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묘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어떤 걸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이 좋았다. 그 단단함에서 나오는 확신이 부러웠고 닮고 싶었다. 자소서만 쓰더라도 내 성격을 물어보지만 나다운 게 뭔지 매번 질문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단점부터 보였고 그걸 자소서에 담아낼 수 없다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종종 친구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질문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어쨌든 처음부터 정답은 나한테 있었으니까.
내가 가진 모난 면들도 나라는 테두리 안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나를 발견해내는 그 순간들이 매력적으로 변했다. 올해는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도전하며 알지 못했던 모습들을 많이 찾아가고 있다. 특히 요즘엔 나를 알아가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 좋아하는 스타일 같은 취향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특정한 순간에 이렇게 반응구나 하는 내 행동 패턴을 알아챌 때는 스스로가 새삼 신기하고 특별하게도 느껴진다.
나다움으로 만들어가는 취미 중 하나는 바로 드로잉이다. 그중 소묘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그림 그리는 건 좋아하지만 사실 소묘에 대한 선호는 그리 높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은 일이라 생각해 선호하지 않는 편이었다. 소묘를 배웠던 건 결국 모든 그림의 기본이 소묘에서 출발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기본부터 다지자는 게 나라는 사람의 특징이라 소묘 역시 그런 원칙에서 출발한 일이었다.
해야 돼서 하는 거지 그 자체를 즐겼다거나 원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소묘는 매번 까다롭게 느껴졌다. 남과의 비교에 자꾸 신경이 쓰여서 그 집중을 나에게도 돌리느라 에너지가 많이 쓰기도 했다. 어느 수준으로 끌어올릴 때까지는 내 눈으로 보면서도 내 손이 따라가지 못하니 그 간극이 스스로도 답답했다. 남들보다 뒤처질까 조급해하는 건 기본이었다.
소묘의 재미를 발견한 건 오히려 수업이 끝난 후부터였다. 마지막 소묘 수업 때만 해도 이제 이걸 안 해도 되는구나 싶어 후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그만두려니 그동안의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겨우 이만큼 끌어올렸는데 그만두면 원래대로 돌아갈 게 뻔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은 강제성을 두지 않으면 내팽겨쳐버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일주일의 계획을 짤 때 소묘 연습이라는 구체적인 항목을 적어놓기로 했다.
처음엔 그 일정이 정말 과제처럼 여겨졌다. 하루의 계획을 하나씩 깨나가다가도 소묘 시간이 다가오자 제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계획세운 일을 핑계 삼아 넘겨버린다면 편안함보다는 불쾌함을 더 크게 느낄 게 분명했다. 온몸이 거부하는 거 같았지만 일단 자리에 앉았다. 눈에 보이는 커터칼을 책상에 올려두고 소묘를 시작했다. 울퉁불퉁한 디테일도 많았고 사선으로 올려둔 탓에 생각하는 것보다 길이가 훨씬 짧아졌다는 걸 의식하며 그려내야 했다.
대충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눈과 손을 따라 내 집중을 태우는 이 느낌은 여전히 생소했다. 이 불편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성의 없이 마무리하면 결국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 같았다. 열심히 해도 볼품없는 그림을 마주할 거란 걱정보다는 적당히 넘어간 나에 대해서 더 큰 아쉬움이 남을 거 같았다. 열심히 했는지 아닌지는 스스로 알 수 있으니까 그림에서 느껴지지 않더라도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노력을 들이기로 했다.
완성하고 보니 괜찮은 그림이었다. 성취에 연연하지 말자고 해도 나는 이뤄내는 거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집중한 만큼 얻어낸 성과라는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내 몸의 움직임을 믿고 완성시킨 그림에서 이 성취를 나라는 사람이 해냈다는 그 사실이 더 확 와닿았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소묘 연습을 하게 됐을 때,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자리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 불편함을 그냥 받아들였다. 전보다 더 빨리 자리에 앉아 소묘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을 한번 더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묘 전에 느끼는 불편함은 이제 감수할 준비가 되었다.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인데 작가의 글쓰기 습관이 담겨있는 한 구절을 먼저 읽었다가 관심이 생겨 빌려보게 됐다. 막상 읽어보니 글쓰기보다는 제목 그대로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글을 쓰기 위한 체력을 기르려고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점차 진지한 태도로 임하게 되었다는 그 이야기에서 작가를 읽어낼 수 있었다. 특히 작가의 성격이나 좋아하는 음악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확실하게 전달하는 부분에서는 내가 종종 다른 사람에게서 부러워하던 그 단단함이 느껴졌다.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그만큼 그 일을 꾸준히,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이유를 물었을 때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답변밖에 떠올릴 수 없으니 그 대답에 떳떳해지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도 오래 못한다는 말이 싫어 관심사가 많다는 핑계를 대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시작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잘 안다고 해도 실제로는 새롭게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감정도 때로 착각하게 된다.
나다운 취향이 만들어지는 건 결국 나에게 집중하는 일의 연속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부단히 찾아내고 그걸 잘하는지 못하는지에 상관없이 (아니면 계속해서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던가), 다른 사람의 평가나 의견이 들어올 틈이 없이 나라는 사람으로 꽉 채워졌을 때 그때 비로소 그 사람 다운 분위기와 취향이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조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그만큼 열심히 또 꾸준히 그리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씩 채워지기 시작한 내 취향의 책장들이 시간이 지나 돌아볼 때 또 어떤 종류의 것들로 채워져 있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