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참 빠르다
벌써 3월의 마지막 날이라니! 확실히 작년보다 다양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보니 시간이 훨씬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월말정산이 다가오는 걸 알았을 때 이번달에 쓸 만한 게 있을까 걱정했지만 돌아보니 꽤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2월부터 수강했던 드로잉 강의가 끝이 났다. 마지막 시간에는 거의 자유롭게 그려보는 방식이 주였다. 그림 실력에서도 약간의 성장이 있긴 했지만 내가 체감한 건 다른 영역이었다. 키워드를 듣고 그걸 조합해 나만의 방식으로 그려보는 미션이 있었다. 비행기, 커피잔, 할머니, 안경 뭐 이런 식의 단어들을 내 식대로 조합해 고글을 쓴 할머니가 커피를 마시며 비행기를 운전하는 그림을 그려내는 방식인 것이다.
정해진 그림이 없으니 그야말로 내 맘대로 그려낸 그림이 정답이었다. 어떤 식으로 조합할 지만 떠올린다면 막힘없이 그림을 그려나갔다.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다는 점은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다는 내 상상력에 박차를 가했고 그림을 그리는 내내 자유로움을 느꼈다. 글이 아닌 그림에서 그런 즐거움을 느낀다는 게 처음 겪는 일이라 매우 생소했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내 마음가짐에서 변화가 생겼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3월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소설 연재를 시작하는 일이었다. 사실 3월 중반이 지나면서까지도 아직 채워지지 않은 설정들이 많았다. 첫 문장을 쓰려고 해도 자꾸 비어있는 곳들이 마음에 걸리니 선뜻 시작하기가 어려웠다. 무작정 시작했다가 그 구멍들이 언제든지 나타나 연재를 중단시킬 거 같았다. 마녀에 대한 온갖 자료조사를 끝내고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자료조사가 필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시대, 어떤 사람에 대해 내가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글 쓰는 게 두려웠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질까봐, 그리고 그 무지함을 스스로 확인하는 일은 겁이 났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내가 쓰려는 이야기는 어느 순간 실제로 존재했던 일이 아니다. 실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상상으로 모두 채워 넣으면 그만이었고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자료조사가 아니라 나를 믿고 일단 시작하는 일이란 걸 깨달은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일단은 첫 문장을 써내려가자 신기하게도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 단편 시나리오처럼 전체 줄거리를 꽉꽉 채워 넣을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계획하더라도 쓰다보니 그와 다르게 흘러가는 부분도 많았다. 신기하게도 이야기 속 캐릭터가 나한테 어디로 가고 싶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뭐에 홀린 듯이 써내려가는 날도 있었다. 이렇게 쓰려고 계획했던 것보다 즉흥적으로 써낼 때 더 괜찮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쓰면서 막히는 부분이 생길 때는 자료 조사를 새로 해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고치면 되는 일이었다. 인생이 그렇듯 글 쓰는 것도 모든 일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할 수는 없으며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대처하면 되는 거였다. 모든 순간 내가 할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을 믿으며.
그런 식으로 글을 써나가며 내가 목표했던 일도 조금 수정하게 됐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3월에 혼자서 연재를 시작하려 했지만 새로 듣고 싶은 수업들을 찾아보던 중 웹소설 강의를 발견하게 됐다. 5월에 개강하는데 그 수업에선 웹소설 5 화 분량과 전체 줄거리를 써내는 게 수행 과제였다. 나는 그 수업을 마감기한으로 두고 그때까지 수행 과제를 미리 써두는 게 목표다. 연재를 시작하는 건 수업을 들은 뒤 피드백을 받고서 조금 더 다듬어졌을 때 진행하는 걸로 변경했다.
당장에 결과물을 내야 하는 게 아니다보니 오히려 마음이 더 가벼워졌다. 또, 피드백을 받으며 수정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니 한 번에 완벽한 글을 써내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덕분에 매일 자리에 앉아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분량의 글을 써내는 걸 몸에 익히고 있다. 하루 3시간씩 글을 썼다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리며 뭐가 됐든 매일 글을 써내는 연습을 들이고 있다.
일상에서도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우선 매달 이어나가고 있는 춤연습을 이번 달에도 하게 됐었다. 힙합 기본기 수업은 4월에도 수강하고 싶었는데 수업이 사라져 들을 수 없게 된 것이 아쉽다. 대신 새로운 수업들도 선택할 수 있으니 아쉬움은 뒤로 하고 또 새로운 수업을 신청하게 될 것 같다. 수업을 들을 때마다 내가 몸치라는 사실을 자각하지만 이제는 좀 더 뻔뻔해지고 그 사실을 즐기는 수준이 되었다.
새로운 일들에도 많이 도전하고 싶었는데 기억나는 건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강릉으로 드라이브 겸 바다 여행을 다녀온 일이고 하나는 만화카페에 다녀온 일이다. 이건 브런치 월말정산 연재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일에 시도하고 싶다 했지만 3월이 끝나가자 괜히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뭐 강박적인 다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왠지 약속을 못 지키는 느낌이 들어 3월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저 계획들을 세웠다.
나중에 연재를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강릉 드라이브는 내게 새로운 깨달음까지 선사해준 나름대로 의미있는 여행이었다. 제작팀 일할 때만 운전했기 때문에 작년을 끝으로 한 번도 운전하지 않은 내가 강릉을 다녀온다는 것부터 도전이었지만 변수를 받아들이는 법을 알게 해줬다. 또 만화카페는 뭐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게 됐다는 게 신선한 일이었다.
벌써 2023년도의 1분기가 끝이 났다. 어떤 계획은 잘 이어가고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수정이 있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 일상을 생각하면 꽤나 잘 흘러가고 있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