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하기 버거운 일

트라우마_05

by 김물꽃

나는 감정표현이 서툰 편이었다. 표현이 서툴다기 보단 내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게 더 정확하다. 나는 늘 어떤 상황에 대해서 설명할 뿐이지, 그 상황에 대한 내 감정을 표현하는 법이 없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받아본 적이 없으니 나는 억울함, 분노,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한 묶음으로 엮어버렸다. 그리곤 그런 감정들이 느껴질라고 하면 본능적으로 눌러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방식이 내 방어기제였던 거 같다.


이런 나를 알게 된 건 처음 받았던 상담을 통해서였다. 선생님은 늘 어떤 상황을 설명하면 그때 감정이 어땠냐고 물어봤다. 나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아주 상세히 기억하고 정리하는 건 잘했지만 정작 그때 내 감정이 어땠는지는 잘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내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거 같다고 알려주면서 내 상태를 깨닫게 됐었다.


앞서 말했듯 감정을 느끼지 않는 건 본능적인 습관 같은 거라 첫 번째 상담이 끝난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상황을 정리하면서 이해하려고만 했다. 스물아홉, 다시 상담을 받게 됐을 때에도 제일 헤맸던 부분이 그때 감정이 어땠냐는 질문에 답하는 거였다. 나는 거의 5분 정도는 내 감정을 헤아리느라 시간을 써야 할 정도였다. 상대방이 이런 의도였을 거다, 나는 앞으로 이렇게 해야 할 것 같다는 식으로 상황을 정리하기 바빴고 정작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빨리 지나가버리려고 했다.


이번 상담에서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대개의 문제들이 부모님과의 관계와 연결이 되어있었다. 특히 엄마하고 관계에서 발현된 문제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궁금했던 건 내가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감정 표현을 끊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감정을 잘 모른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나는 그저 내향적인 내 성향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다 다시 상담을 받으면서 과거를 하나씩 마주할 때 분명 내가 고등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화나는 감정 정도는 표현하던 게 떠올랐다.


엄마와도 자주 부딪혔었고 그때는 소리 지르는 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혼자 있을 때도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울지 않으려는 건 내게 당연했고 혼자 있을 때도 소리 내서 우는 법이 없었다. 나는 기억을 따라갔다. 기억의 끝에서 발견한 건 대학 때 처음으로 공연을 준비하며 겪었던 일들이었다.


첫 수능을 실패하고 재수를 했다. 원하던 대학을 선택한 건 아니었지만 배워보고 싶었던 학과에 들어가게 됐다. 연출을 공부한 건 내게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공부만 하던 내가 예체능계에 처음 발을 들인 순간이고,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 그 학과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나는 영원히 이쪽 일에 도전하는 일이 없었을 것 같다. 그러기에 나는 자신감이 없었고 도전을 많이 겁내는 사람이었다.


학교에 들어가 가장 크게 꿨던 꿈은 당연 내 공연을 올리는 일이었다. 우리 학교의 경우 1, 2학년 동안은 선배들의 공연에서 스태프로 일하고 3학년이 되어서야 내가 연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오직 내 공연을 올리겠다는 목표로 1, 2학년때 다른 사람들의 신임, 특히나 교수님들께 인정받으려 부단히 노력하며 내 자리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3학년이 되어 처음 준비하던 공연은 순탄치 못했다. 스물세 살이었던 내가 감당하기엔 지금도 버거워 보이는 일들이 많았다. 우리 팀 배우였던 친구가 연습에 종종 빠지는 상황이 있었다. 당연히 다른 배우들의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정을 몰랐다면 나 역시 보이는 상황만을 보고 판단할 수 있으니 더 쉬웠을 거 같다.


하지만 종종 등하교를 같이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던 터라 나는 꽤 많은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다. 떠들고 다닐 수 없는 친구만의 사정이 있었다. 전의 포스팅에서 말했지만 나는 누군가의 사정에 쉽게 책임감을 느껴버리기 때문에 그 친구의 사정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렇다 해도 다른 배우들의 불만까지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그렇가해도 이건 학교 공연이었다. 사회도 아닌 학교에서 내가 친구를 단박에 내칠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다.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친구가 종종 연습을 빠져야 했던 건 몸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친구에게 의사를 물어 계속하고 싶은지 물었다. 친구는 끝까지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습을 더 빠질 경우 말이 계속 나올 테니 좀만 더 버텨보자고 말했다. 배우들을 불러 공식적으로 앞으로 연습을 빠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공지했다. 친구를 믿었기에 연습에서 친구를 더 배려하려고 대우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습이 중단되는 일이 생겼다. 다른 배우들이 먼저 그 친구를 발견했다. 핏기가 싹 사라진 친구가 손을 벌벌 떨며 연습실 구석에서 그야말로 버티고 있었다. 몸이 굳어버렸던 거 같다. 이건 아닌데.. 친구를 위한다고 생각한 건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연습을 멈추고 나 역시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교수님만이 뭔가를 통보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애초에 담당교수님은 외부 일정으로 이 연습에 참여하는 일이 드물었다. 누구에게 기댈 곳 없이 온전히 내가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그 상황이 버거웠다. 연출을 하고 있는 나와 친구로서의 나 사이에서 많이 갈등했다. 특히 친구의 사정을 다 알고 있는 내가 친구를 내쳐야 하는 상황이 괴로웠다.


마음을 좀 정리하고 친구를 따로 불러냈다. 친구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나는 죄책감을 느끼며 친구에게 솔직한 마음을 말했다. 공연까지 계속하고 싶었던 건 맞지만 친구의 건강을 해쳐가면서 하고 싶었던 건 아니라고 이건 친구를 위해서도 아닌 거 같다고 그만하는 게 나을 거 같다는 말을 전했다. 이미 예상했던 건지, 내가 미안해하는 걸 느껴서인지 친구는 저번과 다르게 알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게 자기 팔자 탓이라고 이야기했다. 왜인지 그 말이 오랫동안 내 마음에 박혀있었다. 본인의 불행이 팔자 탓이라는 이야기가 결국 이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말 같아서, 그리고 그게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 같아서 친구에게 더 마음이 쓰였고 많이 슬펐다.


제대로 된 연출이 되고 싶었던 나는 그 슬픔을 아무와도 공유하지 않고 혼자서 삼켜내고 이겨내려 애썼다.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건 같은 팀 배우 친구들 뿐이었지만 연출이 배우와 이런 고충을 공유한다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1, 2학년동안 그렇게 배워왔던 연출의 책임감은 바로 그런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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