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답게 살아가기(19)
같이 가기로 했던 이가 그날 오지 못할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복장 준비가 안되어서란다.
복장이 어떤데? 의아함에 묻자, 자신의 바지 색이 부적절하단다.
그 말에 침울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어쩐지 화가 치밀어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래, 알았어' 한 마디로 끝냈다.
어딘가 와장창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래...어쩌면 그 녀석과의 관계까지도 이렇게 끝나버린 것일거다.
내가 S와 이어준 인연으로 두 사람이 반년 간 함께 일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이식 직전까지도 S는 자기 몫의 일을 해내기 위해 병원에서 정해진 시간을 1분도 허비하지 않고 충실히 일을 했었다.
가끔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 와도 좀 쉬면서 하라는 말에 '민폐가 되면 안 되지. 이 정도면 괜찮다'며 작은 침상에서 끝끝내 자기 몫의 일을 해내었다.
그 역시 당연히 이러한 상황들을 잘 알고 미리 전날 소식을 알리면서 같이 가기로 한 것이었는데.. 이런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내가 너무 꼰대 같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약속을 염두에 두고 옷차림에 신경 써서 나올 수는 없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속 사정이 있을까?
그와의 인연도 어언 10여 년을 알고 지냈으나 이런 부분들에서 자꾸 서운함과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점점 그와 나의 사이에 나누고 오가는 언어, 생각들에서 서로가 참 맞지 않다고 느껴졌다.
어찌 보면 다름은 당연하나 서로 맞추려 노력해야 하는 관계에서 그에게 더는 그런 대상이 아니게 된 나로 느껴졌다 함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 때문에 한 번씩 묘한 감정에 휩싸인 적도 많았는데 상대가 노력하지 않는 관계를 나만이 이어간다고 무슨 소용일까 싶어 이전부터 슬슬 느껴지던 관계의 균열과 애써 묻어둔 감정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이게 말이 되는 행동인가 자꾸만 곱씹게 되었다.
그 속마음과 달리 홀로 걷는 발걸음은 비척비척 빈소를 향해 옮겨졌다.
자주는 아니지만 몇 번 오가며 인사드렸었던 S의 가족들께 인사를 하고, 아직도 나이에 비해 허둥대는 손발을 애써 가다듬어 멍하게 빈소를 둘러보았다. 입구와 가까운 위치라 속속들이 그 아이의 친구들과 지인들이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영정사진과 위패를 보고도 와닿지 않던 현실이 그제야 피부로 와닿아서 가족분들께 간신히 인사와 조문을 드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빠져나와 공원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속상함과 분노, 허무함, 탈력감 같은 감정들이 들쑥날쑥 존재감을 알려왔지만 일단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그냥 하늘을 쳐다보고 오가는 사람을 구경했다.
비교적 온화한 날씨였다고는 해도 12월 겨울인 것은 맞는지 시간이 지나자 으슬으슬 추위가 몰려와 병원 내부의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내 걱정을 하고 있었던 두 언니가 달려와 위로와 다독임을 건네었다.
애써 묻어두었던 속상했던 마음이 오히려 더 부풀어져서 여태 꾹꾹 애써 참던 의문과 감정을 씩씩대며 말했다.
내 편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까.
차가운 손을 잡아주고 '분명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라는 말에 그저 하얗게 질린 얼굴에 희미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흐르지 못한 눈물이 감정과 함께 뭉클거렸다.
두 사람과 헤어지고 뒤늦게 오신 긴 인연이자 한때 S를 담당하셨던 선생님께서 그의 조문을 마치셨다고 연락 주셨다. 나와는 우연한 인연이 이어져 벌써 어언 20여 년을 향해가는 인연이시기도 하다.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보자는 말씀에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했고,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얼싸안고 잠시간 울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 차를 한 잔 마시고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하며 나는 사람의 생명이 어쩌면 이리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젊은 나이에 '질환'이라는 것 하나로 세상을 떠나야 했던 친구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 더 설움이 올라왔다.
그런 나를 가만히 보던 선생님께서 '너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해'라는 말을 건네셨다.
의아하게 바라보았는지 선생님은 다시 '그러니까 너는 오래오래 건강히 살아서 나한테 얼굴 보여줘야 해'하고 내게 말을 해주셔서 생명을 대하는 이의 직업적 애환이 가득하다-그리 느껴졌다.
한때 선생님과 내가 알던 아이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며 우리는 그들에 대해 함께 추억하기도 하고 아쉬워할 수도 있는 공통의 인물들이다.
그렇기에 한편으론 진심이 가득 담긴 그 한 마디가 그동안의 다른 어떤 말보다 큰 위로로 다가왔다. 그동안의 얼어붙은 듯하던 감정도 조금이나마 녹아내리는 듯했다.
자신이 죽거든 사람들한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며 소식을 알려달라고 sns 계정까지 알려주던 녀석. 그는 결국 끝까지 버티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이렇게 짧은 인연 속 많은 것들을 남기고 가버렸다.
선생님의 바람처럼. 그 아이가 썼던 유서글의 한 줄처럼. 나는 나대로 남은 삶을 더 걸어가야 하니 잘 버텨가보겠다고 집에 가는 길 뒤돌아보며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