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보는 나, 내가 보는 나
저번 드로잉 수업에서 굉장한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아무리 잘 그린 그림도 남들의 인정 없이는 그 가치를 확신하지 못한다는 상황을 다르게 해석해 본 것이다. 앞으로 내가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면 그 그림의 고유한 가치는 변하지 않으니 남들의 평가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앞으로 나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에 그 그림이 정말 유용하게 사용될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수업 시간에 이런 깨달음을 공유했다. 저번 시간에는 내가 사물을 객관적으로 봐야한다는 시각적 확신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했다면 이번에는 내가 내 그림에 대해서도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은 이번에도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의견을 주셨다. 그때 내가 그런 느낌을 받았던 건 아마도 내가 내 그림을 보고 판단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 사이의 간극이 줄어들고 있는 현상이었을 거라고. 객관성이란 건 결국 자신의 시선과 타인의 시선이 만나는 접점을 찾아내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결국 나에 대한 객관성을 찾는다는 것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나를 처음 보는 사람,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참 조용하다, 착하다, 순하다, 여성스럽다 등등의 정적인 평가들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나를 좋게 봐준다고도 보이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답답함이 느껴졌다. 실제로 내가 정말 순하고 착하다면 그런 이야기가 곧이곧대로 들렸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대개의 나는 부당한 일에 대해서 조용히 넘어가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소리를 내고 분노를 표출하는 편이었다. 그러니 착하게만 순하게만 나를 판단했던 사람들은 그런 문제들이 생겼을 때 나를 예민한 사람 취급하기도 했다. 착하게 봐달라는 것도 예민하게 봐달라는 것도 모두 내 의사는 반영되지 않은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나는 그렇게 보이는구나 아무 필터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시급으로 따지면 200원을 받아가며 극장에서 밤을 새울 때 알바를 포기하고 학교 공연을 돕던 동기들과 후배들이 안쓰러웠다. 물론 나 역시도 이렇게 착취당하듯 일하는 게 부당하다는 생각에 학과장을 찾아가 페이를 올려달라 요구했지만 내가 너무 정이 없고 무책임하다는 비난만 듣게 됐다. 물론 페이가 올라가는 일은 없었다.
새로운 곳에 출근을 앞두고 품앗이 촬영을 도와달라는 지인이 있었다. 놀러 다니느라 정해진 촬영날짜를 몇 달이나 미룬 무책임한 사람이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그간의 정이 있어 좋은 마음으로 도우러 갔다. 모두 무페이로 돕는 상황이었지만 스케쥴은 모두 지켜지지 않았고 밤새는 촬영에 숙소는커녕 기본적인 식사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모두 그 사람의 촬영을 도와주러 모인 상황에 스태프를 함부로 대하는 상황이 용납되지 않았다. 스태프들을 위한 충분한 식사와 식사시간을 요구했다. 이동 시에는 이동 비용을 지급해달라 이야기했다. 다른 스태프들이 뒤에서 욕만 할 때 누군가는 앞에서 제대로 말해야 된다는 생각에 더 소리를 냈다. 결과적으론 나를 포함, 몇몇 스태프들이 쫓겨나는 꼴이 되었고 그 상황에서마저 나는 무책임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보는 나는 어떨까. 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요즘엔 바뀌고 싶어 노력 중이긴 하지만 원래의 난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될 일까지도 모두 나의 몫으로 감당하며 해결해주려 했다. 내가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내가 겪었던 부당한 일을 나의 동료, 후배 동생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과 일으키는 갈등에는 너무나 취약한 사람이다. 스스로 올바른 소리를 한다고 생각해도 그 일의 후폭풍이 두려워 겁을 내기도 하고 폭풍을 일으킨 후 다른 사람과 불편해질 상황에 대해서도 걱정한다. 그래도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나는 늘 내가 생각하기에 더 올바른 쪽을 선택하곤 했다. 뒤로 찝찝할 바에야 부딪히고 깨지자는 마음이랄까.
가치관대로 선택하고 판단했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서 비난을 듣고 나면 나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곤 했다. 정말로 다른 사람의 말대로 무책임한 사람인지. 그렇게나 싫어했던 무책임한 인간들을 떠올리며 내가 그 인간들과 똑같은 인간인가 생각하며 혼자서 더 많은 비난을 나에게 쏟아냈다.
하지만 그림을 평가하는 것처럼 나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도 다른 사람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의 접점을 찾아내는 거라면 이제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타인이 뭐라고 말한다 해도 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그건 내가 아니지 않을까.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뭐라고 비난했든 나를 잘 알고 깊게 아는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책임감 있는 사람인지 알고 있다. 가끔 길을 잃고 상처받은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그들은 언제나 나에게 다정한 말로 위로를 건넨다.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건 결국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반증이기도 한 건데 나는 그동안 내가 인정하지 않는 나의 비난들까지도 모두 받아들이며, 타인의 시선만을 인정하려 애썼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을 알기 위해선 다른 사람이 말하는 나를 듣기 전에 내가 아는 내가 확실해야 한다. 그림이 그랬듯, 내가 나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거니까.
나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 노력하는 다정한 사람이다. 내가 맡은 일과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책임지고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모든 순간 나라는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발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앞으론 더 단단한 내가 되어 의미 없는 사람들이 하는 비난들에 흔들리지 않고 싶은 사람이다.
그림의 고유한 가치가 다른 사람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듯 언젠가는 나라는 사람을 잘 알게 되어서 다른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