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답게 살아가기(17)
거의 20년 만에 학생 신분이 생겼다.
사이버대학교도 4년제라 학생증도 나오고, 온라인으로라도 입학식과 개강 행사가 있다.
참 신기한 세상이고 좋은 세상이구나!
애늙은이 같은 감상을 하며 첫 수강 신청을 해보고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해야 하는 것은 착실히 목표 달성을 해나갔다.
낮에는 종종 출근을 하고, 저녁에는 집에 와서 수업을 듣고.
저녁을 먹고 수액 연결하고 자고 일어나 또 반복.
처음 입학 신청 때는 공부에 대한 마음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빡빡한 일상에 늘어져 있기 바빠서 공부는 커녕 수업만 착실히 들어도 다행이었다.
그렇게 1년, 2년이 잘도 흘러갔다.
코시국에 만나 빠르게 친해진 인연. S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누나는 참 단단한 사람 같아. 옥 같은 느낌이랄까?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때 그 아이의 말을 전부 정확히 기억 하지는 못한다. 대략 나에게 칭찬의 의미와 함께 힘을 주려던 그 말을 나중에는 잘 기억해둘걸...하고 많이 후회했다.
많은 사람들과 얕은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살고 있지만, 정작 내 내면까지 이해할 만큼 깊은 인연은 몇 없던 내게 그 아이는 갑자기 알게 된 인연이었다. 그렇지만 알아 갈수록 생각보다 꽤 결이 맞는 친구가 되었다.
나보다 어리지만 생각이 깊고 말도 참 예쁘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연장자로서 저런 점은 배워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인간적으로 참 좋은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그 아이 역시 어릴 때부터 아팠지만, 신기하게 내가 한창 병원에 있던 시기를 비껴가 그에겐 제일 좋았던 시기. 어린 나이에 유학도 다녀오고 여러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내 눈에 한참 빛을 발해야 할 인재가 성인이 되고 뒤늦에 병원에서 질환으로 발목이 잡혀 있는 모습이 더더욱 속상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아픈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럼에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입원 하게 되면 저녁엔 같이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가고, 퇴원하면 톡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또래 친구들이 있었던 나의 병원 생활이 얼마나 감사했는가. 그 아이를 보며 가끔 떠올리게 되어 성인이라는 이유로 또래 없이 홀로 아이들이 가득한 곳에서 꿋꿋하게 병원 생활을 이어가는 S를 보며 나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그래서 내 존재가 조금이라도 기댈 수 있는 이로 남아주길 바랐다.
나중에는 또 다른 동생 H를 소개시켜 주면서 1살 차이 또래인 두 사람이 형 동생으로 잘 지내는 모습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우리 세 사람은 가끔 만나서 밖에서 밥을 먹거나 카페에 가고 전시도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집에선 어른스러운 첫째인 그 아이도 우리 셋 중엔 막내라 '막냉이' 라는 호칭을 부여해 주기도 했다.
그런 막내의 포지션에 아주 걸맞게 듬직한 막내가 되어 '아, 형! 아, 누나!' 하면서 익살스럽게 굴던 녀석.
어느 날 휴대폰에 저장해둔 이름 석자를 보고 답지 않게 칭얼대며 서로의 저장 이름을 정정해야 한다며 주장해 지금도 '막냉이 ㅇㅇㅇ'으로 남아있다.
일을 하면서 외래 다니고 약을 다는 일상을 보면서 S는 늘 '누나도 형도 대단한 사람들이야'라고 말했다.
자신도 그 와중에 졸업을 하고 연구소 제의까지 받았으면서. 결국엔 자신의 입퇴원 상황이 민폐가 될까 그만 뒀지만.
그런 책임감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점들보다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을 알아봐 주는 눈을 가지고 진심으로 말하는 법을 아는 사람.
이런 귀한 사람이 세상에 아직 있다는 것에 안심하게 만드는 편안한 아이였다.
어느 날 S와 함께 해방촌에서 친한 선생님을 만나 식사하기로 한 날이었지만 결국 같이 가지 못하게 되었다.
홀로 먼저 도착해 둘러보다 우연히 독립 서점에 발길이 닿아 책을 고르던 중 눈에 들어온 제목이 있었다.
'월간유서'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작은 책은 분홍색 겉표지와 달리 묵직한 제목이라 내용이 궁금해서 구매했다.
나중에 펼쳐본 내용에서 강규희 작가는 매월, 유서를 쓰고 있었다.
그 유서는 누군가 보길 바라면서도 보길 바라지 않는 것이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묵묵하고 담담히 써 내려간 삶의 한 자락들이었다. 죽고자 쓴 것이 아니라 살고자 하는 이의 유서는 일상적 이야기가 가득했다.
죽음을 바라보며 그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나에게 언젠가 올 그것을 고민하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담담히 써 내려간 짧은 한 권을 읽고 나자 평소 내가 봐온 '죽음'에 대해 생각이 이어졌다.
누구에게나 다가올 '죽음' 을 입에 담는 것조차 불길하게 여기는 우리.
그러나 언젠가 다다를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어떻게 삶을 마무리 지을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만나본 죽음은 갓 태어나 빛도 보지 못한 생명부터 나름의 천수를 누렸다 여길 100세가 넘은 노인까지 누구 하나 아쉬움 없는 이가 얼마나 될까. 또한 죽음은 공평하다지만 과연 그럴까?
채 피어나지도 못하고 살아보지 못한 생명이 무참히 소리 없이 생명이 스러지는 것도 공평하다 할 수 있을까?
선천적인 질환을 안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나날이 늘어가면서 한 아이를 그저 무사히 키우기만 해도 다행이라는 부모의 마음과는 다르게 성인이 된 아이에게 사회는 냉정한 모습이다.
아픈 이로 배려받기엔 눈길이 따갑고, 그들의 호기심이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며, 보통의 사람과 똑같은 경쟁을 하기 위해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
한때는 이것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사회에 나오기 시작한 모든 아이들이 자신에게 돌아올 '페널티' 작용을 우려하여 건강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야 잘 감추고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보일지에 대해 고민한다.
삶도, 죽음도 공평하지 않았다.
짧지만 많은 생각을 주는 책이라 S에게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읽어보겠냐고 묻어봤다. 마침 고민이 많던 때라 바로 읽어보고 싶다는 답변에 빌려주고 우리는 그 책의 뒷면에 각자의 유서를 적어 넣기로 하였다.
(다음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