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단단하게, 나만의 속도로

오늘도 나답게 살아가기(18)

by 녕이담

S에게 책을 돌려받으며 자신의 유서를 적었다는 말을 들었다.


오히려 내가 늘 죽음과 맞닿은 삶을 살면서도 정작 죽음에 대해 쓰려고 하니 어쩐지 잘 와닿지 않아서, 애를 써서 적어 내려 가다 더 적지 못했다.


S가 쓴 유서는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 석자와 함께 '나는 충분한 삶이었으니 너무 슬퍼말고 그대들도 그대들만의 삶을 살아나가라'는 메시지를 담은 글에 뭐라 할 말이 없어졌다.


스물 중반에 이런 말을 하는 이 아이의 머릿속은 어떤 생각이 가득한 것일까.

나의 삶은 미련만이 가득한 삶일까 봐 두려운데 너는 참 의연하구나.


마음속에 웅웅 울려대는 말을 삼키며 이 일도 어느새 희미해져 갔다.


S는 점점 상태가 조절이 어려워지면서 입원 상태가 길어졌고, 나는 나대로 매년 서너 번의 입원을 하며 아래 위층으로 서로 오갔다.


그러던 어느 그 아이는 큰 결심을 했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 결심에 이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망설이던 것을 알기에 조금 더 심사숙고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걱정하던 나에게 '누나, 나 살고 싶어서 하는 거야' 한 마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렵사리 그래-라는 말이 나왔다. 입안은 까끌하고 텁텁했고 걱정이 되었지만 애써 잘 될 거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잘 될 거라는 말을 내뱉는다.


결심을 하니 과정은 빨라서 항암병동으로 옮겨 가기 전 '머리를 밀어야 하는데 누나가 밀어줄 수 있냐'라고 물었다. "내가?" 잠깐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되면 하는 거고, 안 된다면 말지 결론이 나와 일정을 맞추고, 우리와 친하게 지내던 간호사 M님도 같이 하고 싶다셔서 그날 미용실에서 모이기로 했다.


누군가 머리를 미는 모습도 처음 보는데 심지어 내가 밀어야 한다니...

어쩐지 심장도 손도 떨리는 기분이었지만 긴장을 감추고 때가 되어 미용사 분이 건네주신 이발기를 태연히 받으며 살살 머리를 밀었다. 모터가 돌아가는 요란한 위잉 소리가 머리 위로 길을 내자 후드득 머리칼이 덩어리째로 떨어졌다.


내 할당량을 마치고 나머지 반을 M이 밀고 나자 미용사 분께서 마저 정리를 해주시자 말끔한 두상이 나타나 우리는 말없이 머리를 슬슬 쓰다듬었다. "여름인데 시원하겠네!" 애써 웃으며.

아쉬움과 미련을 떨어진 머리카락과 함께 보내고 새로운 시작을 앞둔 이 아이에게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며.


카페로 자리를 옮겨 준비해 둔 모자를 쓰고 한참을 웃고 떠들다 헤어지고 또 시간은 잘도 흘러 이식 전후 항암제 주입으로 무균실에서 나오지 못하고 톡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며 간간히 상황을 들었다.

굳게 마음을 먹고도 막상 닥친 현실에 힘겨워하는 S에게 앵무새처럼 뱉는 지나갈 거야, 잘 될 거야는 너와 나에게 모두에게 바람을 담은 말.


그러나 참 야속하게도.

나의 수없이 되뇐 바람은 무참히 짓밟혀 S는 갈수록 상태가 좋지 않아 져 점점 거부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약 두 달 만에 만난 아이의 모습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늘 밝고 장난스럽던 모습도, 조용하지만 활기차던 기운도, 힘이 없는 눈동자에 힘듦이 가득했다.

늘 두 발로 스스로 걷던 이가 부모님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의지해 걸을 힘조차 없이 반쪽이 된 왜소해진 모습으로 눈앞에 앉아있었다.


어쩐지 화가 올라오는 마음을 달래려 애쓰며 얼굴을 보고 나오던 길에서 혼자 온갖 분노를 터뜨렸다.

세상 온갖 신을 욕하며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따져대고 침울한 마음에 몸도 말썽을 부려 여름이 지나고도 계속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내 생일이 있는 11월. 이날은 생일이 일요일이라 집에서 느지막이 눈을 떴다.

조용한 휴대폰의 정적을 가장 먼저 일깨운 것은 S였다.


'누나 생일 축하해' 문구와 보내온 생일 선물.

커피를 좋아하는 누나를 위해 골랐다는 드립백 커피.


바로 전화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너도 힘든데 뭐 하러 내 생일까지 챙겼어...' 고마움과 뭐라 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쳐댔지만 퉁명스러운 듯 타박하는, 겨우 그런 말을 뱉었다.


'누나한테 받은 게 많으니까 챙겨주고 싶었어' 수화기 너머로 힘이 없어 떨리는 작은 목소리가 귀를 기울여야만 들릴락말락 들려왔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마음에 한가득 차올랐다. '잘.. 아껴 마실게. 너무 고마워' 라는 말에 아끼지 말고 팍팍 마시라며 조용히 웃는게 느껴졌다.


신장 투석까지 시작하고 중환자실을 오가게 되면서 점차 연락의 간격이 늘어졌다.

간간히 면회를 갔지만 점점 나빠지기만 해서 휴대폰도 보기 힘들고 늘 착용하던 헤드셋도 끼지 않는다.


12월 마지막 면회를 다녀오던 날은 금요일, 한때 그곳에 머물렀던 이들이 스쳐가 왜인지 불안함이 가득해서 심장이 떨려와 지인이던 선생님께 '괜찮겠죠?' 물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저녁. 사이버대 수업을 듣고 있었다.

갑작스레 연락을 준 분은 나와 S의 친분을 알던 선생님이었는데 갑자기 CPR 상황이 오면서 S가 세상을 떠났다고 얘기해 주셨다. 역시 마찬가지로 나와 친한 언니 같은 K선생님도 그 사실을 알고 연락이 와 괜찮냐고 물으셨다.


괜찮냐고...

그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아, 이건 무언가 잘못됐다와 함께 사고가 이어지지 않는 나를 K가 위로해 주시는 말에 엉엉 울어댔다.

언제 마지막으로 그렇게 울어댔는지도 모르게 온갖 감정이 몰아쳐 울어댄 덕에 다음 날 빈소를 가서 울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침착을 찾았다.


나와 S를 함께 알던 이들에게 소식을 전하며 마지막에 인사 와달라는 연락을 돌리고 잠자리에 누워 잠들려 애썼지만 그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동이 트자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걸어가는 묵직한 발의 무게가 추를 단 듯 무거워져도 그저 걸어갔다.

너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러, 느릿한 나의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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