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단단하게, 나만의 속도로

오늘도 나답게 살아가기(14)

by 녕이담

'서른 즈음에'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것은 20대 초반, 검정고시를 위해 수학 과외를 해주시던 스승님이라 부르는 선생님으로 인해서이다.


당시 서른을 맞이하셨던 선생님은 이 노래를 아냐며 물으시고 한 번 들어보라며 들려주셨다.

김광석이라는 가수의 이름은 알고 있지만 정작 그의 노래를 잘 알지는 못하던 나에게 그분의 노래를 알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그때 미묘하던 선생님의 표정을 이해하게 된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에게도 다가온 '그 나이'가 되어서였다.


조선 시대에는 서른을 이립(而立)으로 말했는데 뜻은

'인생의 기반을 세우는 시기'

인생의 기반이라니.

턱도 없던 말이라 헛웃음이 나왔다.

거울을 보지 않았음에도 스승님의 오묘한 표정을 조금은 닮았으리라 예상되는 얼굴 표정을 지으며 심란한 마음이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처럼 잠식되었다.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과 의지는 있었지만 투약할 약제 수령을 위해 주 4회 병원 방문을 왕복 세 시간을 오가는 상황과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은 입원행.

1년 중 절반은 입원 생활.

언제나, 늘 병원에 메인 사람이 되어 모든 일정은 이것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이 요건을 맞추면서 나의 학력, 무경력을 바탕으로 잘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모두 고려해야 했기에 너무 막연하게 느껴져 도통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늦은 생일 덕분에 '아직' 만 나이는 20대이지 않냐는 위로반 우스갯소리 반의 말조차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나날들을 괴로이 보내던 나날.


전 세계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병원 외에는 나갈 일이 드문 날들을 보내던 때, 오래 알고 지낸 지인분께서 사무보조 역할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주셨다. 어려울 거 같아 머뭇거리자 '생각보다 쉬워~'라는 말에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친분이 깊지는 않아도 꽤 오래 인연이 이어져 있던 분께도 갑자기 연락이 와서 같이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셨고.

급작스레 양쪽에서 제안을 받게 된 나는 당황스럽고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무슨 일이람...?

마땅히 기쁘고 좋아할 일로 보여지는 일 이었음에도 어쩐지 급작스러운 이 행운들이 분에 넘치는 것으로 다가와서 기쁨보단 목이 막히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의 좋은 점을 모아주신 분들께 감사하면서도 도대체 어떤 부분을 보신 것일까...? 의아하기도 했다.


그래도 답변드려야 함이 도리였기 때문에 그런 마음도 잠시 눌러두고 스스로 나의 현실과 타협이 가능한 것을 천천히 따져 보고 결정했다.


후자의 일은 방송 관련이었다. 늘 관심이 많았던 분야라 정말 도전해보고 배우고 싶은 일이기도 했지만 체력과 일정을 따졌을 때 이는 분명 마음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며 거절했다.


사무보조 일은 병원과 관련이 있는 일이었는데,

다행히도 다니는 병원과 연결이 된 부분이 있어서 진료를 다니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사정을 아시기에 코로나가 한참이던 시기까지 고려해 반드시 출근이 아닌 재택으로 해도 된다고 해주셨다.


병원이란 마을에 주민처럼 가장 오래 머물러 지내던 시기

농담반 진담반이 섞여있던 선생님들의 말이 스쳐갔다.

'ㅇㅇ이는 나중에 병원쪽 일을 해도 되겠어~'


결정하는 순간 그 말들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절대 일만큼은 병원과 관련한 일을 하지 않을거라 했는데...


이게 업인지, 운명인지, 웃프게도

답은 얼추 정해져 있었다.


갑작스레 첫 직장도, 동경만 하던 직원증 목걸이도 생겼다. 그러나 내가 전혀 모르는 행정을 이해하기 위해 그에 대한 관련 시스템이 무엇인지 밤낮으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고 규정을 읽고 또 읽었다.


분명 한글을 읽는데도 이게 무슨 말인가 당최 모를 것들이 가득해서, 그동안 나이만 먹었구나 라는 실감이 났다.


친구들이 사회에 나오기 위해 한글, 워드, 엑셀, ppt, 토익 등을 쓰고 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한창 배울 때 병원에 있었던 내가 뜬금없이 병실에서 그것들을 할리가 없었긴 해도.


너무 당연하고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이들의 주변에 있다 보니 어쩐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백조 무리 속 오리 같이 동떨어진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직원증 목걸이가 부끄럽게도 참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


아무도 내게 뭐라 하지는 않았지만 자존심이 상해서 가끔은 속상해 홀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겠나? 매일 모르는 것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나를 선택해 준 이에게 실망을 드리기는 싫었기 때문에 그저 노력으로 때울 수밖에.


기본적인 문서 기능은 쓸 줄 알지만 가끔 잘 모르는 활용이 나오면 무조건 검색을 해봤다.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고 하다 보니 의외로 완벽한 줄만 알았던 주변인들도 모든 것을 다 습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안심이 되어서 늘 초조하던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고 '모를 수 있는 거구나', '모르면 물어보면 되는 거지. 큰 죄는 아니야' 하는 이런 생각으로 이후엔 최대한 찾아보고 모르는 일이 있으면 배워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심약한 마음은 속으로 여전히 파들대고 있었지만.

할 일은 해야지 어쩌겠어? 하고 살살 달래 가며 30살 첫 직장, 첫 월급을 받고도 한없이 작아져 있었던 나는 그렇게 새로운 성장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
.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故김광석 님 '서른 즈음에' 가사 중

녕이담의 이립은,

새로운 기반을 쌓아가는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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