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대로 믿기
저번 시간에 꾸중 같은 평가를 듣고서 그림 그리는 게 재미있지 않았다. 잘해야만 하는 과제처럼 느껴졌고 드로잉 수업이 다가오자 검수를 앞둔 사람처럼 괜히 긴장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믿으려고 많이 애썼다.
저번주에 내 마음들을 찬찬히 살핀 대로 내가 원하는 건 선생님과의 불필요한 갈등이 아닌 어떻게 하면 더 잘 그릴 수 있는가 그 궁금증을 해결하는 일이었다. 내가 수업을 듣기 시작한 것도, 계속 다니는 것도 결국 그림을 잘 그리고 싶기 때문이니까.
가장 챙겨야 할 건 나에 대한 믿음이었다. 나는 갈등 상황에 대한 공포가 있기 때문에 아직 다가오지 않은 가상의 갈등 상황까지도 미리 상상하며 겁을 내곤 한다. 이번에도 역시나 혹시 선생님과의 갈등이 빚어지면 어떻게 하나 미리 걱정이 되긴 했다. 하지만 내가 그 상황을 잘 대처해 나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아직 닥치지 않은 상황대신 지금 내게 주어지는 현재 상황을 느끼기로 했다.
내가 듣는 강의는 총 3개로 구성되어있다. 첫 번째, 두 번째 시간을 무사히 마치고서 대망의 소묘 수업을 앞둔 쉬는 시간이었다. 수강생들이 들어오기 전 나는 선생님께 다가가 질문했다. 저번 수업에서 느꼈던 고충을 주로 이야기했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걸 그린다고 하지만 그게 그림에는 제대로 담기지 않는 게 답답했다. 내 눈이 잘못된 건 알지만 선생님이 그림을 봐주며 조언을 해줄 때 사실 내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느껴질 때 조금 혼란스러웠다. 선생님의 말만 듣고 사물을 보지 않고서 그리는 게 맞는 건지 선생님의 조언과 조금 어긋나더라도 내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하는 건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저번 시간에 기분이 상했는지 물어보셨고 나는 솔직하게 그랬다기보다는 정말 그 상황이 나한테 답답하게 느껴져서 궁금했다고 답했다. 선생님에게도 내 진심이 전해졌는지 걱정과는 다르게 아주 상세히 내게 설명해주셨다. 가장 우선인 건 내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한다는 것. 선생님의 조언도 내가 이해가 되고 받아들여질 때 적용해야 된다고 했다. 또, 내가 이해하게끔 설득하느라 더 과장해서 설명을 하느라 이해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리고 기대하진 못했었는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보이는 대로 그려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보이는 걸 내가 못 믿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일종의 시각적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내가 그리면서도 계속 의심하고 있으니 선이 더 불분명해진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 이유가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 그건 그림에서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 내 삶을 살아가면서도 계속 의구심을 가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이어나가면서도 종종 나는 나에 대해서 이게 맞나? 하는 질문을 던진다. 시각적인 확신을 넘어서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 전반적인 나에 대해서 계속 믿음이 흔들리다 보니 그게 어쩌면 그림에서도 드러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숨기려던 내가 들켜버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벌거벗겨진 부끄러움보다는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 같은 개운함이 들었다.
질문을 하기 전 두 번째 수업에서 나는 자화상을 그렸다. 거울을 보고서 내 얼굴을 그리는 어쩌면 단순하고 간단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나는 사물을 보고 그리는 것보다도 많이 어려워했다. 내가 내 얼굴을 보면서도 여러 생각들을 떠올렸고 단점을 감추고 싶어 사실과 다르게 그리기도, 사실과 다르게 그리려는 내가 부끄러워 그 생각을 피하려다 보니 또 사실이 어긋나버리는 그림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내가 그린 자화상들은 하나의 공통점으로 이어지는 대신 다양한 모습으로 남게 됐다.
내가 수업을 반추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또 다른 깨우침을 알려줬다. 내 방식이 꼭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오히려 자화상 때처럼 그리면서 계속 다른 모습이 나오는 게 자유롭게 다양한 그림을 그려내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다만 보이는 걸 그대로 그려낼 때에만 어려움이 있는 거라며.
나는 답이 없고 자유로운 상황을 좋아하고 또 그것만을 즐기려고 했지만 선생님의 말에 이제는 보이는 사실 그대로를 직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피가 가장 익숙한 방법이지만 그렇게 해서는 확신을 가지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각적 확신을 가지려면 내가 보이는 걸 믿으면서 계속 그려나가는 방법밖에 없는지 다시 해결법에 대해서 질문했다.
틀리더라도 내가 보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그려나갈 것. 다만 보이는 대로 그렸는지 아닌지는 나 자신이 알고 있으니 그 사실만은 속이지 말 것. 그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그려나가면 좋아질 거라고 했다. 그리고 초조해 보였을지도 모를 나에게 선생님은 이런 고민을 하는 것부터가 발전할 수 있는 시점이 될 거라고 위안해줬다.
질문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깨달음을 얻은 쉬는 시간 이후 소묘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여전히 내가 보는 것을 믿지 못했고 선 하나하나 그으면서도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는 생각, 한 번에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조급함을 가졌다. 초조함에 점점 판단을 잃어갈 때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사물을 바라봤다. 내가 제대로 보고 있지 않다고 해도, 그리고 정답을 그려내지 못한다고 해도 일단은 그 모든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내가 보이는 걸 그려내보자는 생각으로 내 시각에 대한 믿음으로 분명한 선을 그었다.
확신이란 단어는 아직 내게 너무 낯설고 거대한 성벽 같다. 다른 나라의 국경을 넘나드는 것처럼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결국은 나에 대한 믿음으로 조금씩 나아간다면 이제까지와 달라질 모습이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결국은 내가 나를 믿어나가는 그 과정까지도 믿어줄 때 그 확신이란 단어가 내게 와닿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선생님과 괜한 갈등을 빚어낼까 미리 겁먹었지만 결국은 새로운 깨달음까지 얻게 된 나니까 앞으로 닥칠 새로운 변수들도 잘 대처해나갈 거라고 더 믿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