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단단하게, 나만의 속도로

오늘도 나답게 살아가기(16)

by 녕이담

10대의 병원 생활에서 만났던 친구들.


그들 중 대부분은 다시 볼 수 없는 이가 되어 기억으로만 남아 있거나 휴대폰 사진 속에 아직 살아있는 존재가 되어 잊을만 하면 몇 년전, 201x년도의 추억과 같은 형태로 남아있다.


그나마도 남아있지 않은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마음과 달리 머리 속에서는 점점 희미해져 가서 가끔은, 그게 두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언젠가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흐려질 나의 모습과 교차되어 보여서.


원래 나는 사진 찍거나 찍히는 것을 아주 좋아하던 사람이 아니었었다.

심지어 가장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 누군가 나의 스쳐가는 모습을 담는 것조차도 극도로 민감하게 싫어하였던지라 그때 시절을 포함해 몇 년동안의 나와 가족들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


가장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에는 초등학생 시절의 내가 항상 머물러 자라지 않고, 생애 유일했던 졸업식 사진은 시기를 한 번 놓치자 인화를 잊어 존재여부도 잊혀지고 말았다.


그래서 고등학생 즈음부터는 내 지난날을 잊고 싶지 않아서. 시간들을 작은 흔적으로라도 남기고 싶어져서 내 휴대폰이 생기고 나서 부터 사진을 습관처럼 기록하듯 남기게 되었다. 덕분에 오랜시간이 지나고 나서 들여다 보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이들, 잊기 힘든 이들, 주변 사람들의 보다 어리고 젊었던 시간들이 모두 담겨 있었다.


나의 어렸던 모습도 점점 나이가 들어감을 엿볼 수 있어 그 모습을 아쉬움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 누군가와 보냈던 즐거운 시간들. 친구들과 보낸 병원 생활 속 게임을 하거나 짓궃은 놀림을 하던 모습.

가끔 선생님들이 찍어주신 사진들로 엿본 우리의 모습.


그 사진 속 아이들은 저마다의 길을 떠나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어있고, 직장인으로서 한 사람의 몫으로 사회에 정착한 모습으로 단 몇명만이 남아 연락을 주고받는다.


한 손으로 꼽아도 남는 친구들이 결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 인것만 같았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깨닫는다. 많은 것이 변해가서 과거가 미래로 흘러가는 시간 속 어떤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인지 자문한다.


잘 살고 있는 걸까?

잘 산다는 건 어떤 형태를 말하는 것일까.

돈, 명예 같은 부의 축적?


끊이지 않는 질문들이 사방에서 울려댔다.

그 질문들에 하나씩 답을 찾으며 저마다의 길을 찾아가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너무 정체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져서 자꾸 위축되었다.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는 모르겠어서, 그저 해야 할 일을 하고 정신적으론 혼자만의 고립무원의 세상에서 시달리는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사이버대학교에 대한 내용을 보게 되었고 관련 사이트를 샅샅이 파헤쳐 보고 검색을 하며 정보를 모아 진학을 고민하다 결심했다.


코로나 이후로 이름이 있는 주 4년제 대학들마저도 사이버 강의를 할 수 밖에는 없었던 시기가 왔었기 때문인가 내가 보기에는 그전에 생각한 것 보다 강사진과 수업 내용이 꽤 좋은 시스템처럼 보였다.

정체되었던 나의 발걸음이 반 발짝, 움직여진 듯 보여 무엇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적 감정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을 대학생 신분을 가진 동생들에게 물어보자 학생의 입장으로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가장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하나 둘 그 일을 알리자 다들 응원을 아끼지 않아주어 그때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내심 '괜한 짓'을 하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이 있었나 보다.


나이 서른을 먹는 동안, 학생으로 살았던 시간이 별로 없다보니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은 것 말고는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모르면 언제든 물어봐' 그 든든했던 말 한마디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언니같은 J선생님은 '등록금 내가 내줄게!' 라는 말까지 해주실 정도로 기뻐해주셨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긴 생을 산 것은 아니지만...자존감이 떨어지고 자신감을 잃는 순간들이 올 때마다 ,나에게는 늘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들이 다가왔었다.


그래서 늘 허무하고, 아팠던 친구들과의 이별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으리라.


나이가 들어가는 나의 모습은 때로 서글픔으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그런 모습들을 남길 수 있다는 게 행운이고 감사함으로 남길 언제나 바란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 언젠가 그들에게, 파라락 나의 앨범을 펼쳐 담담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기를 바라며.


그 이야기에 나답게 살아온 시간들이 가득하도록 오늘 하루도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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