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_01

나와 맞지 않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

by 김물꽃

내가 하는 취미는 보통 혼자 하는 것들이다. 그림 그리는 것도 그렇고 글 쓰는 것도 그렇고 영화를 보러 가더라도 혼자 극장에 가는 편이고 전시회나 어딜 나가더라도 가능하면 혼자 방문해서 집중하는 걸 좋아한다. 어쩌다보니 이런 공통점을 가진 취향이 생겼다기보다 따지고 보면 내가 그만큼 혼자 있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혼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편하게 생각한다. 예민함이라는 성향을 매번 공격수단으로 비난받아온 터라 오랫동안 내 몸에서 그걸 떨쳐보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예민한 인간이다. 다른 사람에게 까칠하게 군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그마한 자극에도 쉽게 방해받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운동 역시 그런 유형의 것들을 좋아하게 됐다. 사실 운동은 살기 위해 하는 편이라 여러 개를 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나한테 제일 잘 맞고 좋아하는 운동은 요가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처음 기억은 중학교 때 노인복지회관 같은 곳에서 친구와 다이어트 목적으로 찾아가 배웠던 경험이다. 나는 태초부터 뻣뻣한 사람이라 그때는 정말 지옥 같은 운동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이걸 내가 찾아 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사람일은 알 수 없다.


정확히는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대학시절 방학이었던 것 같다. 뭐라도 운동을 해야겠어서 찾아보다 동사무소에 요가 수업이 있는 걸 알게 됐었다. 예전에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긴 해도 워낙 자세가 망가졌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해 등록했다.


연령층이 높은 편이었는데 잘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나처럼 뻣뻣한 분들도 많다보니 점차 주변 사람을 의식하기보다 내 몸에만 집중하는 법을 알게 됐었다. 확실히 계속하면서 몸이 시원해지기도 했고 뻣뻣했던 몸도 계속 늘리다보니 조금씩 유연해지기도 해서 그 재미로 등록했던 기간만큼은 꽉 채우고 나왔던 것 같다.


요가를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건 그보다 좀 이후의 일이다. 언론고시를 한참 준비하면서 확실히 체력이 떨어졌다. 매일 글 쓰고 공부하며 자세도 많이 망가지다보니 대책이 필요했다. 아무래도 동사무소는 수업 시간이 너무 한정적이다보니 언론고시 준비를 하면서 들으러 가기가 좀 애매했다. 주변에서 요가 수업을 알아보다 집 근처에서 꽤나 저렴하게 운영하는 곳을 알게 돼 방문하게 됐다.


마음에 들었던 건 한 선생님이 반복되는 수업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 시간대 별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고 여러 가지 요가를 배워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전까지는 무조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따라하기만 했으니 요가가 이렇게 다양하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아디다스 요가며 핫요가며 뭐가 어떤 건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지만 일단은 시간이 되는대로 선택해 듣기 시작했다.


혼자 집중할 수 있는 것들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아마 요가를 배우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무 자세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무 자세는 한 발은 접어 다른 쪽 다리 무릎에 붙이고 한 발로 몸을 지탱하며 가슴 높이에서 손을 합장한 채 버티는 자세이다. 사실 처음엔 그 중심을 잡기가 어렵고 부들부들 흔들리다가 중심을 잃어 발을 떨어트리게 된다.


한번 몸이 흔들리면 발을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지만 오히려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는 것에만 집중하면 오히려 균형은 더 어긋난다. 아마도 그 흔들림은 불안함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 같지만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되는지 한번 깨달으면 흔들림이 불안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일단은 수업할 때 바라보는 거울에서 집중할 수 있는 가상의 점을 띄워 그걸 응시하며 버티는 법도 있다. 하지만 이건 외적인 측면이다보니 갑자기 눈앞에서 누군가 흔들리는 걸 본다거나 방해요소가 나타나면 여지없이 내 몸까지 붕괴되고 만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그리고 내가 선택했던 방법은 내 마음에 그 점을 띄우는 거다. 내 마음에서 집중할 수 있는 응어리를 잡고 그 가상의 공간을 계속 잡고 있다보면 주변에서 하나씩 발을 떨어트려도 나만은 온전하게 버텨낼 수 있다. 중심을 잃고 균형이 흔들렸을 땐 마냥 버티려고 하기보다 차분히 다리를 내려놨다가 다시 마음의 중심을 잡고 자세를 취하면 신기하게 버틸 수 있었다.


물론 그걸 깨달은 후에도 어떤 날은 신기하다 싶을 만큼 나무자세가 완벽하게 만들어지는 날도 있었지만 바로 전날 성공했는데도 그다음 날은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 날도 있었다.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걸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뻣뻣했고 요가를 오래 해도 몸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지는 않았다. 그야 쭉 이어서 한 게 아니라 띄엄띄엄 이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유연하지 않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운동은 아니다. 하지만 꽤 오랜 기간 이어가면서 요가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나와 제일 잘 어울리고, 또 도움이 된다는 걸 계속계속 깨달았다.


과거나 현재가 아닌 지금 나에게 집중하고 몸의 변화에 맞춰서 마음의 잔상은 지우는 것. 무리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내면 된다는 것. 힘든 동작에서는 호흡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두면 불편했던 몸도 조금씩 적응한다는 것. 나랑 제일 맞지 않을 것 같았던 요가가 십 년의 시간을 거쳐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 됐다는 건 그거대로 의미 있는 일 같다.


어쩌면 모든 일에서 호불호를 판단하는 건 어느 순간에든 아직 이른 게 아닐까. 싫어하는 지금의 무언가가 언제고 다시 좋아하게 될지는 모르니까. 사실 그래봐야 지금 싫은 것들은 언제까지고 변치 않을 것처럼 마음에 들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모두 좋아하는 쪽으로 변할 수 있으면 좋겠긴 하겠다.


이런 점도 역시 내가 떨쳐내지 못하는 내 성향 중 하나다. 아무리 미워하려고 해도 미워하지 못하게 태어난 것처럼 나와 맞지 않는 것들도 언젠가는 사랑하고 싶어서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사실은 프롭테라피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글을 쓰려고 했던 건데 이렇게 알 수 없이 흘러갔다. 아마 프롭테라피는 다음 포스팅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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