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단단하게, 나만의 속도로

오늘도 나답게 살아가기(13)

by 녕이담

여행이 끝나고, 이후에도 계속 새로운 여행을 이어갈 줄 알았던 것이 무색하게도.


몸상태가 조금씩 이상을 호소하기 시작하여 1년에 평균 서너 번의 입퇴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너무 익숙하게 잘 알기 때문에 내가 가진 질환에 완치를 기대하지 않고

원치 않아도 손을 잡고 함께 삶을 나아가야 하는 가족이자, 원수와 같이

관계를 이어나가는 사이가 되었다.


어찌 보면 애증이라 말할 수 있는 관계.

이런 관계의 균형이 깨질 때는 갑작스레 벌어지는 이벤트가 생길 때이다.


갑작스레 장출혈이 생길 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어댄다.

반복적으로 겪다 보니 증상이 발현될 때마다 익숙하고, 빠르게, 숙련된 솜씨로 짐을 싼다.

몸에서 피가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경우 당장은 괜찮아 보이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색과 입술 색이 창백해지고, 어지러움과 두통이 엄습해 온다.


응급실을 거쳐 입원을 하면 제대로 씻기 어렵다 보니 어느 날은 급히 머리를 감다가

어지러움에 그대로 바닥을 구른 적도 있었다.


세상의 중력이 나에게만 작용하는 듯, 일어나 보려 아무리 허우적대도 욕실 바닥에 자석처럼

붙어버린 몸에 이내 힘을 빼고 늘어진 채 의식을 정돈해 본다.


몇 번을 겪은 일이다 보니 그런 상태의 변화를 자가 체크해 가며 빠르게 병원에 가야 하는

순간임을 직감해 겨우 떼어진 몸을 흐느적거리며 옷을 입고 택시에 몸을 싣는다.


집에서 병원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 차가 빽빽한 고속도로를 바라보는 나의 겉모습은

평온해 보였을 것이나 마음속으로는 치열한 초조함을 얕은 숨으로 내뿜어보지만 초조함이 달래지지는 않는다.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는 식은땀과 차가운 손을 의식하며 감기는 눈을 깜빡거려 잠들지 않기 위해 노력한 끝에,

드디어 도착한 응급실.


또 익숙하지만 지루한 절차를 밟아가며

상담 예진에서 평소보다 확연히, 점점 낮아지고 있는 혈압을 확인하자마자 코드블루 상태로 집중 관찰 대상이 되어 앉은 모습 그대로 소생구역으로 옮겨졌다.


혈압을 올리기 위해 다리를 올리고

천장을 보며 주변에 하나 둘 늘어가는 의료진의 부산스러움을 보면서

태연히 '이번엔 큰일 났구만' 짧은 감상과 함께 앞으로 닥쳐올 과정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행히 몸을 누이자 아까보다 훨씬 살만하다고 느껴졌지만, 그와 다르게 사방으로 심박수를 체크하기 위해 혈압 커프를 감고 온갖 선을 붙이는 간호사, 혈액 검사와 주사를 잡기 위해 자리하고 있는 구조사, 상태 체크를 위해 옆에서 지켜보며 문진을 이어가는 응급의학과 교수님.


그 외에 보조하기 위한 인력들에 둘러싸인 광경은 아주 준중환자 급.


내가 다니는 담당과의 교수님과 펠로우 선생님들이 급하게 연락을 받으셨는지 그 와중에 응급실에 오셨다가

혼란한 광경에 둘러싸인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 가셨다.


할 건 다 했으니 이제 기다림의 시간.


약 한 시간도 안되어서 빈약해진 헤모글로빈 수치를 듣고, 추가 검사와 수혈을 위해 동의서, 주사라인 확보 후 투여까지 이어졌고.


이후 중환자실 의뢰까지 들어갔었지만 의식이 도렷했기에 약간의 안정이 된것을 확인한 후 병실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간 주체하지 못하고 휘청여대는 몸을

진정하기까지 꽤 시간이 필요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좋아질 것을 알기에 또 막연히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자 차츰 원래의 컨디션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런 흐름이 반복되어 의료진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많은 고민을 하면서 어떤 것이 답이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확연치 않은 방안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어 보지만 당장은 늘 들었던 반복적인 말과 상황에 대한 대처 밖에는 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또 멈추어 버렸구나.


외래가 끝나고 불이 꺼진 병원 한구석에서 어둠에 잠긴채 묵묵하지만 복잡한 머리 속을 굴려보아도 당최 답을 찾기가 어려워 맥이 풀렸다.


매번 나아가려는 결심을 하고 움직이려 발을 뗄 때마다 반복적으로 생기는 일.


이 정체는 도대체 언제쯤에야 풀리는 것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도통 알 수 없는 것은 한 살씩 늘어가는 나이에도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병원과 뗄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어느덧 나의 20대도 흘러가고 청춘도 사라져간다.


어느새 눈앞에 성큼 다가온 30대가

그런 나의 고민을 더 안겨주면서 정체된 시기, 새로운 고민을 시작되게 하였다.


#새로운고민의시작 #내일은어쩌나 #안녕20대 #안녕3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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