지켜볼 사람도 없었지만 아이패드로 내가 촛불 부는 영상까지 모두 기록했다.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을 모두 남긴 후엔 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파티를 즐겼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도 딱 기분 좋게 만들어줬다.


내가 보낸 가장 비싼 생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온전한 축하를 받은 날이기도 했다. 내가 나를 이만큼 챙겨주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서 바라는 것들로부터 더 자유로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미 만족한 상태여서 그런지 친구들이 보내주는 축하가 부가적인 걸로 느껴져 더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순간의 쾌락이 장기적인 면에서 행복으로 볼 수 없다고 했지만 결국 그 쾌락이 켜켜이 쌓여가는 것도 우리의 행복 아닐까 생각한다. 매 순간 쾌락만 추구한다면 가산 탕진의 비극으로 이어지겠지만 특별한 날의 특별한 사치는 내가 추구할 행복을 더 촘촘하게 이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이렇게 나를 챙겨준 행복의 순간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여러 번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올해 이만큼 나를 축하해줬다보니 또 다음을 기대하게 된다. 내년 생일이 되면 나는 또 어떤 걸 바라고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될까. 뭐가 됐든 그때의 내가 바라는 행복에 아주 충실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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