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서 벗어나기
나는 실패를 굉장히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만 한 번의 실수에 내 모든 것을 평가해버리곤 한다. 이 성향이 그림에도 드러난다는 게 내가 새로 찾은 드로잉의 즐거움이다. 인생을 대하는 관점이 드로잉에도 가감없이 적용된다.
저번수업을 통해 내가 깨달은 건 어찌 됐건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선 하나에도 혹시나 실수해서 그림을 완전히 망쳐버릴까봐 과감하지 못했다. 그런 소극적인 자세로 드로잉 하다 보니 그림을 다 그리고 모두와 비교하는 순간이면 늘 내 작품이 뭔가 어중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못그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지도 않는 무색무취의 그림이었다.
특히 명암을 칠할 때 다른 사람들보다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는 점에 답답해할 때 선생님은 명암이 잘 느껴지려면 어두울 때는 더 어둡게, 밝을 때는 확실하게 밝게 그 차이를 두어야 한다고 조언해줬다. 그 조언이 딱딱했던 알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명암에서도 역시나 나는 너무 어둡게 만들면 나중에 내가 복구할 수 없을 만큼 망쳐버릴까봐, 그럼 나는 수업에서 가장 못그린 사람이 될까봐 미리 겁을 먹었다. 하지만 당장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맞는 드로잉 스타일을 찾고 있는 만큼, 두려움 없이 시도해봐야 나다운 걸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수업만큼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생각을 반영하자 마음먹었다. 그 수업에서 최악의 그림을 그려내더라도 그릴 때만큼은 과감하게 더 확실하게 표현해보자 한 것이다. 마침 소묘 수업에 앞서 크로키 수업에서 선의 굵기나 세기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하는 수업을 하게 됐다. 평소 같으면 이상하다는 평가를 받을까 지레짐작하고 소심한 시도로 확실한 차이가 구분되지 않는 그림들을 그렸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날은 선을 굵게 그려보라 하면 완전히 굵게, 각지게 그려보라 하면 일부러 더 딱딱하게 이전과는 확연한 차이가 드러나는 그림을 그려냈다. 완성하고 보니 내 그림에 실패는 없었다. 오히려 구분이 뚜렷한 덕분에 어떤 선이 나에게 맞는지 찾아내기가 더 수월했다. 도전해보기 전까진 내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실패를 걱정하지 않고 드로잉에 임하니 그림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성공과 실패, 그 극단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니 훨씬 자유로웠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선을 그으면 그게 결국 내 스타일이 된다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자신감이 붙어 소묘시간에도 늘 느껴지던 긴장보다는 도전에 대한 설렘이 느껴졌다. 실패하더라도 이번에는 더 과감하게 선을 그어보자 마음먹었다. 그치만 아직까지 나는 소묘에 대한 두려움, 선생님에게 나쁘게 평가받을 거에 대한 두려움으로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크로키와 소묘에 있어서 자유로움의 차이가 있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두려움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다만 두렵더라도 계속해서 시도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선생님이 조언해주면 조언해주는 대로 적용하되 내가 보는 것을 믿자고 나를 응원했다. 특히 이 날은 형태도 어렵고 명암주기에도 애매한 사물을 그리느라 그리기 전부터 과연 할 수 있을까 의심했지만 결국 어려운 걸 계속 도전해야만 성장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도 믿었다.
쓱쓱 그려나가니 얼추 사물과 닮아있는 그림이 그려나가졌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그림을 믿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그렸는지 완성되기 전까진 알 수 없었다. 비교를 통해서 순위를 정해야만 실력을 믿을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나를 믿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지나다니며 선생님께서 조언을 더해줄 때에는 내가 아직도 사람들 중에서 소묘가 가장 약하구나 겁을 먹었고, 농담 삼아 이제 소묘도 재미있죠? 말해줄 때에는 내가 못그리니까 너무 지쳐보여서 응원해주는 건가보다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그 모든 부정적인 상황을 상상하면서도 지금 내게 주어진 미션에 집중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선들에 집중했다.
시간이 끝나고 이젤을 돌려 그림을 공개할 때까지도 자신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또 얼마나 잘 그렸을까 이미 기가 죽어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었다.
총평을 할 때 내 그림이 잘 그린 편에 속해 칭찬을 받게 됐다. 다른 사람들이 내 그림에 감탄하고 집중해주기도 했다. 사실은 너무 듣고 싶었던 칭찬이라 많이 기뻤다. 하지만 조금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바로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그림에 대해 자신이 없었고 나를 믿지 못했다. 내가 열심히 했고, 끝까지 해낸 것만으로는 나를 칭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다른 사람의 그림과 비교하고, 타인으로부터 칭찬을 듣고 나서야 급격하게 기뻐하는 나 자신이 조금 아쉬웠던 것이다.
아직은 내가 인정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선생님은 이 날 확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줬었다. 결국 확신이라는 건 내가 얼마나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지를 말하는 것 같다고. 그림을 그려내는 동안, 아직 실력이 부족할 때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좌절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건 자신이 극복하는 수밖에 없을 거라고도 말했다.
내가 보는 것을 객관적으로 믿는 것만큼이나 그 확신과 객관성은 내가 나를 볼 때에도 적용되는 말이었던 것이다. 잘하고 말고의 기준이라는 것 역시 그 모든 기준과 정도는 결국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평가를 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중점이 되어 진행해야만 다른 사람에 의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이 날 수업으로 배우게 되었다.
나는 아직 삶에 있어서도 그림에 있어서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여전히 불안하고 걱정되는 일이 많고 한 번의 실수로 전체를 실패해버릴까 겁을 먹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제 내가 이 사실을 완전히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어제의 나보다는 조금 성장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니 결국 성장을 이뤄낼 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